지난여름 제주도에서의 긴 휴가를 마치고 MBTI가 JEJU로 바뀌었다면서요.
온전히 나만을 위한 시간을 보낸 적이 없었거든요. 이번에 제주도에서 완벽하게 이기적인 시간을 보냈어요.
좋아하는 것만 하면서 지냈어요. 그러면서 여러 감정들을 다이내믹하게 느꼈어요. 되게 많이 감사하고 되게 많이 불행하고 되게 많이 아프고 되게 많이 외롭고 되게 많이 행복하고. 들쑥날쑥한 이 감정이 대체 뭘까? 생각하면서요. 어떻게 보면 뒤늦게 오는 성장통 같았어요. 그만큼 엄청나게 큰 에너지도 받았고요.
레더 코트, 스커트 모두 준지. 시스루 톱 이자벨마랑. 슈즈 로저비비에. 링 크롬하츠. 블랙 타이츠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메이크업을 받는 동안 2024년은 안식년이라고 말하는 걸 언뜻 들었어요.
내적 안식년이에요. 저 혼자 지정한 안식년인 거죠.(웃음) 사실 끝맺어야 하는 일들이 많아 제주도에 머물면서도 스케줄은 다 소화했어요. 안식년이라고 표현한 건 비우고 채우는 시기가 필요한데 이번에는 채우는 타이밍보다는 비워야 하는 시간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느껴서예요.
2009년에 인생의 바이오리듬이 깨졌다는 생각이 들 만큼 많이 힘들었어요. 그때 훌쩍 제주도로 떠났고 본격적으로 요가와 다이빙을 시작했어요. 자연이 항상 가까이 있으니까 마음이 편하더라고요. 그때 힘들면 어떻게 해야 나아지는지를 알게 된 거죠. 바다, 요가 그리고 자전거, 스쿠터, 오토바이, 물고기, 강아지, 고양이. 제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도 정확히 알게 되었고요. 흡사 천국 같았어요.
천국에서의 나날을 어떻게 보냈는지 궁금해지네요.
일단 해가 지면 잤어요. 정말 본능적인 거죠. 해가 진다? 그럼 졸려요. 그러면 옆에서 누가 떠들든 뭘 하든 자야겠는 거예요. 해가 뜨면? 일어나야죠. 6시에 일어나서 뒹굴뒹굴하다 배고프면 주섬주섬 밥 먹고 심심하면 보이차 같은 걸 내려 마셨어요.
제주도는 자연의 힘이 세요. 내가 바다에 들어가고 싶다고 해서 들어갈 수 있는 게 아니야.(웃음) 자연의 점지가 있어야 하니까 거기에 순응하면서 지냈어요. 사람들의 속도도 여유 있고 가게 휴무도 들쑥날쑥이라 특별히 약속을 안 잡고 우연에 기대면서 다니는 것도 정말 좋았어요.
그렇게 지내다 스케줄 때문에 가야 할 땐 어땠어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관이 균형이거든요. 치우치지 않으려고 많이 애써요. 마음대로만 살고 싶다가도 ‘아, 맞다. 내 일이 있지!’ 이렇게 되는 거죠. 그런데 일이 있어야 노는 것도 재미있는 것 같아요. 쉬는 시간이 더 소중하고 즐겁고.
인터뷰 마치고 제주도로 돌아가면 제일 먼저 뭘 할 건가요.
물을 찾을 것 같아요. 왜 이렇게까지 물을 좋아하는 건지 고민을 많이 해봤어요. 자궁 안에서 양수로 보호받으면서 지내잖아요. 태어나기 전부터 그런 고요한 시간을 보냈으니 당연한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 안은 평화로워서 덩달아 차분해져요. 그리고 물을 통해 제 오감이 뛰어나다는 것도 알게 됐어요. SM 연습생 생활을 시작한 순간부터 훈련이 됐던 것 같아요. 회사에서 귀는 생명과도 같다면서 스피커든 이어폰이든 가장 좋은 걸로만 갖춰주었는데 그 노력이 지금 드러나나 봐요.(웃음) 물속에서 나는 소리를 예민하게 잡아낼 수 있는데 굉장히 몽환적이고 좋아요. 그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는 시간도 참 행복해서요.
인스타그램 사진들을 보니 항상 메모장을 들고 있더라고요.
좀 아픈 시간도 있었어요. 변해야 하는 모습이 보이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을 도무지 모르겠어서. 지금까지 좋은 환경에서 다른 사람들이 잡아주는 물고기를 받았다면 이제는 내가 좀 잡고 싶은데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거예요. 사람이 성장할 때 당연히 겪는 일일 텐데 이제 하려니까 남들보다 늦은 것 같기도 하고 그게 꽤나 아프더라고요. 어휘력이나 표현 방법이 부족하다 보니 내 안의 본질적인 알맹이가 더 없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그래서 그림을 표현 방법의 하나로 만들려고 노력 중인데요.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에 앞서 단어들을 적어보고 있어요. 떠오르는 영감의 키워드를 적어요. 해시태그처럼 써보기도 하고요. 작품에는 제목이 있잖아요. 언젠가 이 메모들이 저의 작품 제목이 되겠죠.
쑥스러운데… 잠깐 한번 보고 말할지 말지 결정해도 될까요. 이상한데요? ‘만세’라고 써 있어요. 아, 길 이름이 ‘만세로’였어요. 거길 지나고 있었는데 해가 뿅 나와서 사진 찍으려고 휴대폰 카메라를 켜는 순간 사라졌어요. 그래서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는데 해가 또 나오고.(웃음) 이런 기록들을 보고 언젠가 그림으로 표현해보려고요. 저 이런 얘기 오늘 처음 하는 거예요.
그렇게 자신을 들여다보다가 새롭게 알게 된 점이 있을까요.
외로움을 많이 타는 사람이고, 반대로 엄청 강인한 면모도 있다는 걸 알았어요. 또 엄마, 아빠 모습을 참 많이 닮았다고 느꼈고요. 닮고 싶지 않은 부분까지도 어쩌면 꼭 닮았구나. 그리고 엄청 축복받았다는 것, 태어났을 때부터 스타가 되려고 태어났구나. 약간 웃기면서도 진지한 얘기인데요. 태어날 때 세상에 어떤 용도로 쓰이려고 나왔나 생각해보잖아요. 저는 사랑받으면서 잘 쓰이고 다시 돌려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오늘 찍은 사진을 보면서 “이 순간 세상에서 내가 제일 예쁜 것 같아”라고 했죠. 건강하고 자연스러운 표현이라 좋았어요.
예전에는 안 그랬어요. 가짜로 해본 적도 많고 진짜 간절히 바라서 억지로 해본 적도 많고. 질투하고 부러워서 몸이 아파본 적도 있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감정을 마주하고 받아들이고 나서부터는 그런 제 자신이 불쌍하고 애처롭더라고요. 어떨 땐 괜찮은 면도 보이니까 이제는 진짜 내 모습이 괜찮다는 생각이 든 거죠.
꾸미지 않은 모습도 유리 씨의 당연한 일부분이라는 걸 대중이 익숙하게 받아들일 정도니까요.
진짜 많이 용기 내고 싶었어요. 언니들이 본인을 보여주길 주저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대단하고 멋지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동경부터 시작된 거죠. 이효리 언니나 임수정 언니의 행보, 담백한 모습이 울림을 줬고, 주변에 있는 친구들도 저에게 힘을 줬어요. 메이크업을 하느냐 안 하느냐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예쁜 게 뭔지, 가장 나다운 모습이 뭔지 내가 정할 수 있는 게 중요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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