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한 어떤 시도는 해도 되는지, 무엇은 하면 안 되는지를 담은 가이드라인이라도 나와야 태동기의 글로벌 AI 시장에서 치고 나갈 수 있는데, 입법이 계속 지연되면서 '혁신'은 꿈도 못 꾼다는 하소연이다.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법이 나온 뒤 원점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리스크를 감당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고 한탄했다.
우리 국민이 느끼는 AI 경쟁력은 이보다 더 낮다. 뉴스웨이가 창간 12주년을 맞아, 지난달 2040세대 205명에게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우리 기업 AI 경쟁력이 미국과 견줄 정도의 '최상위권'에 있다고 답한 이들은 12.7%에 불과했다. 심지어 세계 '최하위권'이라는 이들(15.6%)보다도 적었다.
업계에서는 우리도 유럽연합(EU)이나 미국처럼 빠르게 AI 기본법을 제정해, 국가 차원에서 기업을 보호·지원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챗GPT'로 생성형 AI 열풍을 이끈 '오픈AI'와 같이 글로벌 AI 트렌드를 이끄는 혁신 기업들을 육성해 내야 다소 열세에 있는 '패권전쟁'에서 승기를 잡을 수 있다는 이유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향후 AI가 우리 삶과 산업에 가져올 변화와 혁신은 그 한계를 가늠할 수 없다"면서 "내부에서 자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사업을 이어가지만, 이것만으로는 역부족"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법안이 빠르게 수립돼야 우리 기업들도 일관된 방향으로 AI 사업에 드라이브 걸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국은 2020년부터 '국가 AI 이니셔티브' 법을 제정해 AI 산업을 지원해 왔다. 2022년에만 AI 분야에 17억달러(약 2조3100억원)를 투입했다. 그 결과 마이크로소프트(MS)·구글 등 미국 빅테크들은 글로벌 AI 시장에서 일찌감치 킬러 서비스를 내놓으며 주도권을 잡는 데 성공했다.
유럽의회는 지난 3월 'EU AI법'(AI Act)을 제정했다. 유럽 안에서 쓰이는 AI 시스템 위험도를 4단계(허용 불가능한 위험, 고위험, 제한적 위험, 최소 위험)로 분류한 건데, 113개 조항 중 7개(혁신기업 지원)를 제외한 모두가 규제와 관련됐다. AI 빅테크가 없는 유럽 입장에서는 미‧중 주도의 AI 빅테크를 견제하면서, 역내 기업과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선택을 내린 것으로 분석된다.
이 사실은 논란이 됐고, 22대 국회에 들어서 AI 기본법 제정이 화두로 떠올랐다. 그 결과 20일 기준 인공지능 관련 법안만 20건이 국회에 제출됐다. 앞서 여야가 AI 기본법 핵심 쟁점에 대체로 합의한 만큼, 정부의 계획대로 연내 제정될 가능성이 크다.
다만 우리의 AI 기본법 방향성을 미국처럼 '진흥'으로 갈지, 아니면 고위험 AI의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규제'로 갈지는 풀어야 할 과제다.
최근 발의된 법안들을 봐도 의견은 갈린다. 대부분은 AI 산업의 진흥에 초점을 맞췄다. 반면 권칠승, 최민희(더불어민주당), 이해민(조국혁신당) 의원이 제안한 법안은 규제 성격이 짙다. 고위험 AI에 대한 정의뿐 아니라 처벌 수단까지 명시됐다. 특히 최민희 의원 법안은 유럽연합처럼 금지되는 AI 범위까지 규정했다.
산업계에서는 우리가 AI 분야에선 후발주자로 꼽히는 만큼, 규제를 최소화하는 방향이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미국에서는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AI 규제 철폐까지 이야기가 나오는데, 글로벌 빅테크와의 경쟁에서 뒤처진 우리나라가 AI 기본법마저 규제하는 방향으로 가면 국내 기업들은 더 큰 피해를 볼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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