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당선 확정'이라는 미국 CNN 방송의 자막이 떴을 때, 내 머리에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김동석 미주한인유권자연대(KAGC) 대표는 어떤 평가를 할까였다. 왜냐하면 김 대표는 관념적이고 안락한 교과서 세계가 아니라 미국 정치의 현장 속에서 진짜 정치 근육을 형성하면서 아시안계의 부상 등 미국 정치의 새로운 현상을 직접 만들어 가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는 과거 2016년 대선에서 다들 도널드 트럼프 당시 공화당 후보를 과소 평가할 때, 직접 수많은 캠페인 현장을 방문하면서 트럼피즘의 돌풍을 부단히 경고했다. 과연 김 대표는 트럼프 부활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반대로 민주당의 패배에서 어떤 교훈을 찾아야 하는 걸까? 며칠 전 미국 대선 직후 국제전화에서 확인한 그의 목소리는 언제나처럼 미국과 세계의 미래에 대한 따듯한 염려와 통찰로 생생했다. 긴 통화에 이어 이메일을 나눈 이야기를 1)선거 평가와 의미 2)트럼프 2기에 대한 전망 2회에 걸쳐 소개한다.
2024년 미국 대선은 백인 중심 '마가' 운동의 승리…"이젠 다른 미국이 됐다"
안병진 : 수십년간 미국 정치 변동을 추적해온 전문가로 이번 대선 캠페인 과정 전반을 보면서 느낀 점, 새로 얻게된 통찰은 무엇인가요?
김동석 : 미국내 소수계 이민자 입장에서 이번 대선은 후보를 선택하는 것이라기보다 우리가 속할 진영을 선택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한 정당의 집권 과정이라기 보단 다양성을 강조하는 풀뿌리(Grassroots)운동과 백인을 중심으로 하는 마가(MAGA, ,Make America Great Again)운동 간의 충돌과 대결이었습니다. 트럼프의 슬로건과 공약은 전통적인 공화당(GOP)이 아닙니다.
제가 7번째 대선을 직접 경험하는데, 이번 선거는 공화당과 민주당의 대결이 아니었습니다. 민주당 카멀라 해리스 후보도 기존 민주당 노선에서 벗어났어요. 민주당이 강조하던 소비자, 소수계, 서민 등을 위한 생활경제 이슈가 거의 없었습니다. 민주당은 전통적 지지층인 거대 유권자 그룹인 백인 노동자들로부터 참혹하게 배신을 당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바이든과 해리스의 민주당은 소수 지배 엘리트들의 기득권 정당이란 인상이 정말 강했습니다.
또 한 가지 느낀 점은 인종적 편견이 선거의 경계를 넘어간다는 것입니다. 민주당 내에서도 '또 흑인 후보냐'란 분위기가 느껴졌습니다. 해리스가 4년간 부통령을 지냈음에도 존재감이 그렇게 없었던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아시안계 흑인 부통령임에도 백악관 내 아시안계의 위상과 위치가 심지어 클린턴, 부시 대통령 때의 백악관에 비해서도 못했습니다. 유럽 전쟁에 참전한 미군이 백인 포로를 흑인 병사보다 더 우대했다고 합니다. 저는 해리스의 당선을 위해서 민주당이 최선을 다했는지에 대해 의심을 갖습니다.
안병진 교수가 8년 전 책(<미국의 주인이 바뀐다>, 안병진 지음, 메디치미디어 펴냄)에서 그렇게 말했지만 저는 이번 선거에서 구체적으로 실감했습니다. 선거 결과도 말해주지만 이제는 '다른 미국'입니다.
2024년 트럼프 캠페인의 핵심, '트럼프 조련사' 수지 와일스
안병진 : 트럼프와 해리스의 선거 캠페인의 특징과 이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김동석 : 2020년 트럼프가 현직 대통령으로서 캠페인을 했을 땐, 코로나로 인한 팬데믹으로 직접 현장을 경험할 수가 없었지요. 대부분의 유권자가 우편투표를 했고, 투표율이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았습니다. 그러니 트럼프가 선거 결과에 승복할 수 없다고 나섰죠.
2016년 대선은 최종 승자가 트럼프지만, 트럼프가 이겼다고 할 수 없고 당시 민주당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이 진 선거였지요. 그때 트럼프 캠페인은 엉망이었습니다. 캠페인 캠프가 한, 두 달 간격으로 '헤쳐 모여'를 반복했고 전략가들도 거의 범죄형 막무가내 선거 운동원들이었지요. 이번 트럼프 캠페인은 달랐습니다. 2024년 트럼프 캠페인은 2016년을 철저하게 분석하고 보강한 캠페인이었습니다. 트럼프가 이전의 그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었지요. 선거기간 중에 정말 큰 사건들, 트럼프가 연방 검찰에 기소되고 보석금 문제로 선거자금이 바닥이 나고, 유세 중 총격 살해 위협에서 겨우 살아남았고 상대 후보가 전격 교체됐습니다. 그래도 그의 캠페인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지요. 더 이상 트럼프가 변덕을 부리지 않았습니다.
경선이 시작되는 시점에 트럼프는 2016년 선거에서 플로리다 책임졌던 수지 와일스를 영입했습니다. 대중투표에서 진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가 선거인단 선거를 이겨 최종 승리하게 된 이유는 플로리다주에서 이겼기 때문입니다. 저는 2012년 공화당 전당대회 때 수지 와일스를 만났었습니다. 와일스는 트럼프의 행동대장인 찰리 커크(유튜브 채널 'Turning Point USA'를 운영하는 극우 정치운동가)와 아주 가깝습니다. 와일스는 트럼프의 명을 받아 2018년 론 드샌티스를 플로리다 주지사로 당선을 시키기도 했습니다. 와일스는 이번 대선 경선에서 드샌티스가 아닌 트럼프 캠프에 다시 합류했고, 의리를 지키는 실력자라면서 트럼프가 가장 신뢰하는 참모입니다.
트럼프가 퇴임하면서 백악관 기밀문서를 플로리다로 갖고 간 사실이 밝혀져 난리가 났었는데, 그 기밀문서를 보여준 유일한 참모가 수지 와일스로 알려졌습니다. 트럼프는 이번 캠페인을 전적으로 와일스에게 맡겼는데, 그는 앞에 나서기 보단 뒤에 머무르는 스타일입니다. 지난 11월 5일 트럼프가 승리 연설을 하려고 단상에 올라 와일스에게 마이크를 주려고 계속 불렀지만 뒤로 숨어버렸을 정도입니다.
저는 투표일 일주일 전에 트럼프가 뉴욕 맨해튼의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대규모 유세를 했는데, 그때 이 광경이 선거 결과와 무관하게 캠페인에서는 이겼다는 선언으로 봤습니다. 멀리서 봐도 트럼퍼 캠페인은 한 팀으로 보였습니다.
트럼프 캠페인을 책임진 두 사람(수지 와일스, 밥 리비시타)의 '표심 읽기'가 끝까지 정확했습니다. 중앙의 캠프는 아주 단순하게 꾸렸고, 경합주를 중심으로 각각의 '슈퍼PAC'에 지역을 책임지도록 맡겼습니다. 가장 중요한 펜실베니아를 세계 최고부자로 알려진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에게 맡긴 것도 화제를 낳았죠. 트럼프 캠페인은 일반인들에게 매우 친절했고 함께하는 게 그렇게 까다롭지 않았지요. 반면 바이든도 그랬고 해리스 캠페인은 일반인들에게 제한이 많았습니다.
이번 선거전에서 트럼프의 변덕은 없었습니다. 수지 와일스는 트럼프의 조련사라고 불릴 정도로 트럼프가 그의 말에 복종했고, 라시비타와 와일스는 트럼프다운 면모를 적절하게 살리면서 이전 캠페인에서 두드러졌던 범죄형 선거꾼들을 철저하게 숨겨서, '트럼프의 정상화'에 성공했습니다. 경제와 이민 문제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고 이 프레임 안에 해리스를 끌어들이는 데에 성공했지요. 저는 트럼프 캠페인을 세번 보면서 그의 막말이 철저하게 계산된 전략이란 걸 상대적으로 일찍 깨달았는데요, 이번 선거에서 '워싱턴 기득권'을 파괴해야 한다는 트럼프의 과격한 발언은 오히려 2016년 그가 처음 등장했을 때보다 더 효과적이었습니다.
해리스의 패인, 바이든과 차별화에 실패했다
해리스는 현직 부통령이지만 실력이 아니라 기회가 왔기 때문에 집권당의 대선 후보가 된 것입니다. 해리스는 기회포착형 정치인으로 부통령 자리에까지 올랐습니다. 대통령 후보는 그래도 실력이 겸비돼야 하는데다, 훈련 기간도 없었습니다. 대선 후보는 보통 출마 결심하고 1년 반 이상 경선을 통해 훈련이 돼야 합니다.
바이든도, 트럼프도 이미 국민들이 다 겪은 인물이라 역대 가장 비호감이 높은 후보의 대통령 선거였는데, 해리스가 9월 처음 등장했을 때 전 국민의 주목을 받았어요. 선거판의 바람몰이로 유명한 오바마 때의 전략가들이 선거캠프로 밀고 들어와 지명도와 지지율을 순식간에 올렸지요. 그렇게 선거판을 주도해서 트럼프를 앞서는 것으로 보였지요. 문제는 높아진 지명도를 구체적인 표심으로 연결이 되었어야 하는데 해리스에겐 오바마와 같은 개인기, 실력이 없었습니다. 10월초의 상승세를 이어가질 못했어요.
만일 그때 모멘텀을 살렸으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입니다. 제임스 카빌이나 데이비드 엑셀로드 같은 유능한 전략가들이 바이든과 차별을 만들라고 그렇게 종용을 했지만 해리스는 바이든을 배반(비판)하지 못했고, 바이든도 현직 대통령으로 최선을 다하지 않았고 선거 캠프도 우왕좌왕 했습니다.
첫 한인 연방 상원의원 앤디 김, 2028년 민주당 대권후보 반열에 오를 수도
안병진 : 이번 선거에서 한인인 앤디 김 의원이 처음으로 연방 상원의원이 됐습니다. 이 역사적 당선이 가지는 의미, 캠페인 과정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또 향후 앤디 김 의원의 활동 중 주목해야할 점은 무엇입니까?
김동석 : 앤디 김 의원은 지난 8월 시카고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 3일째 프라임타임에 메인스테이지에서 연설을 했습니다. 그의 연설을 듣고 있는 내 감정을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저는 미 의회에서 상원의 지위와 역할을 구체적으로 경험했습니다. 민주당의 정치 거물 중 연방상원의원으로 첫 도전을 했을 때 전당대회장에서 연설을 한 사람은 오바마 전 대통령과 엘리자베스 워렌 상원의원 밖에 없습니다. 오바마는 그로부터 4년 후에 대통령이 됐고 워렌은 그로부터 4년 뒤인 2016년엔 민주당 대권후보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저는 2028년 민주당 대권후보 명단에 'KIM'(앤디 김)이란 이름이 올라간다고 봅니다.
상원 입성을 통해 앤디는 세대교체(80대에서 50대로)의 봇물이 터지고 있는 민주당의 차기로 주목되기에 충분합니다. 80년대 생인 그는 워싱턴 권력내 MZ 세대의 리더입니다.
그는 2018년 100여년 공화당지역에 도전해서 스스로의 힘으로 하원의원 선거를 이겼고, 3선을 하는 동안 완전하게 그 지역을 민주당의 안방으로 바꿨습니다.
그리고 메덴데스 상원의원의 비리가 터지자 정면 도전해 바람을 일으켜 상원에 도전했고 시민사회의 지원을 받아 당선이 됐습니다. 그의 부친은 6.25 전쟁고아로 미국에 건너왔고, 이런 부친을 둔 앤디 김은 세계적인 지도자의 시작점에 섰습니다. 자신의 스토리가 많고 정치를 하는 명분과 목적이 너무나 선명합니다.
그는 군사,외교 전문가로 오바마 정부 뿐 아니라 부시 행정부에서도 일할 정도로 실력을 인정 받았습니다. 본인도 상원 외교위에서 활동하기를 원한다고 합니다. 한인이기 때문에 한국과 한인을 위하는 일에 적극 나선다는 의미는 아직 아닙니다만, 한인 2,3세들에게 철벽같이 높고 멀리만 보이던 워싱턴 정치권력이 도전할 만한 일이라고 여겨지리라 생각됩니다. 정말 큰 성취이며, 앞으로 주목해야할 정치인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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