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8년
적산가옥에 숨겨진 보물
조선총독부 부산 관사를 불하 받은 영숙은 일본 냄새를 지우기 위해 대대적으로 관 사를 고치기 시작하였다. 대문을 들어서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면 넓은 정원이 나오 는데 연못과 연못 주위에 있었던 왜색의 석등과 정원수들을 몽땅 한국식으로 바꿨 다. 방들도 다다미를 온돌로 바꿨다. 식당의 아궁이를 고치던 공사장의 인부들이 영숙을 부른다.
“여기가 이상한데요? 요 뒤에 뭔가 공간이 하나 있는 것 같은데 부숴볼까요?”
“아니요! 여기는 그만두고 다른 일을 도와주세요.”
영숙은 직감적으로 일본 놈들이 무슨 장난을 친 게 아닌가 하고 어머니에게 보고를 하였다. 구정순은 박 선생에게 오늘은 작업을 일찍 끝내고 사람이 없을 때 살펴보자고 했다. 인부들이 모두 떠나고 식당 아궁이 쪽으로 세 사람이 모였다. 박 선생은 삽과 곡괭이를 들고 왔다. 박 선생이 아궁이 속으로 살짝 몸을 웅크리고 들어가 벽을 찬찬히 보니 한쪽 면이 색깔이 틀리고 뭔가 표식이 있는 것 같았다. 영숙은 걱정이 되어 박 선생에게 내일 날이 밝을 때 다시 살펴보자고 말한다.
그러나 박선생은 이것이 언젠가 언뜻 본 책에서 16엽의 국화 문양으로 천황의 표식이라는 것을 기억해 냈다. 박 선생은 흥분해서 영숙에게 말한다.
“이건 일본 천황이나 대리인이 사용하는 표식이야. 일본 천황이 여기 있었을 리는 없으니 아마도 대사나 대리인이 무언가 소중한 것을 넣어두고 밀봉한 것이 틀림없어. 이건 또 다른 방으로 가는 문일 거야.”
지켜보던 구정순은 뭔가 짜릿한 기분이 들었다. 박 선생이 곡괭이로 몇 번 치니 흙 들이 무너지면서 쇠로 만든 문이 나온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아 촛불에 불을 붙이자, 조선총독부 표식인 연화 문양이 뚜렷이 새겨진 철문이 나왔다. 이리저리 살피던 박 선생이 연화 문양을 오른쪽으로 돌리니 철커덕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힘을 주어 밀어보니 문이 열린다. 열린 문으로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니 제법 높은 천정의 길쭉한 큰 방이 나왔다. 방으로 들어선 세 사람은 한쪽에 일렬로 선 수많은 나무 궤짝들을 보고 놀랐다. 나무 궤짝 하나가 사람 가슴 높이의 정방형으로 전부 국화 문양이 새겨졌다. 궤짝 하나를 삽으로 힘을 주어 열고 위 판을 떼어보니 금괴가 가득 들었다. 다른 궤짝들도 차례로 열어보니 금괴가 22 궤짝이었고, 금동불상, 청자 등 보물이 60 궤짝에 보관 되어 있었다. 엄청난 규모의 보물에 모두 놀라 궤짝에 기대어 바닥에 앉았다. 일본 놈들이 탈출하면서 가져가질 못해 몰래 숨겨 놓고 언젠가 다시 찾으려 했던 것이다.
박 선생은 미국에서 읽은 야마시타 골드(Yamashita's Gold)가 생각났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일본군이 동남아시아에서 약탈한 보물들을 일본군의 패전 직전 에 필리핀의 동굴이나, 지하에 은닉한 보물을 일컫는 전설적인 보고서였다. 구정순은 둘을 쳐다보며 공중으로 손을 휘젓는다. 구정순이 놀랐을 때 하는 독특한 동작이다.
“이건 다시 밀봉해 놓고 나중에 처리할 방법을 찾아보자. 너무 놀라서 아무 생각도 안 난다.”
“그러게요. 일본 놈들이 도대체 얼마나 우리 피를 빨아먹었는지… 도대체…”
며칠 후 마무리 공사가 끝나자 인부들에게 넉넉하게 수고비를 주었다.
“이걸로 색싯집 가지 말고 고기 사들고 집으로 곧장 가! 알았어?”
“아따, 여자가 별 소리를 다하요. 하하하”
며칠 후, 구정순은 박 선생과 영숙이를 불러 이야기를 나눴다.
“저것을 어떻게 처리하는 게 좋을까?”
“보물은 적당한 기회에 박물관에 기증하고, 금괴는 송상의 자금으로 쓰면 될 것 같습니다. 이 많은 금괴가 자칫 잘못 풀리면 큰 혼란이 올 겁니다. 지금은 정부도 믿을 수가 없고…”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이 많은 금괴를 계속 여기에 보관할 수만은 없지. 위험하기도 하고.”
“전국 사찰의 대웅전에 모시고 있는 부처님 속에 금괴를 분산해서 숨겨 놓는 건 어떨까요?”
“부처님 속에?”
구정순과 박 선생은 영숙의 뜬금없는 제안에 갸우뚱했다.
“전에 엄마와 원동의 천태사에 갔을 때,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금고가 부처님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어요. 절이 없어지기 전에는 부처님을 옮길 수도 없고 소중하게 다루잖아요.”
“그래서?”
“전국 유명 사찰 부처님 속에 금괴를 나눠서 보관하면 어때요? 우리가 직접 절을 짓기도 하고.”
“우리가 창건 보살이 된다? 좋은 생각 같은데! 박 선생 생각은 어때?”
“기가 막힌 생각입니다. 우리 영숙이가 대단하네.”
1959년 어느날 미 CIA 간부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넬슨은 당시 국방장관인 김정렬 을 만나자마자 다짜고짜로 밀어붙였다.
“ 나는 CIA 서울지부를 한국에 설치하는 문제를 상의하려고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갑자기 무슨…”
넬슨은 김정렬 국방장관의 황당한 표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 나갔다.
“잘 아시겠지만, CIA 서울지부가 설치되면 소속 요원들은 외교관과 똑같은 치외법 권이 보장되어야 합니다.”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한 김 장관에게 넬슨은 전임 장관인 김용우와 CIA 부장 앨런 덜레스(Allen Dulles)가 서명한 협약서를 테이블 위에 내려 놓았다. 협약서를 읽어 내려간 김 장관은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한·미 두 나라의 정보 협력에 관해서 규정한 협약서였는데 김 장관은 이런 문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때 처음 알았다. 넬 슨은 이 협약에 따라 CIA 지부를 개설하고 이 기관과 협조할 한국 측 정보기관도 만들어줄 것을 요청했다.
“미국 대사관 안에 자리를 마련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일단 대통령 각하에게 보 고 드리고 다시 뵙도록 하겠습니다.”
”그리 간단하게 말씀하실 사안이 아닙니다. 이틀 안으로 대답 주시기를 기다리겠습 니다. 그리고 한국 측 정보기관의 책임자는 이홍락이라는 사람을 추천합니다.”
김정렬은 탐탁지 않았지만 미국 CIA의 말을 거절할 수 없어 이승만 대통령에게 보 고했다.
“미국 CIA 간부인 넬슨이 CIA 서울지부를 설치한다고 협조를 요청하면서 한국 측 정보기관의 책임자로 이홍락을 추천한다고 밀어붙이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CIA는 믿을 사람들이 아니에요. 좀 더 두고 봅시다.”
“모레까지는 답을 달라고 합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CIA 지부의 설치는 허락하지만, 우리 쪽 정 보기관은 국방부 산하에 설치하도록 해서 기능을 약화시켰다.
1960년 11월 CIA 서울지부의 권유에 따라 총리실 직속의 정보기관인 중앙정보연구 위원회를 만들었다. 미국 CIA는 이 기관의 책임자로 이홍락(HR)을 밀었다. 결국 이 홍락은 육군 소장으로 예편하고 정보연구실장(차관급)으로 취임했다. 이홍락은 CIA 서울지부장 피어 실바에게 박종희가 공산주의자라는 정보를 제공했다. CIA 서울지부와 주한 미국대사관은 여러번 박종희의 쿠데타 정보를 수집하여 장면 총리에게 전달하였으나 쿠데타를 막을 수는 없었다. 이승만 정권의 독재와 탄압, 3·15 부정선거, 김주열 열사의 사망으로 촉발된 4·19 혁명이 일어났다. 전국민적인 저항과 군 지휘부의 무력 동원 거부로 이승만 대통령은 1960년 4월 26일 하야를 발표했고, 자유당 정권은 몰락하였다. 과도 정부 를 거쳐 6월 15일 개헌으로 제2공화국이 출범하였다. 대통령중심제를 채택하였던 제1공화국의 1인 독재 악몽으로 대한민국 국회는 개정 된 헌법에 따라 의원내각제를 채택하여 참의원과 민의원으로 구성하였다. 국회에서 대통령으로 선출된 윤보선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장면을 국무총리로 임명하였다.
그러나 3·15 부정선거와 4·19 혁명 당시의 발포 책임자 등을 처벌하는 데 실패하였고, 집권당인 민주당 내에 신파와 구파가 분당하는 사건이 일어났고, 6∙25 전쟁 당시 양민 학살 사건의 진상 규명 논란, 정부의 반공법 제정 시도에 대한 반대 데모 등으로 사회 혼란이 확산하였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부패한 공직자 처벌을 명분으로 군사 정변이 일어났다.
[팩션소설'블러핑'45]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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