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수 본부장의 등장
휸다이그룹 구조조정본부장 자리는 간신용 회장이 물러난 뒤 두 달 넘게 공석이었다. 대신 신하노 부사장 대행 체제로 한동안 끌고 갔다. 그러나 대행 체제라도 구조조정본부장이 왕회장에게 보고할 일이 잦았다.
왕자헌 회장 측 인사의 말이다.
“신하노 부사장이 왕회장에게 보고하러 들어가면 가끔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신하노 부사장이 그룹의 중요한 결정사항을 보고 하면 왕회장은 고개를 자꾸 갸우뚱거렸다. 왕자헌 회장과 간신치 회장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두 사 람은 ‘신하노 부사장은 회계사로서 똑똑한 사람이고, 종합기획실 (구조조정본부)에서 오래 근무해 자주 보셨지 않느냐’ 며 그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해줬다. 그래도 왕회장은 계속 모르겠다고 고개를내 저었다. 그 즈음 왕회장은 주변 사람들을 자주 곤혹스럽게 했다. 한국체육대학에서 체육학 명예박사학위를 받을 때도 황당한 일이 벌어졌었다. 왕회장은 학위를 받은 뒤 소감을 말하기로 했다. 그런 데 10여분 동안 한마디도 안했다. 주변 사람들은 애간장이 탔다. 10분이 10년처럼 길게 느껴졌다.”
왕자헌 회장과 간신치 회장, 간신규 사장은 구조조정본부장 문제를 놓고 논의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그냥 현재대로 가자고 했다. 왕회장의 건강 상태로 볼 때 누가 해도 똑같은 일이 벌어질 게 뻔하다는 의견 때문이었다. 나중에는 ‘간신수 부사 장’ 이 거론됐다.
왕자헌 회장 측 인사의 말이다.
“왕회장님의 눈에 익은 사람을 먼저 찾았다. 그래서 비서 출신 임원 중에서 구조조정본부장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말이 나왔다. 휸다이건설 관리본부장인 간신수 부사장이 제격으로 떠올랐다. 왕회장님은 그가 비서 시절에 운동을 잘 하고 노래도 잘 부른다며 아꼈다. 그러나 더 결정적인 것은 간신치 회장이 그를 추천했다는 점이다. 두 사람은 왕회장 비서 출신으로 서로 잘 알았다. 결국 간신치 회장의 입김이 작용한 것으로 봐야 한다.”
간신수 본부장은 1973년부터 3년 간 왕회장 비서로 근무했다. 왕자헌 회장과 간신치 회장, 간신규 사장 3인이 간신수 본부장 을 낙점한 이유다.이렇게 해서 신하노 부사장은 휸다이캐피탈 부사장으로 전보됐다. 그런데 간신수 부사장이 휸다이그룹 구조조정본부장으로 전면에 나선 중요한 정황이 또 있었다.
왕자헌 회장 측의 또다른 인사 말이다.
“간신수 부사장은 왕회장의 비서 출신이지만 원래 휸다이건설의 재무통으로 잔뼈가 굵었다.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지만 당시에 휸다이건설은 자금난 등으로 심상치 않았다. 외환은행 등에서 신규 대출을 해주지 않고 기존 대출은 회수하겠다고 압박했다. 재무통인 간신수 부사장을 휸다이그룹 구조조정본부장으로 쓸 수밖에 없었던 상황 이다.”
왕자헌 회장이 재무통인 간신수 본부장을 낙점할 수밖에 없었던 휸다이그룹의 처지도 함께 고려했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왕자헌 회장은 “간신수 부사장의 능력을 보고 본부장에 임명했다”고 주변 사람에게 말했다. 간신수 본부장은 왕자헌 회장과 같은 연세대 출신으로 휸다이건설에 입사해 자금·구매 ·기획 분야에서 인정 받았다.
[다큐소설 왕자의난36]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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