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 지도 앱 별점 2.5. 평소였다면 과감히 선택지에서 지웠을 낮은 평점에 오히려 호기심이 생겼다. 파워 계획형 인간은 얼마 전 삼척 여행을 하기 전, 숙소 도착 후 근처에서 첫 식사를 할 만한 곳을 찾았다. 그때 <부일 막국수>라는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삼척을 대표하는 막국수집이라고 했는데 왜 이리 평점이 낮을까?
후기들을 꼼꼼히 읽어 내려가니 이해가 갔다. 만족은 맛과 양에 대한 부분이 많았고, 불만은 지옥 같은 대기와 불친절한 서비스에 대한 부분이었다. 유명하다고 해서 가보긴 했는데 대기와 서비스에서 불쾌한 경험을 한 사람들의 뾰족한 후기가 많았다.
평소라면 불만 부분에 수렴하고 다른 대안을 찾을 나였지만 왜인지 정면 돌파를 택하고 싶었다. 웨이팅 문제는 대기가 적은 시간에 가면 해결될 일이고, 서비스에 대한 불만족 부분은 직원들이 컨디션이 비교적 온전한 시간을 공략하면 되는 거 아닐까? 모든 문제는 한적한 시간에 가면 해결된다는 뜻이다. 저녁 장사도 없이 오전 11시에 영업을 시작해 재료가 떨어지면 바로 문을 닫는 극악의 난이도. 다행이라면 우리가 간 시기는 성수기도 지났고, 주말도 아닌 ‘비성수기 평일’이라는 점이었다. 숙소에 짐을 맡기고 서둘러 막국수집으로 향했다.
오전 11시. 밭과 주택이 드문드문 늘어선 한적한 동네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다소 웅장한 식당 건물의 위용에 살짝 놀랐다. 오픈 시간에 맞춰 도착했는데 이미 주차된 차가 몇몇 보인다. 넓은 주차장을 보면 그 가게에 얼마나 많은 손님이 오가는지 알 수 있다. 단정한 조경과 대기용 큼직한 2개의 정자에서 주인의 애정과 자부심을 느꼈다.
신발을 벗고 실내로 들어가니 우리보다 앞서 도착해 막국수를 기다리는 부지런한 사람들이 보였다.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물 막국수 두 개에 비빔 막국수 하나 그리고 맥주 한 병. 처음이었지만 자주 와본 것처럼 자연스럽게 주문했다. 이게 다 사전에 철저한 공부를 한 덕이다. 오픈 시간이라 주문이 밀리지도 않았고, 이거 달라 저거 달라 아우성치는 손님도 없으니, 직원들도 아직 컨디션이 좋다.
내가 이 식당을 선택한 이유를 일행들에게 브리핑하는 사이 차가운 맥주와 함께 무김치와 백김치가 먼저 도착했다. 요즘 배춧값이 금값이라 김치냉장고 속 시어 빠진 묵은지 말고 싱그러운 배추김치를 마주한 게 얼마 만인지 감격스러울 정도였다. 채 친 풋고추를 듬뿍 올린 백김치를 한 젓가락 집어 들고 대기. 맥주를 한잔 시원하게 들이켜고 백김치를 입에 넣었다.
아삭하게 씹히는 배추와 매운맛은 전혀 없고 풋고추 특유의 향만 입안에 은은하게 남았다. 도시의 흔한 인공적인 단맛은 없다. 배추 특유의 단맛, 천일염의 짠맛, 그리고 자연 발효되면서 생겼을 살짝 새큼한 맛이 밸런스 좋게 어우러져 훌륭한 애피타이저가 됐다. 경기도에서 출발해 강원도 삼척에 오느라 새벽부터 서두르고 KTX를 타느라 울렁거렸던 속이 말끔하게 씻겨 내려갔다.
잠시 후, 큼직한 하얀 대접에 담긴 막국수가 도착했다. 오이채와 무김치, 깨가 넉넉하게 들어간 막국수다. 일단 숟가락으로 국물부터 한 입 떠먹었다. 오잉? 뭐지? 슴슴했다. 연한 바닷물에 감칠맛 내는 조미료 2방울 똑 떨어뜨린 것 같은 순수한 맛이었다. 외지 것들의 어설프게 먹는 모습을 보고 직원은 강원도 사투리 듬뿍 담긴 어투로 말했다.
" 바닥에 양념장 있으니까 섞어 드세요→.
이것 또한 알고 있었다. 수많은 후기들을 훑으며 입력된 정보다. 하지만 순정을 맛보고 싶은 욕심에 조심조심 양념장이 흐트러지지 않게 입으로 첫인사를 했을 뿐이다.
그 후 면을 살짝 들어 무김치+오이채와 함께 후루룩 들이켰다. 까만 메밀 껍데기가 살아 있는 거친 면이 입안에 착 감겼다. 어느 정도 순정을 맛본 후 젓가락을 깊숙이 넣어 바닥의 양념장과 훌훌 섞으니 자작한 비빔 막국수가 됐다. 도시에서 흔히 먹던 시고 달던 막국수와는 다른 맛이다. 테이블 위에는 식초와 설탕, 연겨자 튜브까지 갖춰져 있었지만, 굳이 넣어 맛을 해치고 싶지 않았다. 촌스럽고 투박하기까지 한 맛과 향이 입안에 오래 남았다. 왜 그런 웨이팅 지옥이 생겼는지, 왜 서비스에 불만을 늘어놓는지 이해가 갔다.
도시의 패스트푸드처럼 앉자마자 튀어나오는 음식이 아니었다. 많은 시간과 정성이 쌓여야 나올 수 있는 맛이었다. 그러니 바쁘다 바빠 현대 사회 속에서 속도전을 치르며 사는 사람들에게는 느리고, 불친절한 맛이다. 바다가 지척이라 신선한 해산물 음식이 흔하다 해도 삼척에 왔다면 이 막국수 한 그릇을 맛볼 가치가 있다. 순수하고 투박한 막국수 한 그릇이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번지르르한 식당에서 공장제 소스를 넣고 끓인 반짝반짝한 생선조림보다 나았다.
별점 2.5. 지금껏 난 이 숫자를 달았다는 이유로 유명 음식점의 훌륭한 음식을 맛볼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곤 했다. (3.5점 이상은 되어야 검토한다.) 사람마다 음식점을 선택하는 각자의 이유가 있겠지만 별점 2.5점은 음식점 선택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처음 가는 곳이라면 더더욱. 나처럼 별점 숫자로 이 막국수집을 탈락시켰을 많은 사람들이 있을 거다.
<부일 막국수>는 숫자 말고 후기를 꼼꼼히 읽어 봐야 할 이유를 알려줬다. 혹독한 자영업의 세계에서 사이비 종교처럼 찬양 일색으로 후기가 차 있다면 오히려 작업(!)을 의심해야 한다. 동전의 양면처럼 불만과 만족은 등을 꼭 맞대고 있다. 더군다나 소비자는 칭찬에 인색하고 ‘까’는데 희열을 느낀다. 후기의 세계는 어둠의 맛 평가단이 활개를 치는 곳이다. 그래서 별점을 참고할 거라면 내가 수용 가능한 것과 절대 수용 불가한 걸 구분해야 한다.
별점을 무기처럼 쥐고 흔드는 사람의 입김에 흔들리지 않기 위해선 확실한 자기만의 기준이 필요하다. 때로는 평점을 모르고 우연히 들어간 카페의 커피 한 잔에 감동할 때도 있고, 평점을 철썩 믿고 들어간 맛집에서 실망스러운 한 끼를 먹을 때도 있다. 평점이라는 다수의 의견을 참고할 수도 있지만 그게 세상의 전부인 양 맹신할 필요가 없다. 결혼, 출산, 주식, 부동산, 자동차 등 사람들이 안 하면 큰일 날 거라고 겁을 주던 평균의 삶을 살고 있지 않아도 나름의 행복을 찾으며 큰 불만 없이 사는 나 같은 사람도 있으니까.
여행의 첫 단추를 기분 좋게 끼운 식사를 마친 후 화장실에 가기 위해 건물을 빙 돌아가야 했다. 길을 잘못 들어 식당 뒤편의 풍경을 본의 아니게 엿봤다. 살짝 열린 틈으로 수다를 떨며 배추를 다듬는 직원분들의 미소가 보였고, 고추가 주렁주렁 달린 텃밭이 보였다. 아마 머지않아 막국수와 함께 상에 오를 백김치가 될 재료들일 거다.
한자리에서 오래 그 자리를 지키며 영업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시대인가? 손님이 보지 못하는 순간순간 쌓은 정성이 모여 대체할 수 없는 유일한 맛을 만들어 낸다. 평점에 휘둘렸다면 맛보지 못했을 그 맛이 그렇게 만들어지고 있었다.
원문: 호사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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