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근은 일본 헌병대에 잡혀가 모진 고문을 당하고 차라리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 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 방에 같이 있었던 남자가 송상의 지밀원 요원 김영국이 었는데 그 사람은 혹독한 고문으로 발가락과 손가락이 죄다 뭉개진 상태로 송장이나 다름이 없었다. 박수근은 그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끔찍했다. 이때 감옥 문을 열고 갇혀 있던 사람들을 모두 구해준 사람이 구정순 대방이었다. 20여 명의 날쌘 무리를 이끌고 나타난 구 대방은 박 선생에게는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였다. 구출 팀들은 일본 놈들이 만든 독으로 헌병대 초소병과 경비병들을 처치 하고 지하 감옥으로 직행했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구출해! 일단 밖으로 빼낸다.”
갇혀 있던 40여 명은 대부분 고문으로 몸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두 번째 방에 서 구 대방은 처참한 몰골로 누워있는 김영국을 안으며 피를 토한다.
“이런 죽일 놈들! 사람을 어찌 이 지경으로 만들어.”
구석에 있는 박수근을 보고는 “걸을 수 있겠소?”라고 물었다.
“네! 저는 걸을 수 있습니다. 제가 이분을 부축하고 나가겠습니다.”
“고맙소! 이리 나오시오. 시간이 없으니.”
그런 인연으로 박수근은 개성 식구가 되었고, 박수근이 천재라는 것을 알게 된 구 대방은 미국으로 유학을 보내고 누나처럼 알뜰하게 보살펴 주었다. 김중필을 만나고 부산으로 내려간 박 선생은 추운 겨울 날씨에 얼굴에 시커먼 재를 뒤집어쓴 채로 사람들 사이로 이리저리 뛰고 있는 구 대방을 발견하고는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대방 어른!”
“아니 넌! 네가 어쩐 일로 여기에 있어?”
구 대방은 너무나 반가워 수근을 감싸 안았다.
“그래! 잘 왔다. 잘 왔어!”
1954년 12월, 고물상에서 불이 붙기 시작해서 용두산과 동광동 판잣집 1,000여 채 가 전소되었고 이 추운 겨울에 4명이 죽고 7,000여 명이 이재민이 되었다. 송상 식구들과 박 선생이 팔을 걷어붙이고 진화 작업을 도왔다. 어느 정도 정리를 끝내고 구 대방과 박 선생은 남포동에 있는 집으로 걸어갔다. 구 대방은 20여 명이 같이 지낼 수 있는 큰 집을 구해 이사를 했었다. 우물이 있는 마당을 지나 정면으로 보이는 문이 열리며 반가운 얼굴이 나타났다. 영숙이다. 그 꼬마가 이제 어엿한 24살 여인이 되어 있었다. 영숙은 박 선생을 보자마자 환히 웃으며 손을 맞잡는다.
“선생님이지요? 우리 선생님 맞지요?”
“그래, 그래! 이제 숙녀가 다 됐구나. 몰라보게 예뻐졌네. 허허”
“아이, 선생님도 참. 호호호”
오랜만에 웃음꽃이 핀다. 영숙은 쉴 새 없이 까르르 소리를 내며 웃는다. 외롭게 자란 영숙은 박 선생님이 친 오빠처럼 좋아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마주 앉은 구 대방과 박 선생은 감회가 새롭다.
“몸은 괜찮으냐? 그 때 헌병대에서 모진 고생을 하였으니 괜찮을 리가 없지? 걷는 데는 지장 없어? 아까 보니 조금 불편해 보이던데.”
수근은 고문으로 발가락 두 개를 잃었는데 이제는 적응이 많이 되어 뛰지만 않으면 그다지 불편한 것은 없었다.
“괜찮습니다. 대방 어른.”
“너는 언제까지 그렇게 부를 거야? 이제 누나라고 불러!”
“어떻게 제가...”
“이제부터 누나라고 하지 않으면 너와 인연은 이제 끝이야. 알겠어?”
“알겠습니다. 그럼, 누님이라고 하겠습니다. 누님!”
“그래, 그래. 얼마나 좋아.”
“누님, 개성 식구들은 지금 다 어디 있는 겁니까?”
“전국에 흩어져 각자 살길을 찾고 있지. 아직 이북에서 못 넘어온 식구들도 있고. 남한에는 우리 식구가 총 20,000명 정도 될 거야. 이제 수근이가 왔으니, 조직을 다시 정비해야겠지. 이제 드디어 때가 온 건가!”
구정순은 수근에게 방을 배정해 주고 영숙을 불렀다.
“영숙아, 아무래도 집을 더 넓혀야겠다. 식구들이 많이 늘어날 거니까 살 수 있는 집은 사고 안되면 세라도 얻어서 가능한 많이 확보해야 할 거다.”
처음에는 식구들이 같이 개성에서 넘어온 80여 명 정도였는데 지금은 500명이 넘어 섰다. 계속 집을 구하고 공터에 집을 지어도 턱없이 모자랐다.
“엄마, 초장동에 있는 조선총독부 부산 관사를 불하한다는데 살까? 방이 20개가 넘어요.”
“그건 네가 결정해. 네 일이니까.”
구정순은 외동딸에게 자금과 관련한 모든 권한을 넘겨주었다. 일찍부터 자립하는 훈련을 시작한 것이다.
“내일은 박 선생과 함께 서울을 가야 하니까 우리도 일찍 자자.”
서울은 역시 달랐다. 크리스마스 장식도 많고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로 북적거 렸다. 지난달에 문을 연 미도파 백화점으로 향했다. 영숙은 처음 보는 진귀한 물건 들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특히 화려한 옷들을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구정순 은 몇 가지 선물을 산 다음 박 선생이 소개한다는 사람을 만나러 조선호텔로 갔다. 먼저 온 김중필이 자리에 벌떡 일어서며 거수경례를 한다.
“처음 뵙겠습니다. 박 선생님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내 욕을 많이 하지요? 독한 아줌마라고!”
“네? 하하하”
“잘 생기셨네.”
“감사합니다.”
“여기는 내 딸 영숙이.”
“안녕하세요?”
“네, 반갑습니다.”
오늘의 인연이 김중필에게는 엄청난 행운이 되었다. 김중필은 앞에 앉아있는 아가씨가 수십 년 동안 대한민국에서 자기를 최장수 권력자로 군림할 수 있게 도와주는 파트너가 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박 선생은 영숙을 가리키며 “앞으로 자주 보게 될 분이니까 얼굴을 똑똑히 잘 봐 둬. 나중에 아주 큰 일을 할 사람이니까!” 라고 말했다.
“아이고, 선생님도 참!”
이틀 밤을 지내고 세 사람은 부산으로 출발하였다. 남포동에 도착한 구정순은 아직도 불타는 냄새가 나는 것 같아 코를 찡긋거렸다. 거리에는 걸인들이 많았다. 하루아침에 화재로 알거지가 된 이재민들은 끼니도 제 대로 때우지 못해 도둑질하는 사람도 많았다. 구정순은 식구들에게 매일 이재민들 에게 두 끼를 따뜻한 국밥으로 배를 채울 수 있도록 하라고 지시를 하였다. 그 후로 용두산 입구에서 광복동으로 들어오는 길목은 진풍경이 벌어졌다. 커다란 가마솥 수십 개가 장작 위에 내걸렸다. 달콤한 돼지국밥 냄새가 온 동네에 진동했 다. 길게 늘어선 이재민들은 추위에 발을 동동거리면서도 표정은 밝았다. 끼니를 거를 걱정은 안 해도 되었다. 며칠 지나지 않아 밤 중에 용두산 밑자락 어느 판잣집에서 촛불이 마룻바닥으로 떨어져 불이 났다. 불길은 바람을 타고 삽시간에 번졌다. 또 다시 피난민촌 300여 채 를 잿더미로 만들었다. 구정순은 화재 현장을 수습한 다음 자재를 최대한 확보해서 복구 작업에 몰입하였 다. 박 선생과 영숙도 밤잠을 설치며 복구 작업을 도왔다. 영숙은 이번 기회에 집 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되었다. 이런 경험이 영숙의 앞날에 큰 영향 을 끼쳤다. 영숙은 적산가옥이나 땅들을 닥치는 대로 사들였다. 남포동, 광복동, 초장동, 아미동, 중앙동, 부민동, 영도까지 사들인 집은 다시 세를 놓았고, 그 세 들을 모아 다시 집이나 땅을 사들이고, 땅은 집을 지어 팔거나 세를 놓았다. 몇 년 새에 셀 수도 없을 만큼 집과 땅이 불어났다.
초장동으로 집을 옮기고 남포동 집은 세를 놓았는데 그 중 방 하나에 세 들어온 키가 큰 남자가 기타 하나 달랑 들고 이사를 왔다. 진도에서 부산으로 왔다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밤이면 창가에 앉아 백설희의 '봄날은 간다', 남인수의 '이별의 부 산정거장'을 기타로 치는데 보통 실력이 아니었다. 며칠 만에 남포동 일대에서 제일 인기가 많은 남자가 되었다. 월세를 받으러 몇 번 마주쳤고 영숙은 묘하게 이끌려 결혼까지 하여 다음 해 아들을 낳았다. 두 사람은 한국에서 유일하게 다리가 열리는 영도다리를 구경하고 국제 시장 한바퀴 돌고, 깡통시장 귀퉁이 작은 커피 집에서 맛있는 팥빙수를 사 먹는 데이트 코스를 즐겼다. 영숙의 남편은 아들 정열을 낳고 난 뒤 1년이 채 안 되어 폐병으로 요절을 했다.
1956년 5월 5일, 민주당 대통령 후보였던 해공 신익희가 호남지역 유세를 위해 열 차를 타고 가다가 갑자기 급사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승만 쪽에서 독살했다는 설 이 나돌기도 했다. 5월 15일 이승만 대통령은 제3대 대통령 선거에서 3선에 성공하 며 자유당 장기 집권의 길을 열었다. 1957년 유엔군 사령부가 일본 도쿄에서 서울로 이동하였고, 미국 정부는 주한미군 이 핵무장을 한다고 발표하였다. 북한과 소련에 대한 경고성 발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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