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탁=이경주 기자] 영풍이 적자전환에 대한 배경으로 환경사업 개선을 꼽은 것이 논란이 되고 있다.
2021년부터 매년 환경 개선에 1000억 원 이상을 투입하고 있어 실적 저조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업보고서를 뜯어보면 사실과 괴리가 있는 해명이다. 영풍이 환경 개선 투자와 관련해 비용 처리한 규모는 연간 667억 원 수준에 그친다. 일각에선 실제 집행한 투자비는 이보다 더 작다는 의혹을 제기한다.
영풍이 주주가치 제고를 명분으로 고려아연 경영권 쟁탈에 나선 만큼 이번 해명에 대한 사실관계는 중요하다. 영풍 오너일가와 경영진이 다른 주주들과 투명하게 소통하고 있는지 여부를 살필 수 있는 이벤트기 때문이다. 영풍은 '환경 개선에 진심'이라는 해명과 달리 최근에도 환경법을 위반해 60일 조업 정지 확정에 이어 10일을 더 받을 위기에 처했다.
◇ 환경 충당금 연간 600억원 그쳐...신규 설비투자비 합해도 1000억 미달
이달 14일 공시한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영풍은 올해 3분기 연결 기준 매출액은 6567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8%(3999억 원) 감소했다. 같은 시기 영업이익은 마이너스(-) 179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적자 전환했다. 올 3분기 말 공장 가동률은 53.4%로 역대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실적 관련 모든 수치가 악화하면서 경영 정상화가 시급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에 대해 영풍은 입장문을 통해 "2021년부터 약 7000억 원 규모의 환경 개선 혁신 계획을 수립해 매년 1000억 원 이상씩 환경 개선 사업에 투자하고 있다"며 "환경 개선 혁신 사업이 완료될 때까지는 당연히 수치적으로 보이는 실적은 좋지 않을 수 있다"고 해명했다. 이어 "바꿔 말씀드리면 실적을 포기하고 매년 1000억 원씩 투자할 정도로 환경 개선에 진심"이라고 덧붙였다.
업계 일각에선 이런 해명에 의구심을 품고 있다. 영풍 사업보고서 내 '환경 개선 분야 충당부채 변화'를 보면 해명과 사실이 다르기 때문이다. 충당부채란 지출 시기와 규모는 다소 달라질 수 있지만, 지출 자체는 확정된 부채를 의미한다. 충당부채를 설정하면 비용이 증가하기 때문에 이익에 영향을 미친다.
실제 영풍은 2020년에 처음으로 토지 정화와 석포제련소 주변의 하천 복구를 위해 총 608억 원의 충당부채를 설정했다. 사업보고서 기준으로 따지면 최근에 밝힌 시점(2021년)보다 한 해 앞서 환경 개선 사업에 투자금을 책정한 것이다. 이후 환경오염물질 처리와 지하수 정화·복구 비용이 추가되면서 2021년에 806억 원, 2022년에 1036억 원, 2023년에 853억 원, 2024년에 1억 원의 충당부채를 추가로 설정했다. 이렇게 2020년부터 설정한 환경 개선 분야 충당부채는 총 3305억 원으로, 연평균 661억 원 규모다.
과거와 비교해 환경 개선을 위한 충당부채를 지속해서 설정해왔지만, 최근 영풍이 밝힌 '매년 1000억 원 이상'에는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다. 이 때문에 영풍이 환경 개선 사업에 대한 투자금을 과장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온다.
특히 올해 영풍이 추가로 설정한 충당부채가 1억 원에 불과하다는 점은 이례적이다. 환경 개선 사업에 대한 투자 때문에 올해 3분기 영업이익이 적자로 전환됐다고 설명하기에는 새롭게 비용으로 반영된 환경 개선 충당부채 규모가 너무 작다.
이 때문에 적자 전환 원인에 대한 영풍의 설명이 궁색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여기에 영풍이 환경 개선을 위해 설정한 충당부채를 실제로 사용해 환경 개선을 실행했는지에 대해서도 의혹이 있다. 충당부채는 손익을 계산할 때 미리 비용으로 처리하지만, 최초 사용 계획과 달리 사용하지 않으면 수익으로 반영된다. 따라서 충당부채의 실제 사용 여부는 현금흐름표와 대조해 추정해볼 수 있다.
영풍은 2020년부터 환경 개선 사업을 위한 충당부채를 설정한 뒤, 이듬해인 2021년부터 집행하기 시작했다. 올해까지 합산 사용액은 약 1077억 원으로 연평균 270억 원 수준이다. 이 기준으로 보면 '매년 1000억 원 이상 환경 개선 사업에 투자했다'는 영풍의 해명은 앞뒤가 다른 과장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설령 영풍이 2021년부터 늘린 연간 설비투자액(유·무형자산 취득액)의 증가분을 포함하더라도 매년 1000억 원 이상씩 환경 개선 사업에 투자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영풍은 2020년까지는 연간으로 약 400억 원 수준의 설비투자를 집행했다. 공장 등에 대한 유지보수 비용으로 추정되는데 2021년부터 600억 원 수준으로 늘렸다. 신규 설비투자로 약 200억원을 증액한 것인데 이를 환경개선 비용으로 전액 분류한다 치더라도 환경에 쓴 전체 자금은 연간 약 860억원(연평균 충당금 667억원과 합산)으로 영풍 해명(연간 1000억원)에는 못미친다.
◇ 정치권도 '낮은 잔재물 처리율' 비판… 최근에도 환경법 위반
영풍이 환경 개선을 제대로 하고 있지 않다는 비판은 정치권에서도 제기되고 있다. 지난달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실이 환경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석포제련소가 지난해 1월부터 올해 8월까지 1년 8개월간 처리한 제련 잔재물의 비중은 전체 잔재물의 23.7%에 불과하다.
임 의원실 관계자는 "잔재물 처리 속도가 너무 느려, 내년 말까지 잔재물을 전부 처리할 수 있을지 우려된다"고 밝혔다. 지난 2022년 말 환경부는 석포제련소에 통합환경허가를 내주면서 2025년 말까지 제련 잔재물을 모두 처리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이를 이행하지 못할 것으로 판단된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석포제련소는 이달 초 대구지방환경청 수시 점검 때 황산가스 감지기를 끄고 조업을 한 사실이 적발돼 60일 조업 정지에 이어 '10일 조업 정지'를 추가로 받을 가능성이 커졌다. 영풍 석포제련소에 대한 환경 오염 논란이 터질 때마다 영풍이 강조하는 '환경 개선 투자 7000억 원'이 과연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 과장된 것은 아닌지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다.
철강 및 비철금속 관계자는 "영풍은 석포제련소의 환경 오염 논란이 발생할 때마다 '환경 개선 사업에 7000억 원 투자하고 있다'는 객관적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숫자를 들며 억울함을 호소한다"며 "해명이 사실이라면 어떤 과정을 통해 실제로 어디에 돈이 쓰였는지, 그로 인한 구체적인 개선 사항은 무엇인지 소상히 밝혀야 의혹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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