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에 따르면 2024년 3분기 민간소비는 전기 대비 0.1퍼센트 증가, 전년 대비 1.3퍼센트 증가를 기록했다. 내수 부진 때문에 정부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인 2.6퍼센트 달성은 어려워 보인다. 내수의 한 부분인 건설투자는 전기 대비 2.8퍼센트 감소했다. 건설경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는 언론 보도에도 자주 등장한다.
건설업 침체에 10월 실업급여 신청 '역대 최다'...올해도 실업급여 예산 동 났다(24.11.11 헤럴드경제)
10월 CBSI전월 대비 4.7p 하락..."건설경기 침체 장기화"(24.11.08 뉴시스)
"시멘트 생산마저 외환위기 수준"...얼어붙은 건설 경기, 대한민국 성장엔진 삐걱(24.10.25 매일경제)
작년 건설업 공사장 1만9197곳 '임금 4363억원' 떼먹었다(24.10.28 한겨레)
<뉴시스>는 지난달 건설기업 경기실사지수(CBSI)가 전월 대비 4.7p 하락했다면서 "건설기업이 체감하는 건설경기 부진이 계속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매일경제>는 "내수경기의 '불쏘시개'격인 건설경기 악화로 당초 한국은행이 예상했던 올해 경제성장률 2.4% 달성도 불투명해졌다"고 지적했다. <헤럴드경제>는 "건설업 고용보험 가입자 수가 10월에도 1만5000명 감소"했으며 건설업 일용직과 상용직 근로자 중 각각 2400명과 960명이 구직급여를 신청했다고 전했다.
<한겨레>는 임금 체불에 고통받는 건설노동자의 입장을 생생하게 전했다. 경영난에 봉착한 건설업체들이 불법 하도급을 통해 고통을 아래로 전가하고 있다는 것. 지난해 건설업 임금체불액은 4363억원에 달하고, 올 상반기만 해도 2478억원이라고 한다. 하도급이 다단계로 이뤄진 경우 노동자가 체불임금을 돌려받기는 더 힘들어진다.
건설노동자의 어려움은 고용 관련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지난 10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건설업 취업자 수는 9만3000명 감소했다. 전년동월대비 6개월 연속으로 감소를 기록했다. 건설업 고용보험 가입자 수도 14개월 연속 감소했다. 고용보험 가입자 수의 감소는 건설 상용직 노동자의 감소를 의미하며, 취업자 수의 감소에는 마감공사에 투입되는 일용직 노동자의 감소가 포함된다. 수많은 건설 노동자가 생계의 어려움을 견디지 못하고 이미 현장을 떠난 것으로 짐작된다.
역대 정부는 건설경기 침체라는 말이 나올 때마다 건설 부양책을 발표했다. 경기를 부양하는 방법이 건설밖에 없는 건 아니지만, SOC 투자는 경기 활성화를 위해 전통적으로 활용하던 수단이다. 정책 담당자들은 건설 부문에 돈을 투입하면 파급효과가 높다고 여기는 반면, 사회복지 지출 확대를 통한 경기 부양에는 소극적이다. 복지 지출을 늘릴 경우 나중에 다시 줄이기가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건설업은 고용유발계수가 높은 편이라서 재정 투입으로 고용률도 방어할 수 있다. 건설노동자는 매년 전체 취업자 중 7퍼센트 이상(2023년 기준으로 7.4%)을 차지한다.
침체에 빠진 건설경기를 살리기 위해서였을까. 아니면 총선을 앞두고 성장률을 방어하기 위해서였을까? 올해 1분기에 정부는 건설업 지원에 예산을 집중 투입했다. 2024년 국토부 예산의 30%가량인 18조원 이상을 1분기에 조기 집행하고, 유동성 위기에 빠진 사업장을 지원하기 위해 프로젝트파이낸싱(PF) 보증도 확대했다. 공공부문의 주택 사업은 물론이고 공항, 철도, 도로 등 각종 SOC 사업에도 돈을 풀었다. 그 결과 2024년 1분기에 건설업은 5.5퍼센트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높게 올라갔던 그래프가 2분기와 3분기에는 다시 내려왔지만.
예산 조기투입 외에도, 올해 정부는 건설경기 침체에 대응하기 위한 정책을 자주 발표했다. 1월 10일에 '주택공급 확대 및 건설경기 보완방안'을 발표한 데 이어, 3월 28일에는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건설경기 회복 지원방안'을 발표했다. 5월에는 부동산PF 연착륙 대책을 내놓았고, 8월에는 노동부와 기재부가 일자리TF 회의를 열고 '건설업 일자리 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10월에는 경제장관회의에서 건설경기 부양책을 제시했으며, 얼마 전에는 대통령실이 그린벨트 주택공급계획을 발표했다.
정부가 발표한 대책 중에 유일하게 건설노동자를 언급한 대책은 8월 14일 '건설업 일자리 지원 방안'이다. 그런데 이 방안의 절반가량은 공공이 발주하는 공사를 늘리겠다는 내용으로, 8.8대책으로 불리는 '주택공급 확대방안'과 겹친다. 3기 신도시에 주택 2만호를 추가 공급하고, 빌라 등 비아파트 11만호 이상을 신축매입임대 형식으로 사들여 공급하고, 재건축·재개발 기간을 단축하겠다는 것이다. 건설업체와 부동산 업자를 부양하는 정책이 건설업 고용훈련 지원 등과 함께 묶여 '일자리 대책'으로 포장되어 있다. 사실 그동안 발표된 주택공급 방안들도 명목은 '주거 안정'이었지만 실제로는 건설업체 살리기 대책에 가까웠다.
10월 2일 경제장관회의에서 내수 살리기 명목으로 발표된 대책도 건설업과 관련된 내용으로 채워져 있었다. 정부는 하반기 공공투자를 1조원 늘리고(총 8조원), 신축 매입임대 11만호를 조기 공급하기 위해 인센티브를 확대하고, 민간투자 30조원을 추가 확대하고, 재건축‧재개발 절차를 단축하고, 건설용 토지 출자‧취득 부담을 경감하고, 미분양 주택 매입주체에게 우대 조치를 제공하고, CR리츠를 통해 지방 미분양을 매입하겠다고 했다. SOC보다는 주택건설 부문에 지원이 집중되는 양상이다.
그렇다면 현 시점에 미분양 주택을 정부가 사들이는 정책은 타당한가? 돌이켜보면 윤석열 정부는 출범 직후 분양가 상한제를 거의 폐지 수준으로 완화했다. 분양가 규제가 없으니 건설업체들은 돈벌이를 위해 소형 평형을 늘리고 분양가를 높게 책정했다. 그렇게 비싸게 책정된 비수도권의 소형 평형 주택들이 지금 미분양 상태로 남아 PF문제를 일으키고 건설경기 침체를 유발한다. 짓기만 하면 다 분양되던 시기는 지나갔다. 금리는 올라갔고, 그간의 무리한 사업 확장은 지속될 수가 없다. 그런데도 정부는 건설업체들이 수요 따지지 않고 비싸게 분양한 주택을 세금으로 매입한다. 나아가 건설업체들이 미분양 물량을 털어낼 수 있도록 건설사업자와 주택 구입자 양쪽에 세제 혜택을 주겠다고 한다. 고용이나 내수를 살리는 정책이 아니라 건설업체를 배불리는 정책이다. 신축 빌라 또는 오피스텔을 짓기만 하면 정부가 매입하고 인센티브까지 준다는 정책도 마찬가지다.
건설업체에 주는 혜택에 비해 실제 건설 노동자에게 도움을 주는 정책은 너무나 빈약하다. '건설업 일자리 지원방안'에서 건설노동자와 직접 연관된 대책을 찾아보면 △건설현장 밀집지역에 찾아가서 고용서비스 제공 △건설인력 수요가 존재하는 숙련 일자리로 이동 △타 업종으로 전직 지원 강화 △상용직은 고용유지지원금, 일용직은 300만원까지 생계비 대출 등이 눈에 띈다.
정부의 지원책이 건설노동자에게 안전망이 될 수 있을까? 건설업의 특성을 먼저 짚어보자. 건설업은 수주산업이다. 수주를 받지 못하고 착공이 이뤄지지 못하면 이윤이 나올 곳이 없다. 그래서 건설업체들은 장기 고용으로 숙련된 노동력을 확보하기보다 하도급 형식의 외부 계약으로 일감이 있을 때만 인력과 장비를 동원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그 구조가 건설업체 입장에서는 이윤 추구의 메커니즘이지만, 노동자 입장에서는 특수고용직 또는 일용직으로서 고용 불안정과 무권리 상태에 놓인다는 의미가 된다. 하나의 현장이 마무리되는데 다음 현장이 약속되지 못한 건설노동자의 고통은 당사자가 아니면 이해하기 힘들다.
특수고용직 또는 일용직으로 일하는 건설노동자들. 수주가 없을 때 아무도 이들을 책임져주지 않기 때문에 노동조합에서는 고용안정을 최우선으로 요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가 노동조합을 '건폭'으로 몰면서, 어렵게 확보한 조합원의 고용안정마저 무너지고 있다. 그래서 현장에서는 이제와서 '찾아가는 고용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정부의 약속을 신뢰하지 못한다. 타 업종으로 전직을 지원하겠다는 것은 지원책이 아니라 아예 건설현장을 떠나라는 소리로 들린다.
또한 건설업은 사이클이 길고 복잡한 메커니즘이 존재하는 산업이다. 현재와 같은 구조에서는 돈을 풀어도 현장으로 내려가지 않고 중간에서 '배달사고'가 발생하거나 몇몇 사람만 배불릴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더구나 최근에는 건설사들이 금융비용 및 자재비 인상을 감당하기 위해 불법 하도급을 늘려 인건비를 줄이고 있다. 지난 8월 건설근로자공제회 '2024년 건설근로자 종합생활 실태조사'에 따르면 건설노동자들의 평균 임금소득은 2022년 대비 87만5098원 하락했다. 그런데 정부는 일용직 노동자에게 300만원까지 생계비 대출을 해주겠다고 하면서 한편으로는 일용직 노동자 보험료 징수를 발표했다.
지금 건설현장의 노동자들은 어떤 상황에 처해 있을까. 건설노조의 보도자료(24.09.25~24.11.04)에서 실제 증언들을 찾아봤다.
"회사를 소유한 대주주와 최고경영책임자들은 무리한 경영으로 노동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그들은 회사가 돈을 벌면 자기 주머니에 넣기 급급했고, 위기에 처해지니 가장 먼저 구조조정과 임금삭감을 감행하며 노동자들을 길거리로 내몰았다"
"두 달 동안 보름 일했다."
"인건비가 너무 비싸 분양가가 올랐다고 하는데... 건폭몰이 이후로 건설노동자 임금은 오른 적이 없기 때문에 화가 났다."
"(2024년 임금협상에서) 사측은 최대 일당 2만원 삭감을 제시하고 있다. 지난해 임금동결에 이어 올해는 대폭 삭감을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4년 전 수준의 임금이다."
"350~400명이 출근하는 현장에서 30명 말고는 전부 불법적인 고용이다."
"최근에는 도급으로 일해야 하는데, 물량이 잘 나오는 구간을 배정받으려면 상납금까지 바쳐야 한다."
조 단위 예산이 투입되는데 현장의 건설노동자에게는 온기가 전해지지 않는다면 부양책은 대체 무엇을 위한 것인가? 역대 정부가 건설업을 경기부양의 도구로 사용하며 건설업체들에게 충분한 이윤을 보장했을 때도 노동자들에게 돌아온 혜택은 거의 없었다. 반대로 건설 경기가 나빠질 때면 리스크는 하도급 업체를 거쳐 노동자들에게 전가된다. 지금 건설현장에서는 원청 시공사와 전문건설업체가 이중삼중으로 노동자 쥐어짜기를 하고 있다. 건설업계가 어렵다는 이유로 현장 노동자의 임금(일당)이 1~2만원씩 삭감당하는 일이 벌어진다.
건설산업이 진정한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발전하기를 바란다면 현장 노동자들이 심각하게 느끼는 문제를 우선 해결해야 한다. 불법 하도급은 당연히 근절해야 한다. 숙련공 양성을 정부가 더 많이 책임지고, 안전한 건설현장을 만들어 청년층이 유입되게 해야 한다. 지금처럼 외부 요인으로 일감이 없어져서 고통받는 노동자에게는 빚으로 버티라고 할 게 아니라 일시적으로라도 생계비를 지급해야 한다. 이렇게 건설노동자의 고통을 덜어주는 데 집중한다면 오히려 실질임금이 올라가면서 소매판매 등 내수 회복도 기대할 수 있다. 지금처럼 건설업체에만 돈을 쏟아 붓는 방식의 경기 부양은 점점 한계에 부딪칠 것이다.
*건설산업의 특징을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주신 백석근 건설노조 지도위원에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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