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가진 우리 교육, '교실붕괴론'을 넘어선 대안이 필요하다

망가진 우리 교육, '교실붕괴론'을 넘어선 대안이 필요하다

프레시안 2024-11-18 19:58:40 신고

<못된 아이들이 장악한 교실? '교실붕괴론'이 교실을 망쳤다>에서 이어짐

교실붕괴론과 사교육의 융성

교실붕괴론의 등장과 함께 공교육이 무능하기 때문에 사교육이 번성한 것이고, 따라서 정부는 이제 사교육 규제가 아닌 공교육 개혁으로 정책 방향을 잡아야 한다는 논리가 만들어졌다.

학교․교실․수업의 붕괴를 일으키는 학생들의 행위는, (학원에서) 보다 효과적으로 공부하기 위해 취하는 극히 합리적 행위이며, 교육을 파괴하거나 붕괴시키기는커녕 오히려 교육성과를 효과적으로 달성하려는 행위로 볼 수 있다.

... (따라서) 무엇보다도 교육정책의 기조를 사교육 혁파에서 공교육 정상화로 전환하지 않으면 안 된다.

- 한준상 연세대 교육학 교수, '교실에서 잠자는 아이들:사회문화적 원인과 대책'(2001.5.)

실제 교실붕괴론이 한국사회를 휩쓴 이후 정부의 사교육 규제 정책은 사라졌다. 현재 사교육은 거의 세금처럼 모든 학부모가 무조건 지출해야 하는 비용이다. 서울에 사는 고등학생 자녀가 2명인 중위소득 4인 가족이 수입의 38%를 사교육비에 지출한다는 통계가 있다, (<자살하는 대한민국>, 2022)

그러나 한국은 더 이상 사교육을 규제하지 않는다. 학교에서의 선행학습만 불법이고 정작 학원에서의 선행학습은 규제하지 않는다. 유치원부터 미적분을 가르치는 사교육이야말로 아이들을 죽이는 아동학대와 다름 없다. 그러나 정부의 "사교육 경감 대책"은 사교육을 규제하는 것이 아니라 "잠자는 교실을 깨워" 공교육이 사교육에 대한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다.

◦ (교육청·학교) 사교육 경감을 위해서는 잠자는 교실을 깨우는 것이 중요하며, 교실 수업 혁신이 절실

※ (교육청 담당관협의회 '23.4.) "사교육 정책은 공교육 경쟁력 제고와 병행 필요"

◦ (언론·전문가) 민간 최신기술 등을 활용하여 공교육 내에서 사교육 수요를 흡수하는 전략 필요*

* "민간기업의 우수한 기술과 제품을 활용해 공교육을 보완해야"(한국디지털교육협회, '23.5.)

- 교육부, '사교육 경감대책'(2023. 6. 26.)

정부가 말하는 공교육의 경쟁력이란 잠자는 아이를 깨우기 위한 흥미 유발 수업 (협동수업, 거꾸로 수업 등), AI 디지털 교과서 도입 등이다. 그러나 이것이 과열된 사교육을 줄일 거라고 누구도 믿을 수 없을 것이다. 정부의 정책은 이처럼 기만과 위선으로 가득차 있다.

그런데 정부의 정책이 기만적이고 위선적이 된 근본적 이유는 교실붕괴론을 주장하며 공교육의 혁신을 주도한 숱한 교육계 학자들이 사실 공교육 무용론을 믿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교실붕괴론자들이 강조한 것, 공교육의 병폐와 사교육의 강화

그래서 나는 수업시간에 '자는 아이들을 깨우지 마라'라고 말하고 싶다. 혼을 내거나 억지로 깨워봤자 교사가 그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는가? 냉정하게 생각해보자. 일제식, 획일식 수업에서 그 아이가 눈만 뜨고 있어 봤자 성장은 일어나지 않는다.

- 성열관 경희대 교육학 교수, '자는 아이들을 깨우지 마라'(2014. 8. 20.)

<타임지>(Time, 2000. 5. 22)가 21세기 전망을 다룬 특집 기사 중에서 교사를 장차 사라질 직업 순위 2번째로 지목한 것처럼, 현재와 같은 모습의 교직은 사라지거나 대폭 축소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식이 있는 곳에는 교육이 있게 됨에 따라 교사의 의미는 한 층 확대될 것이다. 가르칠 만한 지식을 가진 자는 누구나 교사가 되는 것이다. … 자유롭게 이루어지는 사교육의 교육적 기능을 인정하고 활성화하여, 공교육과 사교육간의 상호보완적 관계를 정립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 나병현 서울대 교육학 교수, '학교교육의 위기와 공교육 이념의 재검토'(2001)

교실붕괴론자들은 공통적으로 '국가 수준의 공교육이 근본적 한계'에 부딪혔으므로 근본적 개혁은 불가능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들은 우리나라 사교육의 순기능을 인정해야 하며, 동시에 경직된 학교의 틀을 깨고, 교직 자격을 완화하여 공교육과 사교육의 벽을 허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국 교실붕괴론자들은 한편으로 공교육의 해체를 주장하며 '공교육을 구조조정하여 공교육과 사교육의 벽을 허무'는 것이 진짜 목표라 할 수 있다.

교실붕괴론자들은 우리나라의 심각한 사교육 과열 현상과 갖가지 병폐에는 눈을 감은 채, '잠자는 아이 vs 무능한 학교'의 프레임을 만들어 학교를 개혁의 대상으로 몰아붙였다. 결국 교실붕괴론자들이 주도한 공교육 개혁은 '공교육 때리기와 사교육 규제 철폐'로 귀결되었다. 그 결과 우리나라 사교육 시장은 연일 성장을 지속하고 있다. 교실붕괴론에는 사교육 출신 업자들도 가세했다. 이범, 이찬승 등 사교육에서 많은 돈을 번 이들이 교실붕괴론 및 교육개혁 논의에 합세해 있다. 교실붕괴론이 사교육 업계의 이익에 부합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교실붕괴론에 휘말려든 진보진영

그리고 소위 교육의 진보를 주장하던 사람들 역시 교실붕괴론의 논리에 동조하고 있다. 비민주적 학교, 구태의연한 수업, 게으른 교사들이 문제라고 보던 진보주의자들의 입장과 교실붕괴론자들의 입장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꼈던 것이다. 전교조는 교실붕괴론자들의 입장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참교육실천위원회는 학교 붕괴를 이렇게 정의했다.첫째, 교사·학생 사이의 문화적 세대 격차, 학교 시스템에 적응할 수 없는 학생 품성 등의 요인으로 인하여 사제간 의사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고, 학생들이 교사 품 밖에 벗어나 있다.

둘째, 학교에서 가르치는 지식이 사회적 유용성을 상실하여 교사들이 가르칠 맛을 잃고 학생들은 배울 의욕이 없다.

셋째, 학교 교사들은 학교에서 무엇인가 열심히 하지만, 그 결과가 아이들의 교육적 경험을 풍요하게 하는 것과는 다르게 일어난다.

넷째, 복합적으로 교사와 학생이 학교에서 벗어나기만을 희망하며, 그렇다고 뾰족하게 그 미래가 희망적이지 않다.

- '교실붕괴를 보는 교육계의 시각'(<시사저널>, 2000. 11. 23.)

이처럼 우리나라 진보 세력은 교실붕괴론자들의 논리에 휘말려 들었고 지금도 그렇다. 전교조는 1999년 교실붕괴론이 떠오르자마자 자체조사를 실시하여 교실붕괴론자들의 논리에 다시 한 번 확인하며 힘을 실어 주었고, 우리 교육의 위기에 대해 부끄러움과 책임감을 느낀다며 교육 혁신을 다짐했다. 전교조는 아름다운 학교운동 본부를 꾸려 학교 혁신을 다짐했고 이것은 이후 혁신학교 운동으로 이어진다.

적어도 그때까지만 해도 이러한 교실 붕괴의 원인은 아이들 탓이었지, 교사 탓으로 돌리지 않는 분위기였다. 교사들의 수업은 성역이었다. 학생이 바뀌어야 하고, 학생이 착해져야 한다며 모든 책임은 학생에게 돌렸다. 그는 "교실의 혁신은 아이들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교사들을 바꾸는 것"이라고 말했다.

- '교실 붕괴 고민하다보니 학교 혁신 전도사 됐네요'(<한겨레>, 2019. 10. 19.)

학교에서 학생들이 주구장창 잠만 자는 이유는 아이들 잘못만이 아니다. 만약 교사가 수업시간에 들어가 "오늘은 내 수업은 게임을 하겠다"고 한다면 엎드려 자는 학생이 있을까? 하고 싶은 공부를 하면.... 자신이 필요한 공부를 하게 한다면 수업 시간에 엎드려 잠을 자는 학생이 나오지 않는다.

- 김용택, '수업시간에 잠자는 아이들 교육이 문제다', (<충청메시지>, 2023. 11. 23.)

그러나 전교조를 비롯한 소위 진보교육론자들의 교육 혁신 운동은 대안이 되지 못했다. 오히려 7차 교육과정, 교과교실제, 고교학점제 등 교육을 뒤흔드는 정책들에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시종일관 끌려 다니다 결국 침묵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나라 진보 교육론자들이 애초에 교실붕괴론자들의 논리에 내심 공감하였고, 그들의 목소리에 소극적으로 동조하거나 방조, 묵인했기 때문이다.

교실붕괴의 해법이 교실을 해체시켰다

교실붕괴론자들은 수업이 안되고 수업이 방해된다는데 초점을 맞춘다. 그래서 교수법이 좋으면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고 본다. 대표적으로 협동수업이 잘 되면 학폭이나 따돌림도 예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행복과 자유를 교육의 본질로 본다. 따라서 교사들의 학생에 대한 공감과 이해를 중시한다. 아이들은 선량함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줄여주면 아이들의 선량함이 드러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활동중심 교육과정과 교수방법을 흥미롭게 해주거나 놀이나 스포츠를 통해서 놀려주고 여유있게 해주면 경쟁, 스트레스, 우울증을 약화시키는 데 도움된다고 본다.

또한 구시대 교사의 문화와 신시대 학생의 문화가 갈등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교사들이 학생들의 문화에 적응해야 한다는 식이다. 또한 학생들의 자유냐 교사의 권위냐라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교사들이 가지고 있던 권위를 비판하고 허무는 데 관심이 있다. 교사의 훈육을 최소화하고 규율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이들은 학급이라는 제도를 근대적인 전체주의적인 훈육체제로 본다. 학폭이나 스트레스도 이러한 강요된 집단생활을 원흉으로 본다. 따라서 학급제 수업을 최소화시키고 나아가 학급대신 교과위주로 이동수업하는 걸 확대한다. 궁극적으로는 미국식 이동형 수업을 통해 학급을 실제로 해체하려고 한다. 전체주의 산물인 학급해소를 통해 학급붕괴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학급폭력은 학급해소를 통해 원천적으로 해소될 것이라고 본다.

교실붕괴의 처방이 반교육을 만들었다

그러나 교실붕괴론자들의 미사여구와는 달리 교실은 더욱 망가지고 있다. 선택형 교육과정이 되면서 수업 시간에 자는 아이들은 더 늘어났다. 2022년 10월, 민형배 의원과 좋은교사운동 정책위에서 교사 261명을 대상으로 '일반계 고등학교 고3 교실 수업 미참여 학생 실태조사'를 실시 결과 한 학급을 25명이라 하면 평균적으로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이 10명 미만이었다. '한 명도 수업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응답도 5건이나 나왔다.

획일적 입시교육에서 벗어나자는 주장과 정반대로 고등학교 교육은 대학입시에 완전히 종속되었다. 현재 고등학교 교육과정은 상위권 대학이 요구하는 입시요강을 맞추기 위해 짜여진다. 고등학교 교육이 대학 입시요강에 종속되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서울대가 입시요강을 바꾸면 그에 맞게 교육과정을 급조해 대응하기도 한다. 고등학교 아이들의 자퇴가 늘고 있다. 2023년 고등학생의 학업중단율은 1.9%(2만 3981명)이다. 2년 전인 2020년 1.1%(1만 4439명)에 견줘 거의 2배, 1만 명 가까이 늘어난 수치다. 사교육비는 연일 최고 매출을 갱신하고 있다.

학교폭력, 교권침해, 일탈 행동, 부적응, 소외, 학업중단율 모두 늘어났다. 제멋대로 행동하는 아이들을 교사가 지도하다가 교권침해, 민원, 소송에 당한다. 못된 아이들이 교실을 장악하고, 교사들은 난장판이 된 교실 속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허수아비 신세가 되었다. 이제 아이들은 수업이 잘 안 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교실에서 폭력과 이기심을 배워 가고 있다. 교육의 실패가 문제가 아니라 반 인성교육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교실붕괴론'에 대항하는 '교실해체론'

'교실붕괴론' 으로 인해 학교현실 파악에 오류가 생겨났고, 더욱 공교육이 파괴되었고, 교실해체를 가속화시켰다. 즉, 교실붕괴가 아니라 교실해체로 보아야 현실이 더 잘 파악된다. 교실붕괴론자들은 교실을 해체시키고 공교육을 해체시켰다. 그래서 우리는 현재 교육개혁을 밀어 붙이고 있는 주류 이론가들을 '교실붕괴론자'라 부르고 이에 대항하는 우리들의 이론을 '교실해체론'이라 부르기로 한다. 이와 같은 교실 해체는 교실붕괴론자들이 밀어붙인 신자유주의적 교육개혁 조치, 교사의 목을 위협하는 악법들을 제정한 국회, 그리고 학생인권만을 무분별하게 강조한 자유주의적 학생 중심주의의 합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교실해체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우리 교육의 주류 이론 '교실붕괴론'의 잘못된 진단, 패착을 조목조목 밝히고 평화적 공화주의라는 대안을 제시하기 위한 글쓰기를 시작하려 한다. '교실붕괴론'에 대항하는 '교실해체론'은 다음과 같이 10가지 문장으로 간단하게 표현할 수 있다.

1) 교육의 본질은 '행복'이 아니라 '평화'다.

2) 학교폭력의 원인은 이해나 가치 갈등이 아니라 '힘의 불균형을 동반한 인정투쟁'이다.

3) '학급을 없애는 것'이 아닌 '학급공동체를 강화' 해야 한다.

4) 교육 문제를 해결하려면 '수업' 보다 '훈육'을 중시해야 한다.

5) 교사는 아이들을 대할 때 ' 공감과 이해' 보다 '비판적 분석과 대안 제시'가 중요하다.

6) 교칙을 '최소화'하는 것이 아니라 '강화'해야 한다.

7) 교사의 권위는 '해체'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합리화- 법제화' 해야 한다.

8) 통합교육에서는 '다양성 존중' 이 아닌 '무분별한 통합교육 강요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9) 학교폭력 문제에서 학부모 변수가 '없는 것'이 아니라 '큰 역할을 한다.'

10) 진로교육을 통해 '자신의 꿈과 끼를 추구'하는 것보다 '학급에서 역할 나눔이 더 중요'하다.

교사의 훈육권을 박탈한 교실붕괴론

교실붕괴론자들의 가장 큰 문제는 교사의 훈육권을 박탈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교사들을 전근대적인 권위주의자로, 시대와 맞지 않는 게으른 집단, 개혁의 대상으로 바라보며 교사들에게서 교육권을 빼앗았다.

교실붕괴론자들은 수업이 붕괴되고 학교폭력과 교권침해가 늘어난 이유는 학교의 권위적, 억압적 교육에서 오는 스트레스 때문이라 했다. 따라서 학교의 규율, 훈육을 최소화 하고 학생들의 인권을 존중해 주하면 자연스레 학생들의 스트레스도 줄고, 수업도 잘 되고, 폭력도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교칙과 훈육이 사라진 학교는 아수라장처럼 변해 갔다.

훈육은 공교육의 기초이며, 교사가 가져야 할 기본권에 해당한다. 잘못된 행동에 대해 '사랑으로 감싸 주는 게 우선' 이라거나 '학생과 학부모가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않도록', '민원이 생기지 않도록 일을 처리하라'는 지금의 학교는 정상이 아니다. 학교 교육은 원칙과 중심을 잃어가고 있다.

훈육은 교사의 기본권이자 교사와 학생을 보호하는 길

자녀의 잘못을 지적하는 담임교사에게 '왜 우리 아이를 사랑으로 대하지 않느냐?' 고 항의하는 학부모는 어떻게 되었을까? (1편 참조) 결국 선도위원회와 교권보호위원회를 모두 열기로 결정한 뒤부터 아이의 태도, 학급의 분위기가 바뀌었고, 학부모의 악성 민원도 줄어들었다.

아이는 선도 조치를 모두 수용하고 태도가 확 바뀌었다. 다른 아이들 만큼 확 바뀐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자기 잘못을 고치려 노력하기 시작했고, 좋은 태도를 흉내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기 잘못이 지적되었을 때 예전처럼 교사를 공격하며 온 학교를 뒤집어 놓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 끊었던 분노조절 약도 먹기 시작했다.

그 뒤 1년이 지났지만 이 아이는 아마 큰 사고 없이 이 학교를 졸업하게 될 것이다. 위기 상황이었던 교사도 편안히 학교생활을 하고 있다. 어수선한 학급의 분위기도 개선되었다. 적절한 훈육과 교육벌이 학생과 교사 그리고 학급 모두를 구하는 길이 된 것이다.

이처럼 무분별한 공감, 이해가 아닌 교칙, 훈육의 강화를 통해 우리는 망가진 교실을 회복할 수 있었다. 가장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가장 빠른 때라고 한다. 지금이라도 망가진 우리 교육을 바로 세우기 위한 논의를 시작해야 할 때다.

▲ 학교 교실(자료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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