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하청업체로 전락하는 반도체

미국 하청업체로 전락하는 반도체

뉴스웨이 2024-11-18 16:29:32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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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홍연택 기자
미국의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이 가시화하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비롯한 국내 반도체 업계도 긴장감에 휩싸였다.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의 트레이드 마크 '자국 중심' 정책 기조가 다시 고개를 들면 보조금 등 혜택도 백지화되면서 우리 기업의 전략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인식에서다.

반면, 인공지능(AI) 반도체 '큰손' 엔비디아 중심의 시장질서는 더욱 공고해지면서 삼성과 SK 등 대표 반도체 기업이 이들을 받쳐주는 하청업체로 전락할 것이란 우려마저 흘러나온다.

美 전문가 "반도체 보조금 백지화, 대중 규제 강화 가능성↑"



'트럼프의 귀환'이 성사된 직후 미국 현지에선 이후의 정책 변화를 놓고 전문가들의 진단이 잇따르는데, 보조금 폐지와 관세 부과, 대(對) 중국 규제 강화로 한국 기업이 어려움에 처할 것이란 의견이 주를 이룬다.

반도체도 예외는 아니다. '보조금 폐지' 등 여러 시나리오 중 하나로 여겨지던 사안이 정재계를 중심으로 공론화하면서 걱정을 키우는 모양새다.

미국상공회의소 아시아 담당 부회장을 거친 태미 오버비 올브라이트 스톤브리지 그룹 선임고문은 15일(현지시간) 워싱턴DC의 아메리칸대학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트럼프 당선인이 반도체법에 근거한 보조금을 회수할 가능성에 주목했다.

그는 우리나라의 '온라인 플랫폼법'이 양국 갈등의 불씨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과 미국의 대형 플랫폼 기업을 규제하면서 중국 기업을 제약하지 않는 제도의 틀이 트럼프 정부의 심기를 건드릴 것이란 이유다. 그러면서 그는 "트럼프 당선인이 한국은 미군 주둔을 위해 100억달러를 내야하고, 미국은 삼성이나 SK하이닉스에 아무것(보조금)도 주지 않아도 된다고 할 것"이라 주장하기도 했다.

결국 트럼프 행정부가 자국의 이익을 위해 반도체법을 무기화할 것이란 얘기다. 미국은 자국 내에서 반도체를 만드는 기업에 보조금 390억달러와 연구개발비 132억달러를 제공하는 이른바 '칩스법'을 가동했는데, 트럼프 당선인은 외국 기업에 혜택을 주는 격이라며 줄곧 반감을 드러냈다. 한 인터뷰에선 반도체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면 각 기업이 미국에 공짜로 공장을 설립할 것이란 견해도 내비쳤다.

동시에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향(向) 반도체 수출에도 제동을 걸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AI와 고성능 반도체 수출을 중단함으로써 미국의 중국 규제에 동참할 것을 압박할 수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미 미국 상무부는 대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 TSMC에 관련 내용을 담은 공문을 보냈다. AI 가속기나 GPU(그래픽처리장치) 가동에 쓰이는 7nm(나노미터) 이하 첨단 반도체를 중국에 판매할 땐 반드시 미국 정부의 승인을 얻으라는 게 골자다.

'칩스법' 전면 개정?···삼성전자·SK하이닉스, 보조금 어쩌나



이러한 분위기는 국내 기업엔 악재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 바이든 행정부의 기조에 발맞춰 현지에 대규모 생산 체계를 구축하기로 하고 이를 바탕으로 거액의 보조금까지 얻었는데, 자칫 그 성과가 무위로 돌아가는 탓이다.

실제 삼성전자는 64억달러(약 8조8000억원), SK하이닉스는 4억5000만달러(약 6200억원)의 보조금 액수를 확정지었고, SKC의 반도체 유리 기판 계열사 앱솔릭스도 7500만달러(약 1023억원)를 받는다. 다만 이들 모두 예비 거래각서 단계에 머물러 있는 탓에 수령 여부를 확신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최근 66억달러 수령을 확정한 TSMC처럼 바이든 대통령 임기 내 타협점을 찾으면 문제가 없다는 의견도 있지만, 이면엔 트럼프 정부가 작정하고 보조금을 거둬들이려 한다면 의미가 있겠냐는 회의적인 시선도 존재한다.

반도체 사업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했을 때 미·중 관계가 악화일로를 걷는 것도 우리 기업엔 부담이다. 미국의 규제가 강화될수록 차질이 불가피해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낸드플레시와 D램 제품의 약 30%를 중국에서 생산한다. HBM(고대역폭메모리)과 같은 고부가 품목의 현지 수요도 상당한 것으로 파악된다. 앞서 미국이 수출 규제를 검토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을 때도 선제적으로 HBM을 비축하려는 중국 기업의 움직임에 반사이익을 거두기도 했다.

특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미국 상무부로부터 '검증된 최종사용자'(VEU) 자격을 받아 중국 공장에 첨단 반도체 장비를 반입했는데, 트럼프 정부 아래선 이 제도가 유지될 지 여부를 장담하기 어렵다.

김혁중 대외경제연구원 북미경제전문연구원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 내 공장에 대한 VEU 지위 부여는 양국 간 긴밀한 협의를 통해 이루어진 사안"이라며 "행정부 판단에 따라 언제든 달라질 수 있어 트럼프 행정부에서도 연속성 있는 점검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자국 우선' 트럼프 강경 행보에···'엔비디아' 중심 시장질서 굳어질 듯



무엇보다 반도체 업계가 마음을 놓지 못하는 대목은 트럼프 행정부가 손을 쓰면 쓸수록 우리 기업의 지위가 내려앉게 된다는 데 있다. 엔비디아가 시장에서 주도권을 잃지 않도록 HBM 등 제품을 적시에 공급하는 업체로 전락할 수 있다는 의미다.

현재 전세계 반도체 업계엔 엔비디아 중심의 질서가 굳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AI 트렌드와 맞물려 반도체 수요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이 회사가 그 핵심인 GPU 시장의 80%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다 보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올 한해 엔비디아와의 관계를 공고히 하는 데 상당한 시간을 쏟았다. 그간 HBM 공급을 독점해 온 SK하이닉스는 현존 최고 높이의 '12단'에 장차 내놓을 '16단' 제품에 이르기까지 비즈니스를 확장하기 위해 만전을 기했고, 삼성전자 역시 새롭게 거래를 트고자 노력했고 그 결과 HBM3(4세대) 퀄 테스트를 넘어서는 성과를 냈다.

미국의 새 행정부가 가동되면 이러한 구도는 더욱 선명해질 것으로 점쳐진다. 트럼프 당선인은 그간 해외 기업이 반도체 사업에서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데 불만을 표시했다. TSMC를 겨냥하듯 "그들은 우리 사업의 95%를 훔쳤고 지금 대만에 있다"고 언급한 게 대표적이다. 선거 직후 뉴욕 증시에서 엔비디아와 AMD 주가는 상승하고, TSMC는 뒷걸음질 친 것도 이를 방증한다.

"'트럼프 인맥' 중심 네트워크 강화해야"···사장단 인사 촉각



이렇다 보니 재계 전반에서는 우리 반도체 기업이 미국 내 네트워크를 재정비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오고 있다. 즉 '트럼프 인맥'을 중심으로 관계를 넓혀 현지 동향에 기민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일단 삼성전자는 작년 말 실 단위로 승격한 글로벌퍼블릭어페어스(GPA)를 중심으로, SK는 북미 대관 컨트롤타워 'SK 아메리카스'를 앞세워 각각 트럼프 2기 인사와 접촉할 것으로 알려졌다.

최태원 SK 회장도 4대 그룹 수장 중 가장 먼저 미국을 찾는다. 내년 2월 최종현학술원이 주최하는 '제4회 트랜스 퍼시픽 다이얼로그(TPD)' 참석차 미국 워싱턴DC로 이동하는데, 이 기간 현지 정부 인사와 회동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덧붙여 이들 기업의 임원 인사 향방도 관심사다. 미국 외교 관료 출신 성 김 고문을 그룹 싱크탱크 사장으로 영입한 현대차그룹의 사례처럼 삼성과 SK도 비슷한 배경과 역량을 지닌 인물을 전면에 내세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으로서는 어떤 것도 예단하기 어렵다"면서도 "당선인이 그간 예측을 벗어난 행보를 이어온 만큼 가능한 모든 시나리오를 염두에 두고 대응 방안을 수립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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