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어즈앤스포츠=김민영 기자] 헐크’ 강동궁(SK렌터카)이 이번 2024-2025시즌 화려하게 부활했다.
프로당구 PBA 출범과 동시에 프로 당구선수로 전향한 강동궁은 PBA 원년 멤버로 큰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하지만 2019년 출범 이후 예상보다 느리게 적응을 마친 강동궁은 6번째 투어인 SK렌터카 PBA 챔피언십에서야 비로소 첫 우승을 차지하며 헐크의 존재감을 과시했다.
이후 2021-22시즌 개막전인 블루원리조트 챔피언십에서 한 차례 더 우승을 차지한 강동궁은 오랜 침묵 끝에 2022-23시즌 8차 투어 크라운해태 챔피언십에서 오랜만에 결승에 올랐으나 준우승에 그쳤다.
2023-24시즌에 단 한 차례도 결승 문턱을 넘지 못한 강동궁은 2024-25시즌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돌아왔다. 시즌 첫 대회인 개막전 우리금융캐피탈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부활의 기지개를 켠 강동궁은 일주일 간격으로 열린 2차 투어 하나카드 챔피언십에서도 2연속 결승에 오르는 파죽지세의 기세를 보여주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베트남에서의 3차 투어를 대회 우승자인 다니엘 산체스(스페인, 에스와이)에게 16강에서 패하며 한숨 고른 강동궁은 다시 한국에서 열린 4차 투어(크라운해태 챔피언십)에서 또 한 번 우승을, 5차 투어(휴온스 챔피언십)에 준우승을 연달아 차지하며 '커리어 하이'를 이어 갔다.
시즌 개막전 우승으로 그 어느 우승 때보다 강렬한 존재감을 나타냈다. 우승까지 2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는데, 기쁨이 큰 만큼 그동안 우승에 대한 갈망과 스트레스도 컸을 것 같다.
PBA 출범 직후에도 바로 성적을 못 내서 엄청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스트레스도 아니었다. 계속 공을 열심히 치고 있었기 때문에 기회가 언젠가 올 거라는 나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생각보다 좀 늦긴 했지만, 자신감이 올라올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PBA 룰 자체가 너무 스펙터클하다. 항상 마지막에 한두 개 남겨 놓고 역전패를 당하거나 아쉽게 놓쳐서 지는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심리적으로 조금, 아니 되게 힘들었다.
이번 시즌을 앞두고 우승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훈련이 있었나?
집중력을 키우기 위해서 좀 많이 노력을 했는데, 살이 빠지니까 체력적으로 좀 많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파워는 줄지 않았는데, 공을 치면서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 같은 예전에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느낌을 많이 받았다. 아마도 PBA에 오면서 심리적인 압박이 더 심해졌거나 오히려 훈련을 너무 많이 하면서 스스로에게 너무 채찍질을 많이 한 건 아닌지 고민을 많이 했다.
사실 진짜 열심히 하는데 계속 잘 안되니까 거기에 대한 화도 너무 많이 나고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못 이겨내는 것 같아서 좀 힘들었는데, 강차연구소를 시작하고 나서 그런 부분이 많이 좋아졌다. 이전보다 개인 연습은 좀 줄이고 어린 친구들을 가르치면서 기본기나 상식적인 공들을 나도 같이 연습하면서 오히려 정신적으로도 조금씩 회복되고 마음도 편해졌다. 너무 나한테만 갇혀 있는 느낌이었는데, 조금 벗어나면서 그런 것들이 좀 많이 좋아졌다.
사실 연구소를 하면서 거기에 신경을 쓰느라 성적이 안 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다.
개인 연습실에서 혼자 연습하는 것도 좋지만, 연구소에서 어린 선수들을 가르치면서 오히려 잊고 있던 기본기를 돌아볼 수 있었고, 건강한 에너지도 많이 받았다. 나에 대한 기대가 그만큼 컸기 때문에 내가 스스로 그 상황을 이겨내야 했다. 그걸 이겨냈더니 이번 시즌 출발부터 좋은 성적이 나오는 것 같아서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지난 시즌 막바지부터 분위기가 좋았다. PBA 팀리그 포스트시즌에 SK렌터카가 파이널까지 올라가서 준우승을 했는데, 그런 좋은 기운이 개인 투어에도 영향을 미쳤나?
많이 미친다. 팀리그에 속한 선수라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주장을 맡고 있는 선수들은 아무래도 조금 더 팀리그 성적에 영향을 받는 것 같다. 사실 팀리그가 되게 어렵다.
PBA 출범 원년 선수이자 팀리그 원년 멤버이기도 하다. 새로운 환경에 대한 적응을 어떻게 극복해 왔나?
UMB에서는 이변이라고 할 게 거의 없다. 톱랭커들은 당연히 어느 정도는 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고, 그런 선수를 상대하는 선수도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크게 경기가 뒤집히는 경우가 많지 않다. 그런데 PBA는 그런 생각을 거의 할 수 없다. “내가 강동궁인데, 내가 누군데” 이런 생각을 나도 못하고, 상대 선수도 거의 안 하는 것 같다. PBA에서 뛰는 128명의 선수들 모두 내가 컨디션이 좋으면 쿠드롱이라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는 게 눈에 보인다.
기존에 1점제 40점 경기는 변화가 적지만, PBA 룰은 짧은 세트와 2점제 경기 때문에 진짜 너무 빠르다. 또 호텔이나 전용 경기장, 방송 촬영 등 외부 환경에서 받는 중압감도 커서 못 할 때는 한없이 자신감이 떨어지고, 또 잘할 때는 한없이 자신감이 올라가는 구조다. PBA는 누구라도 어느 순간 좋은 느낌이 오면 언제든지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 선수들이 뱅크샷을 너무 잘 친다. 나도 초반에 그 부분 때문에 너무 힘들었다. 뱅크샷 몇 개면 분위기가 확 넘어가는 경우가 너무 많다. 나도 초반에 그런 부분에 많이 당황했고, 아무리 1, 2세트에 3점대, 4점대 경기를 해도 어차피 다음 세트는 0:0에서 출발하니까 승부를 단정하기가 어렵다. 아무리 앞서 있어도 언제, 어떻게 역전당할지 모른다.
PBA 투어나 당구 경기를 더 재밌게 볼 수 있는 강동궁만의 관전 포인트는 뭔가?
나는 요즘 선수들의 버릇을 눈여겨 보고 있다. 잘 맞을 때는 어떤 행동을 하는지, 또 안 맞을 때는 어떻게 하는지를 집중적으로 보니, 이제는 저 선수가 저런 행동을 하면 지금 컨디션이 너무 안 좋은 거다, 혹은 또 저 선수가 이런 행동을 하면 신바람이 나는구나 알 수 있다. 당구 팬들도 그런 부분들 유심히 살펴보면 지금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구나 캐치할 수 있고, 더 재밌게 당구 경기를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본인도 갖고 있는 경기 루틴이 있나?
특별히 경기 전이나 경기 중 루틴은 없지만, 최소 대회 2주 전부터는 술이나 이런 걸 아예 입에 대지도 않는다. 그리고 나름 신발 징크스가 있어서 신발에 좀 집착한다. 첫 시합 때 자세가 잘 잡힌다거나 경기가 너무 잘 풀리면 그때 신었던 신발만 계속 신는다. 꽤 오래 한 신발만 계속 신는 것 같다.
시합에서 일찍 떨어지면 쉽게 털어내는 편인가?
당구 친 지가 벌써 38년 정도고, 선수 생활도 25년 넘게 했는데, 사실 이기고 지는 건 순간이다. 그래도 지고 나면 사람들 만나는 게 좀 부담이 되기도 해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편이다. 당구 경기라도 보게 될까 봐 TV도 안 켜고, 당구도 안 치고, 당구랑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한다. 대회가 끝나고 나면 괜찮아지는데, 막상 대회 중에는 저기에 나만 없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공허한 마음이 좀 든다.
당구 선수만 25년 이상이면, 몇 살 때부터 당구선수를 한 건가?
15살, 중학교 때부터 했으니까 거의 30년이 다 됐다.
그때는 학생선수들이 따로 없었을 텐데?
그때는 학생선수가 아무도 없었다. 아버지가 부산당구연맹 선수를 하고 계셔서 어쩌다 보니 어린 나이에 당구선수를 하게 됐다.
지금의 강동궁의 있기까지 아버지의 영향이 가장 큰 건가?
맞다. 당시는 미성년자는 당구장 출입금지였는데 아버지가 당구장을 운영하셔서 8살 때부터 당구를 치기 시작했다. 원래는 부모님이 돼지국밥 식당을 운영하셨는데, 계속 사골을 끓이다가 어느 순간 아버지가 안 보이면 엄마랑 나랑 당구장으로 아버지를 찾으러 다녔다. 그러다 어느 순간 식당을 접으시고 당구장을 시작하셨다.
첫 출발은 아버지의 영향이었는데, 지금은 스스로도 만족하나?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너무 만족하고 좋다. 직장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것도 좋고, 운동하고 싶을 때 열심히 하고, 쉬고 싶을 때 쉬고, 또 많은 사람들이 알아봐 주시고, TV에도 많이 노출되니까 다 좋다. 다만, 승부에 대한 욕심을 언젠가는 내려놔야 할 텐데, 그게 내 숙명이니까.
프로당구로 이적하면서 국가대표로 뛸 수 없게 됐다. 아쉬움이 아직 있나?
아직은 좀 남아 있다. 연금 포인트도 더 쌓고 싶고. 지금이 내 전성기라고 말할 수 있지만, 정작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에 들어갈 때는 또 젊은 선수들이 이끌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린 선수들 중에 눈에 띄는 선수가 있었나?
우연히 주니어 세계선수권대회 선발전에 갔다가 조영윤이라는 학생을 처음 봤는데, 아직 다듬어야 할 게 많지만 공을 다루는 느낌이 굉장히 좋았다. 토탈 애버리지도 높고, 당구 칠 때 표정도 좋더라.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PBA 쪽에서는 김영원이 1년 전 실력과 지금의 공 치는 모습이 너무 달라져서 깜짝 놀랐다.
당구선수로 롱런하기 위한 비결은 무엇인가?
요즘 어린 선수들은 생각이 너무 많다. 롱런하기 위해서는 끈기와 의지가 필요한데, 요즘은 어린 친구들이 재밌게 놀 수 있는 문화도 너무 많다. 하지만 내가 어렸을 때와는 다르게 지금은 무대가 만들어져 있다. 최고가 되면 많은 걸 가질 수 있는 무대가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끈기 있게 포기하지 않는 정신만 있으면 좋을 것 같다. 혼자서 하려고 하지 말고, 어느 누구라도 스승을 찾아서 끝까지 노력했으면 좋겠다. 경험이 중요하기 때문에 경험이 많은 선수들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도 좋다.
이번 시즌 출발이 좋은데, 남은 목표는?
매 대회 항상 우승에 대한 기대감은 가지고 시작하지만 성적이라는 게 내가 내고 싶다고 낼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이왕이면 승부를 즐기고 싶다.
(사진=이우성(675스튜디오) / 헤어&메이크업=신오키새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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