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고영미 기자] 의정 갈등 해소를 위해 출범한 여야의정협의체가 지난 17일 2025학년도 의대 정원 문제 등을 논의했지만, 정부와 의료계 간 이견만 확인한 채 별다른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한편 사직 전공의와 의대생들이 대거 참여하는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는 18일 오전 기자회견을 갖고 윤석열 대통령에게 의대 증원 책임자 문책과 '시한폭탄 의료정책' 중지를 요구했다.
2025년 증원, 의료계 “정시로 이월 말아야” 정부 “현실적 어렵다”
협의체는 지난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전체 회의에서 의대 정원 문제를 두고 2시간가량 논의를 가졌지만, 1차 회의 이번 회의에서도 합의점을 도출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성원 국민의힘 의원은 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진솔한 대화를 나누고 있지만 결코 쉽지만은 않은 길인 것 같다”라며 “정부 측 입장과 의료 측 입장이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고 있지만 때로는 서로 입장을 이해하면서 방법을 찾아나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만희 국민의힘 의원도 “많이들 관심 갖고 있는 게 의대 정원 문제일 텐데 비교적 의료계와 정부 측 의 생각을 심도 있고 진솔하게 의견을 교환했다”라고 밝혔다.
이어 이 의원은 2025년 정원 변경 여부에 대해서는 “공감대는 이뤄지지 않았고 오늘 합의에 이른 건 없다”라고 전했다.
의료계는 이날 회의에서 중복 합격으로 인해 미충원 된 수시 입학 정원을 정시로 이월하지 않는 방식으로 정원을 조정해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정부는 2025학년도 의대 모집인원을 2024학년도 대비 1509명 늘린 4565명으로 사실상 확정한 상태이기 때문에 정원을 조정할 수 없다는 입장으로, 확정된 대입전형 시행계획을 재변경하기 위해서는 관련 법령 제·개정 등이 필요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입장을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의힘 한지아 수석대변인도 이날 브리핑에서 “2025학년도 의대 증원과 관련해 의료계 주장을 들었고 정부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을 말했다”라고 설명했다.
한 수석대변인은 “2025학년도 의대 정원에 대해 의료계에서 몇 가지 안을 제안했다”라면서 “정부는 법적 문제가 연결돼있기 때문에 어렵다고 했고, 의정 간 평행선에 여당 차원에서 고심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그는 의대 정원 증원 관련해 공감대나 입장 변동이 있는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의료계가 제안한 부분에 대해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을 얘기했고 아직까지는 어렵다는 것에 대해 공감하고 있지만 추진 여부에 대해서는 입장 차이가 있다”라고 말했다.
2026년 증원, 의료계 “보류” 정부 “규모 조정은 가능”
2026학년도 의대 증원에 대해서도 정부와 의료계는 이견을 드러냈다.
의료계는 2026학년도 의대 증원을 보류하고, 2027학년도 정원부터 추계위에서 합의하자고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정부는 2026년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이 예정돼 있더라도 내년 5월까지 정원 변경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즉, 의대 정원은 추진하되 규모는 조정할 수 있다는 의도다.
한 수석대변인은 이에 대해 “여야의정협의체에서 2026년에 대한 부분도 적극 논의하려고 한다”라며 “정부는 2026년은 제로베이스로 추계위원회를 통해 증원 합의를 하자는 것이고 의료계는 여러 안을 말했는데 2026년 증원은 유보하고 2027년부터 추계위에서 하는 결정을 합의해서 가자는 것이 한 가지 안이었다”라고 했다.
한편 협의체는 이날 회의에서 의대 교육의 질을 평가·인증하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평원) 자율성 보장에 대해서도 논의했다.
한 수석대변인은 이에 대해 “정부가 의평원 자율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밝혔지만, 구체적으로 의료계와 견해차가 있었다”라면서 “의료계도 방식에 있어서 의정 간 신뢰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라고 전했다.
이번 회의에는 정부에서 한덕수 국무총리·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방기선 국무조정실장 등이, 당에서 이만희·김성원·한지아 의원, 의료계에선 이진우 대한의학회 회장과 이종태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 이사장이 참석했다. 야당과 전공의 단체는 이번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한편 국민의힘 의원들은 여야의정협의체 전체회의에 불참하고 있는 야당과 대한의사협회 등에 대해 지속적으로 참여를 요청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은 “매번 공문을 보내며 참여를 요청하고 있다. 현재로선 국민 건강과 의료 공백이 굉장히 중요한데도 참여를 안 하는 것에 유감을 표시한다”라며 “의협 등 다른 의료단체에도 참가를 적극적으로 요청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 수석대변인도 여야의정협의체에 불참하고 있는 대한의사협회(의협)와 관련해 “의협 지도부가 비대위 체제로 가고 있기 때문에 저희가 연락 드려서 만남을 적극 추진하고 만나서 의협 의견을 진솔하게 들으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의협 “정부, 특별한 변화 없으면 저항‧투쟁 이어갈 것”
이처럼 여야의정협의체가 별다른 합의점이 도출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는 18일 출범을 알리고 윤석열 대통령에게 의대 증원 책임자 문책과 '시한폭탄 의료정책' 중지를 요구하고 나섰다.
박형욱 의협 비대위원장은 18일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에서 '정부의 의료농단 저지 및 의료정상화를 위한 의협 비대위' 출범 기자회견을 열었다.
총 15명으로 구성된 이번 비대위에는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대위원장을 포함한 대전협 추천 위원 3명과 의대생단체 추천 위원 3명이 포함됐다. 이들 중 박단 위원장을 제외하고는 익명으로 참여한다.
박 위원장은 이날 발표한 회견문에서 “정부의 모습을 보면 선배 의사들이 전공의와 의대생에게 정부를 믿으라고 하기 어렵다”라며 정부의 ‘신뢰 회복’을 위한 조치로 윤 대통령의 의대 증원 관련 책임자 문책을 주장했다.
그는 “의대 증원 규모에 대해 협의도 하지 않고 의협과 19차례나 협의했다고 보고한 자, 2천명 증원이 과학적 근거가 있다고 보고한 자, 사직서 수리 금지 등 행정명령으로 전공의 기본권을 침해한 자에 대한 합당한 책임을 물어달라”라고 촉구했다.
박 위원장은 그러면서 “어떤 분은 무조건 협상과 대화를 해야 한다고 하는데, 협의를 가장한 협의는 정부의 ‘알리바이용’으로 사용될 뿐”이라며 “윤 대통령께서 진정한 협의가 가능할 것이라는 믿음을 주시길 청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박 위원장은 정부를 향해 “의료시스템 문제를 전공의 책임으로 돌리거나, 정부 실패를 의사의 이기심으로 인한 것이라 하지 말라”고 지적했다.
그는 “현 의료 위기 근원은 의료시스템 문제인데, 한덕수 국무총리는 이런 문제를 외면하고 가혹하게 일해 온 전공의들에게 책임을 돌리며 비난했다”라며 “이런 상황에서 전공의 수련 환경이 얼마나 개선되겠느냐”라고 비판했다.
또 박 위원장은 “보건복지부는 초저수가 관련 데이터 등 객관적인 자료도 없이 정부 실패를 시장 실패로 진단하고 의사들의 이기심 때문에 필수의료 위기가 왔다고 한다”라며 “정부 자신의 책임은 외면하고 잘못된 진단과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를 내놓자 전공의들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접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는 이 시기만 버티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급격한 의대 증원은 '10년 후유증'을 낳을 것”이라며 정부의 '결자해지'를 거듭 촉구했다.
그러면서 박 위원장은 “정부의 특별한 변화가 없다면 비대위는 의료농단에 대해 지속해서 저항, 투쟁하겠다”라고 재차 강조했다.
전공의 단체 대표인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대위원장도 여야의정 협의체 참여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박 위원장은 여야의정 협의체 2차 회의가 열린 지난 17일 자신의 SNS를 통해 “여야의정 협의체와 관련해 국민의힘은 9월 8일 한지아 수석 대변인의 부재중 전화 한 통과, 9월 10일 '여야의정 협의체 참여 요청의 건'이라는 제목의 공문 하나 남긴 것이 전부”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반쪽짜리 협의체를 만들어놓고선 본인이 참석도 하지 않고 해결하겠다니, 한동훈 당 대표가 진정성은 가지고 있는지 의문”이라며 “한동훈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며 20-30대 청년들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이와 함께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도 지난 15일 의정 갈등 이후 처음으로 전국 40개 의대 대표 등 270여명이 모인 확대전체학생대표자 총회를 열고 '의대 증원 백지화' 등 대정부 요구안을 관철하기 위한 투쟁을 내년에도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의대협은 여야의정 협의체에 대해 “대통령실에서 수차례 의대협 요구안에 대해 논의가 불가능하다고 밝혀 (참여가) 힘들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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