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 3상 마무리 단계…"핵심증상 '사회성 결여' 상당부분 호전시켜"
의대 교수서 사업가로…"'우영우'로 관심 커졌지만 자폐아·가족 고통은 여전"
"최종 목표, 적어도 하나의 난치성 질환 지구상에서 사라지게 하는 것"
(서울=연합뉴스) 김지선 기자 = "약 복용 2주 만에 아이 스스로 현관문 도어락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뒤통수를 망치로 얻어맞은 것 같았다는 엄마 이야기가 기억에 남아요. 그전까진 수백번 알려줘도 한 번도 못 하던 중증 자폐아였거든요."
소아 자폐 스펙트럼 장애(ASD) 치료제를 개발 중인 황수경(45) 아스트로젠 대표이사는 최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인 자폐 환아 가족에게 가느다란 동아줄이 되고 싶다"며 이같이 밝혔다.
황 대표는 "지금 당장 완치까지는 아니더라도 아들딸과 눈을 마주치고 대화하고 손잡고 공원에 가는 소소한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작년 3월 국내 임상 2상에 성공한 소아 자폐 스펙트럼 장애 치료제 후보물질 'AST-001'은 시냅스 가지치기(synaptic pruning)를 활성화해 소아 신경망이 지나치게 발달하는 것을 조절하도록 돕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국 11개 주요 대학병원에서 만 2∼7세 아동 169명을 대상으로 진행 중인 임상 3상은 내년 초 종료를 앞두고 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는 아직 근본적 치료 약이 없는 만큼 계획대로 된다면 '세계 최초'인 셈이다.
황 대표는 "아직 뚜껑을 열기 전이라 말하기 조심스럽지만, 긍정적 성과를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는 사회적 의사소통과 상호작용에 문제가 생겨 행동 패턴, 관심사나 흥미, 활동 범위 등이 제한되고 반복적인 행동 특징을 보인다.
현재 우리나라 소아 자폐증 환자 수는 2만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응용행동분석(ABA) 치료 등에만 의존하는지라 보호자들이 느끼는 경제적 부담이 큰 것이 사실이다. 동반 증상을 가라앉히는 데 쓰이는 항정신병제는 약물 간 상호작용 등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황 대표는 "AST-001은 핵심 증상인 '사회성 결여'를 상당 부분 호전시켜줄 뿐 아니라, 인체에 해가 거의 없는 안전한 물질"이라고 소개했다.
실제 자폐 스펙트럼 장애 진단을 받은 만 2∼11세 151명에게 시행했던 임상 2상의 결과는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한다.
사회적 적응행동 측정 평가 도구인 바인랜드 적응행동 조합점수로 측정한 1차 유효성 평가에서 12주에 고용량 군 환자의 61%, 24주에는 78% 이상에서 유의미한 증상 개선이 확인된 것.
또 2차 유효성 평가 변수인 사회적 반응 척도 2판(SRS-2) 기준으로 사회성이 정상범위에 들어온 환자는 전체의 18%에 달했다.
특히 의사소통과 운동능력에서 효능이 탁월했으며, 호명 반응과 눈맞춤이 좋아졌다는 것이 공통적인 특징. '편식이 완화되고 외출이 편해졌다' 등의 사례도 보고됐다.
황 대표는 연구 과정에서 자폐증 치료의 '결정적 시기'를 놓치지 않아야 제대로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사실도 간접적으로 확인했다고 한다. 임상 3상에서 대상 연령을 만 7세 이하로 축소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시험이 끝나고 최종결과보고서를 제출한 후에도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승인을 받기까지 평균 1년 반 이상 소요되는 만큼, 이를 앞당기기 위해 '조건부 허가'를 추진할 계획이다.
지난 5월 식약처로부터 개발단계 희귀의약품으로 지정되는 등 약물의 효과성과 안전성이 어느 정도 입증된 만큼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에서다. 임상에 참여한 환자의 부모들도 소명서를 통해 힘을 보탰다.
황 대표는 "제품 출시를 오매불망 기다리는 엄마·아빠의 간절한 사연을 접할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뿐"이라며 "신약 개발은 '속도전'인 만큼 하루라도 빨리 시장에 내놓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경북대병원 소아신경과 교수였던 그가 사업가로 변신하게 된 계기는 1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신경 발달장애를 앓고 있는 아이들을 진료하며, 진단은 하지만 치료를 할 수 없는 현실에 좌절감을 느끼던 중 한 자폐 환아의 대사 검사에서 특정 아미노산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 것.
이후 백방으로 수소문해 해당 물질을 투약한 결과, 드라마틱한 변화를 경험한 그는 지난 2017년 창업을 결심했다.
황 대표는 "대학 병원과 제약사를 찾아다녔지만 결국 직접 하지 않으면 아무도 할 수 없다는 결론을 얻었다"며 "약으로 처방해주고 싶다는 생각에 겁도 없이 뛰어들었다"고 회상했다.
근래 공개한 아스트로젠 기업 광고 '너와 나의 눈이 마주칠 때까지' 편에 출연한 김시혁(15) 군 또한 8세 때부터 자신이 주치의로 돌봐온 환자였다고 그는 전했다.
재작년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우영우)를 통해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재조명됐지만, 자폐아와 그 가족이 겪는 현실은 고통 속에서 희망도 없이 몇번이고 자식의 손을 놓을까 말까 망설이는 엄마의 모습('외로웠던 세상, 이제 함께' 편)에 가깝다는 것이 황 대표의 설명.
자신 역시 사춘기 딸(12)을 둔 엄마이기에 절망적이기만 했던 아이들이 새로 태어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짜릿해 기업을 일구며 닥친 여러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다고 한다.
대구에 본사를 둔 아스트로젠은 자폐 외에도 다양한 난치성 신경질환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내년 하반기 IPO(기업공개)를 통해 코스닥 시장 입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부산 기장 공장 설립과 함께 글로벌 시장 진출도 준비 중이다.
황 대표의 최종 목표는 '백신의 탄생과 함께 소아마비가 종식된 것처럼 적어도 하나의 난치성 질환이 지구상에서 사라지게 하는 것'.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오늘도 바쁘게 뛰고 있다.
sunny10@yna.co.kr
Copyright ⓒ 연합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
지금 쿠팡 방문하고
2시간동안 광고 제거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