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 스위프(Red Sweep). 빨강을 상징색으로 하는 미국 공화당이 상, 하원을 싹쓸이했습니다. 상, 하원에서 각각 과반 다수당이 됐다는 뜻이겠지요. 돌아온 도널드 트럼프를 앞세워 대통령(행정부) 권력을 차지하고 입법부 권력까지 완벽하게 쥔 셈입니다. 보수 우위라고 평가되는 연방대법원(사법부)을 감안하면 입법 사법 행정의 삼권분립이 기대하는 견제와 균형은 위험에 처했다고 하겠습니다.
뚜렷한 징후가 이미 나타나고 있습니다. 백악관 참모와 장관직을 충성파로 채운다는 속보가 이어집니다. 미성년자 성매매 혐의를 받았던 맷 게이츠 법무부 장관 지명자와 백신 반대 등 비과학적 신조를 고수하는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 보건복지부 장관 지명자가 대표적이라고 합니다. 충성파가 '예스맨'의 다른 표현이 아니기를 바라는 미국인이 적지 않으리라 짐작합니다. 충성의 대상이 혹여 트럼프가 아니라 미국이라 해도 '애국심은 악당들의 도피처'라는 경구가 머릿속을 맴도는 것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공화당의 시조(始祖) 격인 에이브러햄 링컨(미 제16대 대통령, 1861년3월∼1865년4월 재임)이 살아있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합니다. 대통령에 당선되자 링컨이 맨 먼저 한 일은 경쟁 정파에 협조를 구하고 장관직을 당내 정적들에게 배분하는 것이었습니다. 당 대통령후보 경선에서 대결했던 윌리엄 수어드와 새먼 체이스를 각각 국무, 재무 장관에 앉히는 등 '경쟁자들의 팀'(Team of Rivals. 도리스 컨스 굿윈의 책에서 따온 명명)으로 내각을 만든 것입니다. '용광로 내각'이란 별칭이 어색하지 않습니다. 링컨은 물론 당내 기반이 약했습니다. 당시는 내전을 치르는 특수한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도 용광로내각은 충성내각과 극적으로 대비됩니다.
신생 독립국의 민주공화정 헌법을 디자인한 미 국부(國父)들의 장탄식이 들려오는 것도 같습니다. 미국의 신(新)헌법에 대한 근원적 논점과 고민이 집약된 논설 모음인 『연방주의자 논집』(The Federalist Papers)의 몇 구절만 옮겨도 그게 근거 없는 추측일 리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논설 51번은 일갈합니다. "만일 인간이 천사라면 어떤 정부도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천사가 인간을 통치한다면 정부에 대한 그 어떤 외적, 내적 통제도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습니다. 인간의 정부이기에 통제가 절실합니다. 논설 47번은 경고합니다. 입법, 행정, 사법부의 모든 권력을 같은 세력이 쥐면 전제정(tyranny)화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연방주의자 논집은 알렉산더 해밀턴, 제임스 매디슨, 존 제이 등 당대 논객 3명의 85개 논설 묶음입니다.
정부 내(內), 즉 국가기관들 간 통제 또는 견제와 균형이 난망한 조건이라면 남는 것은 정당들 간, 그리고 정당 내 견제와 균형일 수밖에 없습니다. 집권 공화당에 맞서는 민주당의 경쟁력,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공화당 안 '내부 야당' 세력의 역량일 것입니다. (서울=연합뉴스, 고형규 기자, uni@yna.co.kr)
※ 이 글은 다음의 자료를 참고하여 작성했습니다.
1. 『연방주의자 논집』(The Federalist Papers) 풀텍스트 ― https://guides.loc.gov/federalist-papers/full-text
2. 박찬표 역, 페더럴리스트, 후마니타스, 2019
3. 유재수, 세계를 뒤흔든 경제 대통령들, 삼성경제연구소, 2013
4. 노무현, 노무현이 만난 링컨, 학고재, 2001
5.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3권분립'(三權分立) -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6492
6. 연합뉴스 11월15일자 기사 - https://www.yna.co.kr/view/AKR20241115031200009?section=search
7.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온라인)
Copyright ⓒ 연합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
지금 쿠팡 방문하고
2시간동안 광고 제거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