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송보국' 일념으로 올림픽 유치한 '조중훈 한진 창업주'

'수송보국' 일념으로 올림픽 유치한 '조중훈 한진 창업주'

머니S 2024-11-17 06:30: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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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오른쪽부터) 고(故)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회장과 아들인 고 조양호 한진그룹 선대회장이 1979년 제동목장에서 대화를 나누는 모습. /사진=한진그룹 (사진 오른쪽부터) 고(故)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회장과 아들인 고 조양호 한진그룹 선대회장이 1979년 제동목장에서 대화를 나누는 모습. /사진=한진그룹
"기업의 이윤은 그것을 가능케 한 사회에 반드시 환원돼야 한다."

고(故)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회장의 경영철학은 수송으로 국가에 보답한다는 의미의 '수송보국'(輸送報國)이다. 그는 이 같은 창업 정신을 바탕으로 한 국가의 동맥으로 불리는 수송 사업을 발전시켜 육·해·공 종합물류기업을 완성, 한국 경제 발전의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17일은 조중훈 창업회장의 22주기다. 트럭 한 대로 시작한 한진상사를 바탕으로 세계적인 종합물류기업을 일군 그는 '사업은 예술'이라는 신념을 강조했다. 기업은 국민 경제와 조화를 이루며 국민 복지에 기여해야 하며, 창의와 열정이 뒷받침 돼야 한다는 의미다.

무엇보다 사람과 사람 간의 신뢰를 중시하고 그룹의 핵심적인 가치를 올리는데 헌신해 온 그의 철학은 현재 한진그룹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글로벌 물류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밑바탕이 됐다.

'문어발' 아닌 '낚싯대' 경영으로 사업확장… 올림픽 유치에도 기여

1973년 5월 보잉 B747 기종의 태평양노선 취항 기념식 장면. 조 창업회장은 오른쪽 세 번째 인물. /사진=한진그룹 1973년 5월 보잉 B747 기종의 태평양노선 취항 기념식 장면. 조 창업회장은 오른쪽 세 번째 인물. /사진=한진그룹
그가 '한진' 창업에 나선 건 기업은 사회적인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 경영 철학 때문이다. '한진'(韓進)은 한민족(韓民族)의 전진(前進)을 의미로 담고 있다. 사업을 통해 우리 민족을 잘살게 하겠다는 조 창업회장의 의지가 담겼다.

수많은 업종 중에서 운수업을 택한 것은 '교통과 수송'은 인체의 혈관처럼 정치·경제·문화·군사 등 모든 분야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기간산업이기 때문이다.

조 창업회장은 '남이 닦아놓은 길을 뒤쫓으며 훼방하는 얌체사업'을 싫어했다. 모르는 사업에 뛰어들어 확장하는 무모한 행동도 자제했다. '낚싯대를 열 개 스무 개 걸쳐 놓는다고 해서 고기가 다 물리는 게 아니다. 진정한 낚시꾼은 한 대의 낚싯대로도 많은 물고기를 잡는다'는 조중훈 회장의 '낚싯대 경영론'에 따라 한진그룹은 수송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사업만 운영하는 종합물류그룹으로 성장했다.

1987년 한진사바나호 진수식이 열렸다. 조 회장이 뒤를 돌아보고 있다. /사진=한진그룹 1987년 한진사바나호 진수식이 열렸다. 조 회장이 뒤를 돌아보고 있다. /사진=한진그룹
그가 회사를 이끌며 강조한 건 기업은 반드시 '국민 경제와의 조화'라는 거시적 안목에서 운영해야 하고, 눈앞의 이익보다는 국익을 위해 기업이 일정 부분의 손해도 부담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당시 만성적인 적자에 시달리던 대한항공공사 인수를 결정하면서 그는 중역들에게 "밑지면서도 계속해야 하는 사업이 있는 것"이라며 대한항공공사 인수는 국익과 공익차원에서 생각해야 할 소명(召命)이라고 강조한 일화도 있다.

수지타산만을 고려하면 대한항공공사, 대한선주 등의 공기업을 인수할 이유가 없었지만 그의 신념은 종합물류회사로 발돋움하는 밑바탕이 됐다. 한진해운은 정부의 수출 드라이브 아래 발전을 이어갔고 대한선주를 인수한 지 2년 만에 흑자 전환했다. 이후 보유 선박 수가 늘고 조선소에서 청년 시절을 보내며 조선업에 대한 애착이 남다른 점은 한진중공업의 출범으로 이어졌다. 해운과 조선을 아우르는 해상왕의 꿈을 이룬 것이다.

조 회장(앞줄 오른쪽 두 번째)은 1981년 9월 바덴바덴 올림픽회의에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앞줄 오른쪽 첫 번째) 등과 올림픽 유치를 위해 동분서주했다. /사진=한진그룹 조 회장(앞줄 오른쪽 두 번째)은 1981년 9월 바덴바덴 올림픽회의에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앞줄 오른쪽 첫 번째) 등과 올림픽 유치를 위해 동분서주했다. /사진=한진그룹
조중훈 창업회장은 항공사 경영을 통해 쌓은 광범위한 국제 인맥을 이용해 민간 외교관으로서 국가의 위상을 높이는데도 발 벗고 나섰다. 1981년 '88년 올림픽' 개최지가 결정되는 바덴바덴 국제올림픽조직위원회(IOC) 총회에 참석, 서울 올림픽 유치를 반대하는 프랑스 및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등 제3세계 국가 IOC 위원들을 막후 설득하며 바덴바덴의 기적을 일구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1970년대 초 일본 정·관계의 두터운 인맥을 활용, 민간 차원의 지원활동을 펼쳐 포스코(구 포항제철) 탄생에도 기여했다.

프랑스와 외교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막 개발된 에어버스 항공기를 6대 구입했는데 이때 맺어진 인연으로 1973년부터 20년 동안 한·불 경제협력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프랑스 정부는 양국 간 우호 협력에 기여한 공로로 그에게 모두 네 차례에 걸쳐 훈장을 수여했고, 1990년에는 프랑스 정부가 외국 국가원수들에게 최고 예우로 수여하는 훈장 '레지옹 도뇌르 그랑 오피시에'를 받기도 했다.

1982년 레지옹 도뇌르 훈장 수훈 장면. 프랑스의 조중훈에 대한 신뢰는 상상을 초월했다고 한다. /사진=한진그룹 1982년 레지옹 도뇌르 훈장 수훈 장면. 프랑스의 조중훈에 대한 신뢰는 상상을 초월했다고 한다. /사진=한진그룹

조 회장은 1977년부터 20여년 동안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벨기에, 몽골 정부로부터 9개의 훈장을 받았다. 민간인으로서는 유례가 없는 일로 평가된다.

인재 양성에 평생 보람을 가진 창업주

'종신지계 막여수인'(終身之計 莫如修人). 인하대 정석학술정보관 1층 로비 한쪽 벽에 새겨져 있는 이 글귀는 '한평생을 살면서 가장 뜻 있는 일은 인재를 키우는 것'이라는 말이다. 기업이 사회 복지 증진을 위해 기여할 수 있는 방법 중에서 가장 보람 있는 일은 바로 인재 양성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조중훈 회장은 "사학(私學)을 운영하는 목적은 육영사업의 보람을 찾는 데 그쳐야지, 일시적으로 반짝 광이나 내고 보자는 식의 자기 과시적인 지원이나, 당장의 과실(果實)만 염두에 둔 것이어서는 오래 지속될 수 없다"며 사회적 책임감을 강조했다고 한다.

1981년 제동목장. 고인은 세상을 뜨기 전까지 주말이면 가족과 제동목장을 찾았다고 한다. /사진=한진그룹 1981년 제동목장. 고인은 세상을 뜨기 전까지 주말이면 가족과 제동목장을 찾았다고 한다. /사진=한진그룹
그는 1968년 인하학원에 이어 1979년에는 한국항공대학교를 인수, 학교시설의 확충과 교육의 질적 향상을 위해 재정을 지원했다. 특히 정석고등학교는 주위의 반대에도 젊은 학생들이 인천 시가지와 인천 앞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호연지기를 키워야 한다는 생각에 돌산을 깎아 교사를 건립한 것으로 유명하다. 외에도 정석교육상과 정석장학금 제도를 운영했고 국내 최초의 사내 산업대학인 한진산업대학(현재의 정석대학)을 개설, 직원들에게 교육 기회를 줬다.

2002년 11월17일 타계한 조중훈 창업회장은 생전에 모은 사재 가운데 1000억원을 공익재단과 그룹 계열사에 희사했으며, 그 중 500억원은 수송·물류 연구발전과 육영사업기금으로 학교법인 인하학원과 정석학원, 재단법인 21세기한국연구(현재의 일우재단) 등 세 곳에 배분됐다. 인하학원에 대한 기부금은 조중훈 회장이 생전에 강한 애착을 보인 최첨단 전자도서관인 인하대 정석학술정보관 건립기금으로 사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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