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불안 증세로 위축…전문가들 "심리지원·사회적관계망 필요"
(서울=연합뉴스) 정윤주 김준태 기자 = "공부는 나중에라도 할 수 있잖아요. 그때 저는 다음 날 끼니부터 걱정해야 했어요."
전국 52만여명의 수험생이 수능을 치른 후 해방감에 젖어있던 지난 15일.
쉼터를 떠나 홀로서기를 시도하는 자립준비청년 강모(21) 씨는 수능을 치렀음에도 대학에 갈 엄두를 못 내 원서 접수를 할 수 없었던 3년 전 기억을 떠올렸다.
자립준비청년은 아동양육시설이나 위탁가정의 보호를 받다가 만 18세(보호 연장 시 24세)가 되면 시설에서 나와 홀로서기를 하는 청년을 가리킨다.
강씨는 "수능을 본 날 탐구영역까지 마치고 나와서도 '날 데리러 올 사람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다른 사람처럼 평범한 루트를 걷는 게 아니라는 생각에 많이 긴장했고, 미래에 대해서도 걱정을 많이 했다"고 돌아봤다.
어린 시절 강씨는 어머니, 언니들과 살았지만, 어머니가 뇌졸중으로 쓰러지고 작은언니를 급성 폐렴으로 잃으면서 생활고를 겪었다.
알코올 중독 증세를 보이던 어머니에게서 벗어나 아버지와 살았지만, 아버지로부터도 언어폭력을 당하고 청소년 시설에서 생활하게 됐다.
한때 가수를 꿈꾸기도 했던 강씨는 생활고로 꿈을 접고 지금은 '돈을 벌어야겠다'는 마음으로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여느 청년과 마찬가지이고, 여기에 더해 자립준비청년으로서 위축감과 소외감도 날마다 마주해야 한다.
"다들 넘어지면 부모님으로부터 보살핌을 받을 수 있는데, 저는 한 번이라도 크게 넘어지는 순간 더 깊게 떨어지고 마니까요."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 5월 말 기준 서울의 자립준비청년은 1천509명이고, 서울시 여성가족재단이 자립준비청년 55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35.9%는 주거 불안을 경험했고 46%는 우울 증상이 의심됐다.
강씨는 "자립준비청년을 위해 좋은 제도가 많이 나온 건 사실이지만, 매번 동정의 눈빛을 받는다"며 "사람들의 인식도 좋아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자립준비청년들이 사회에 잘 정착하려면 심리 지원도 중요하다고 제언한다.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가정이 있는 청년들은 부모님이나 주위 친지들을 통해서 지지받고 그들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지만, 자립준비청년들에게는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어른이 없다"며 "주거·경제 측면의 지원뿐만 아니라 이들을 도울 수 있는 '사회적 관계망'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자립준비청년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사회적기업 '브라더스키퍼'의 김하나 대표도 "이들이 사회에 잘 적응하려면 심리적인 안전지대를 마련해주는 게 필요하다"라며 "정서적·심리적 지원을 통해 자립준비청년들의 자살률이나 불안·우울 지수를 낮춰 이들이 잘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jungl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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