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외일보] 이철완 기자 = "사람 살려!" 3년 전 오늘 비명이 인천 남동구의 한 빌라를 뒤흔들었다. 층간 소음 분쟁으로 4층에 사는 남성 이 모 씨(당시 48세)가 아래층에 사는 40대 여성과 그의 20대 딸에게 무자비하게 흉기를 휘두르면서 복도는 피바다가 됐다.
여성의 남편 A 씨(60대)가 밖에서 비명을 듣고 서둘러 올라갔지만 흉기에 목을 관통당한 아내는 이미 정신을 잃고 쓰러져있었다. 딸은 칼을 들고 있는 이 씨의 팔을 붙잡고 있었고, 이를 본 남편은 아내와 딸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이 씨를 막아섰다.
화목했던 가정이 한순간에 파탄 나던 순간, 현장에 출동해 있던 남녀 경찰관 2명은 빌라 1층 바깥에 서 있었다. 이들은 왜 이 씨를 막지 못했을까.
'따다다 따다다'…규칙적인 소리로 보란 듯이 소음 내던 4층 그 남자
사건 발생 두 달 전 A 씨의 윗집으로 이사 온 이 씨는 A 씨에게 이유 모를 적대감을 보였다. 쓰레기를 버리러 내려갔다가 이 씨를 처음 봤다는 A 씨는 무서웠던 그의 첫인상을 떠올리며 이 씨로부터 "확 죽여버릴까 보다"란 말을 들었다고 했다.
이후 이 씨는 고의적인 소음을 내면서 A 씨의 가족을 못 견디게 했다. 참다못한 A 씨가 항의하러 올라가자, 이 씨는 되레 "밤늦게 문 열어놓고 시시덕거리니까 내가 피곤해서 잠을 못 잔다"며 큰소리를 냈다.
이 씨가 밤낮없이 내던 소음은 A 씨 가족뿐 아니라 모든 이웃이 알고 있을 정도로 심각했다. 이 씨는 일부러 내는 소리라는 걸 알리기라도 하듯이 생활 소음과는 다른 규칙적인 소음을 냈다. 소음에 대해 항의하면 이 씨는 "내가 의자에 앉아서 자위행위 하는 소리"라며 황당한 소리를 했다. 이에 A 씨 가족은 경찰에 신고했지만 일시적인 분리 외 별다른 해결책은 없었다.
'이웃 간에 알아서 하라'는 말에 두 달간 소음을 참고 살던 중 2021년 11월 15일 오후 이 씨가 찾아와 현관문을 발로 차고 손잡이를 흔들면서 욕설을 내뱉었다. 딸은 신고했고 얼마 뒤 경찰이 도착했다.
경찰 바로 옆에서 일어난 참극…경찰관 2명은 발걸음 돌려
A 씨는 도착한 남녀 경찰관 2명을 데리고 3층으로 올라갔다. A 씨가 상황설명을 하는 동안 4층에서 이 씨가 내려왔고, 남경은 "잠시 따로 내려가서 이야기하자"며 A 씨를 1층으로 데리고 내려왔다.
1층 밖으로 나와 두 사람이 대화를 재개한 그 순간 비명이 울려 퍼졌다. A 씨는 곧바로 계단으로 튀어 올라갔는데 그때 여경이 현장에서 도망쳐 계단 아래로 내려왔다. A 씨와 함께 계단을 오르던 남경도 여경을 보고는 발걸음을 돌려 함께 빌라를 빠져나갔다.
두 경찰관이 빌라를 나간 뒤 공동현관문이 닫혔고, 두 사람은 문이 다시 열리기를 기다렸다. A 씨가 필사적으로 이 씨를 막는 동안 여경은 이 씨의 범행을 재연했고, 남경은 여유롭게 이를 듣고 서 있었다.
이 씨를 제압하느라 흉기에 찔린 아내를 제대로 지혈하지도 못했던 A 씨는 당시 상황에 대해 "경찰관들이 밖에 있는 사이 제가 칼등으로 범인을 기절시켜 제압하자 경찰관들이 뒤늦게 와서 수갑만 채웠다"며 "경찰관들은 범인을 데리고 내려가면서 바닥에 흥건한 피도 밟지 않으려고 피하는 모습이었다"고 증언했다.
가해자 22년형…두 경찰관은 해임에 징역형 집행유예
여경은 당시 상황에 대해 "피해자 목숨을 구해야 하니까 제 판단에는 (범행을) 목격한 순간 구호 요청이 제일 먼저라고 생각했다. 119가 와서 응급처치해야 사람이 산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고 말했다.
남경은 "무전으로 상황 보고하고 지원 요청하고 들어가려고 하니까 문이 닫혀버린 거다. 자동문인 줄 몰랐다"고 변명했다.
이들의 부실 대응 문제에 인천경찰청은 사건 발생 9일 만에 두 사람을 직위해제했다.
이들은 실수를 인정하면서도 해임은 지나치다며 해임 취소소송을 냈으나 여경은 지난 3월, 남경은 지난 10월 각각 대법원에서 패소하면서 해임이 확정됐다.
두 사람은 직무 유기 혐의로 형사재판에도 넘겨졌다. 1심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으나 지난 7월 2심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흉기에 찔린 A 씨의 아내는 뇌경색으로 수술을 받았으나 회복하지 못해 신체 절반을 사용하지 못한 채 한 살 지능으로 평생을 살아가야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사건으로 살인미수 혐의로 기소된 가해자 이 씨는 징역 22년이 확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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