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홍기원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금융투자소득세(이하 금투세)를 폐지하는 당론을 선회하자 시민단체, 노동계, 학계의 비판이 빗발치고 있다. 문재인정부가 지난 2020년 도입을 발표한 뒤, 윤석열정부가 들어서면서 2년 유예됐던 금투세는 시행까지 2달여를 남겨놓고 끝내 폐지될 상황에 놓이게 됐다.
16일 정치권에 따르면 민주당이 논란 끝에 금투세 폐지를 결정하면서 여진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늦어도 다음달에는 본회의에서 금투세 폐지를 내용으로 한 소득세법 개정안이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
금투세는 주식, 채권, 펀드 등 금융투자를 통해 발생한 양도소득에 과세하는 제도다. 연간 기준 금액(주식 5000만원, 기타 250만원)을 넘는 소득이 발생하면 초과액의 20%(3억원 초과시, 초과액의 25%)의 세금을 매긴다. 원안은 지난해 1월부터 적용하기로 했으나 2022년 12월 여야 합의로 2년 유예안이 국회를 통과해 내년 1월 시행이 예정된 상태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이 올 1월 금투세 폐지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하면서 기류가 달라졌다. 정부여당이 금투세 폐지로 입장을 정하자 민주당 내에서도 금투세 도입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당내 논의 끝에 민주당은 지난달 의원총회에서 금투세에 대한 당론 결정을 지도부에 위임했다. 결국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지난 4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주식시장이 너무 어렵고 여기에 투자하는 1500만 주식 투자자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라며 “정부여당이 밀어붙이는 금투세 폐지에 동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국민의힘은 같은날 즉각 민주당의 금투세 폐지 결정을 환영한다는 논평을 냈다. 국민의힘 김준호 대변인은 “늦었지만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이번 결정으로 국내 주식시장이 조세 불확실성에서 벗어나 증시가 다시 살아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고 전했다.
금투세 폐지안, 사실상 다음달엔 국회 본회의로
현재 금투세 폐지를 담은 소득세법 개정안(이하 금투세 폐지안)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당초 14일 조세소위가 열릴 예정이었으나 여야 갈등으로 파행을 빚어 소득세법 개정안 논의는 무산됐다. 민주당은 전날인 13일 전체회의에서 국민의힘이 단독으로 예산안을 제외한 법률안만 상정해 소위에 회부하자 이에 항의하며 조세소위에 불참했다.
조세소위 위원인 한 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는 “언제 조세소위가 열릴지는 특정하기 어렵다”라며 “아직 협의 중”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오는 26일 기재위 전체회의가 예정돼 그 전까지 논의가 되지 않을까 싶다”면서 “국회법상 세법 심사는 이달 30일까지 마무리하도록 돼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11월까지 세법 개정안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정부여당안이 자동으로 국회 본회의로 올라간다. 국회법상 예산안과 예산 부수 법안은 법정 기한이 지나면 본회의에 자동 부의되기 때문이다. 이에 금투세 폐지안은 이달 중 기재위를 통과하지 못해도 다음달이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될 것으로 보인다.
조국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4당은 예정대로 금투세를 시행해야 한다는 입장이나 소수정당이기에 폐지를 막기에는 역부족인 처지다. 조국혁신당은 4일 “여야가 어렵게 합의한 법안을 합리성 없는 정치적 압박에 밀려 폐기하는 전례를 남겼다”라며 “이는 심각한 입법 후퇴이자 정치적 퇴행”이라고 우려했다.
한편,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이달 내놓은 조세분야 법률안 검토 보고서는 “금투세 도입이 철회되고 이와 연계된 증권거래세의 단계적 인하 방침은 유지될 경우 조세기반이 과도하게 잠식돼 세수중립성이 크게 저하될 우려가 있다”고 봤다. 이어 “금투세 도입으로 인한 증권시장의 충격이 우려된다면 도입을 유예하거나 기본공제액을 조정하는 방안도 검토해 볼 수 있다”고 제언했다.
시민사회·노동·학계, 민주당 비판 봇물
시민사회단체, 노동계, 학계도 민주당의 금투세 폐지 당론 결정에 반발하는 모습이다. 민주노총,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민변 복지재정위원회, 참여연대는 이재명 대표가 금투세 폐지 입장을 밝힌 4일 성명을 내 “민주당은 윤석열정부 내내 ‘부자감세’를 비판하면서도 정작 중요한 조세정책을 집권여당과 같은 선택을 했다”라며 “신뢰, 강령, 정체성을 훼손한 채 금투세 폐지를 결정한 민주당과 이 대표를 규탄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7일에는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전국민중행동, 민주노총, 한국노총 등이 국회 앞에서 민주당 규탄 기자회견을 통해 “민주당은 2022년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 감세 정책을 막을 수 있었으면서도 이를 통과시켜주고 이제와 윤석열정부의 부자감세를 비판하는 기만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질타했다. 이들은 “세금은 곧 정치라는 점에서 금투세 폐지 입장은 하나의 의견으로만 해석할 수 없다”라며 “세제 문제에 있어서 민주당은 정부여당과 별다른 차별점을 찾기 어려울 지경”이라고 덧붙였다.
금투세 시행을 지지하는 시민사회단체들은 11일부터 국회 앞에서 민주당에게 금투세 폐지 철회를 촉구하는 릴레이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13일 국회 앞 1인시위에 나선 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 신승근 소장은 “공정과세 원칙에 입각하면 금융투자소득만 과세하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한국공학대학교 복지행정학과 교수이기도 한 신 소장은 “금투세로 인해 금융투자가 위축될 것이라는 얘기가 있는데 사업소득세나 근로소득세 때문에 사업이나 일을 안하는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참여연대는 14일 논평에서 “30여 년 논의 끝에 도입된 금투세의 폐지 문제는 심도 있게 다뤄져야 마땅하다”라며 “금투세는 조세 형평성과 공정성을 제고하는 한편 금융세제의 선진화를 위한 제도로 이를 폐지하면 후진적 금융세제가 지속될 수 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윤석열정부의 계속된 부자감세로 인해 5년간 83조7000억원의 세수감소에 더해 차기 정부에서는 100조원의 세수가 감소한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금투세마저 폐지된다면 세수 확보는 더욱 어려워진다”고 지적했다.
학계에서도 금투세 폐지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전현직 교수와 연구자 등 335명은 13일 금투세 폐지 입장 철회 촉구 교수 연구자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민주당은 1% 주식부자들의 세금은 걱정하면서 벼랑 끝에 몰린 서민, 노동자, 자영업자들의 고통은 보이지 않는 듯하다”라며 “일용직 노동자의 근로소득에서 6% 세금을 매기는데 10억원 이상을 투자해 거둔 소득에는 세금을 걷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촌평했다. 또, “민주당의 정치적 결단과 책임 있는 자세가 필요한 때”라며 금투세 폐지 철회를 촉구했다.
민주평등사회를 위한 전국 교수연구자협의회(이하 민교협)도 13일 “민주당의 정체성을 지키며 부자감세에 맞서 돌파하고자 한다면 금투세 폐지를 철회해야 한다. 진정 집권을 원하고 중산층과 서민들의 선택을 바란다면 생각을 바꾸라”고 조언했다. 민교협은 “주식시장은 이 대표가 금투세 폐지 입장을 발표한 이후, 그날만 소폭 영향이 있었을 뿐 원래의 하락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짚었다.
정작 국내 주식시장은 단기 하락세 뚜렷
실제 코스피 지수는 4일 2588.97을 기록했으나 12일 2500선이 무너지더니 15일 장중에는 2390.56까지 하락했다. 코스피 지수는 15일 2416.86으로 4일과 비교해 100포인트 넘게 하락한 상태다. 코스닥 지수 역시 4일 754.08에서 15일 685.42로 힘을 내지 못하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금투세 폐지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면서도 자본 유출 가능성은 남아있다고 분석해 왔다. 그러나 단기적인 수급 개선 효과마저 보이지 않으면서 기대감이 점차 식어가는 분위기다.
iM증권 이승재 연구원은 5일 리포트에서 금투세 폐지가 국내 금융시장에 ▲증시차별화 해소 ▲국내 투자자들의 국내 증시 복귀 ▲채권자금 이탈 축소 효과를 불러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단기적으로는 개인 거래 비중이 높은 코스닥 시장에서의 수급이 개선될 것으로 판단된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DC투자증권 우지연 연구원은 5일 리포트를 통해 “2020년 이후 지속됐던 국내증시 내 금투세 불확실성이 해소됐다”며 “개인 투자자들에 대한 수급 환경 개선에 유효”하다고 분석했다. 다만 “외국인과 기관의 자금 이탈 불안은 여전히 잔존하고 있다”면서 “국내기업들의 펀더멘탈 개선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이번 이벤트는 단기적 모멘텀에 그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코리아 디스카운트’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소하려면 감세 등의 부양책보다 기업 지배구조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진단이 제기되고 있다. 경북대학교 경제통상학부 최한수 교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에 대해 “지배주주가 소수의 주주를 희생시켜 자기 사익을 추구하는 행위를 규제할 방안이 없는데서 기인한 것”이라고 원인을 꼽았다. 기본적인 펀더멘털과 금투세 등의 과세는 별개라는 논리다.
최 교수는 현재 마련된 금투세 제도에도 보완점은 있다고 봤다. 그는 “국내 주식에만 일종의 세액 공제 효과가 있는데 다른 투자 상품과의 정합성을 맞추기 위해 조정할 필요가 있다. 또, 지금은 분기별 원천징수를 하는데 투자의 원리에도 맞지 않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런 보완점들은 제도 시행 이후에도 충분히 개선할 수 있다. 다시 시행시기를 유예하거나 폐지할 이유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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