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임기 반환점을 돈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취임 후 최저치를 기록하며 여권에 비상이 걸렸다.
지난 여름부터 의정갈등 장기화로 인한 응급실 대란, 김건희 여사 리스크, 명태균 녹취록 등 악재가 연이어 터지면서 가장 핵심적인 지지 기반인 TK와 70세 이상, 보수층, 국민의힘 지지층에서 조차 지지율이 흔들리며 10%대 지지율로 내려 앉은 것. 이제 여권 내에서도 이대로 가면 탄핵을 피하기 어렵다는 진단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앞서 김영삼·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도 10%대 지지율을 기록한 바 있다. 이 중 노무현·이명박 전 대통령은 정책 변화와 국정기조 전환, 인적쇄신을 통해 20%대 후반까지 지지율을 끌어 올리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등에 민심에 발맞추지 못해 결국 최초의 탄핵 대통령으로 오명을 쓰고 퇴진하고 말았다.
지지율이 10%대로 추락하고 '조기퇴진'의 여론 압박에 갇혀버린 윤 대통령이 과연 '이명박의 길'로 기사회생할 것인지 아니면 '박근혜의 길'로 사지(死地)에 빠질 것인지 선택의 기로에 서있다.
최근 대통령실이 중도실용의 국정기조 전환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나 여권 내에서도 이명박 전 대통령처럼 인적쇄신이 더해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尹, 취임 후 지지율 51%.. 임기 절반 시점 17%로 급락
의정갈등·김건희 리스크·명태균 녹취록 등 악재 연이어
윤석열 대통령의 최근 지지율을 보면 좋은 지표를 찾기 어렵다. 여론조사 기관마다 수치의 차이는 있지만 집권 후 최저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는 점은 공통적이다.
사실 윤 대통령은 초기부터 낮은 수준이었다.
취임 후 갤럽의 첫 여론조사(2022년 5월 13일 공개)에서 51%를 기록한 후 2022년 8월 1주에 24%를 찍었다. 취임 후 100일이 안된 시기에 지지율이 반토막 난 셈이다. 이후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20~30%대 사이를 오갔다. 외교 성과가 나올 때는 30% 중반까지 오르기도 했다.
그러던 중 올해 초 의대 정원 확대를 골자로 하는 의료개혁을 발표하면서 윤 대통령의 갤럽 지지율은 39%까지 치솟았다. 그 기세를 몰아 총선에서도 여소야대 국면을 돌파할 것이라는 기대감도 생겼다.
하지만 사전 준비 없이 추진된 의료개혁이라는 점이 부각되면서 의료공백 논란으로 이어졌고, 이어진 4월 총선에서 참패하며 다시 20%대로 내려앉았다.
그리고 김건희 여사 문제와 명태균 녹취록 파문이 연이어 터지면서 지지율은 걷잡을 수 없이 떨어졌고, 이달 초에는 처음으로 10%대까지 하락했다.
한국갤럽이 지난 5~7일 100% 무선전화면접 방식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 직무수행에 대한 긍정평가는 17%, 부정평가는 74%였다. 직전 조사(지난달 29∼31일)에서 집권 이후 가장 낮은 지지율인 19%를 기록한 이후 일주일 만에 2%p가 하락한 것으로, 긍정평가는 취임 이래 최저치, 부정평가는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 과정에서 윤 대통령의 핵심 지지층이 이탈하는 것이 확인된다.
취임 후 첫 여론조사에서 대구·경북(TK)과 부산·울산·경남(PK), 60대와 70대 이상에서 60%의 지지율을 기록했으나 가장 최근 조사에서는 이들 마저 부정 평가가 우세해진 것이다.
임기반환점을 기준으로 역대 대통령들과 비교했을 때도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낮은 편이다.
한국갤럽이 조사한 역대 대통령들의 임기 중반 시점(집권 3년차 2분기) 지지율을 보면, 문재인 전 대통령 45%, 박근혜 전 대통령 36%, 이명박 전 대통령 49%, 노무현 전 대통령 34%, 김대중 전 대통령 38%, 김영삼 전 대통령 28%, 노태우 전 대통령 18%였다.
홍준표 "이대로면 식물정부" 중앙일보 "특단 조치 없으면 박근혜 때 위기 반복"
"윤석열 정부, 박근혜 정부 때보다 4배, 5배 더 심각"
조선일보는 이미 지난 9월 사설에서 10%대 지지율 가능성을 내다봤다.
매체는 "만약 지지율이 10%대까지 떨어지면 국정 동력엔 급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다. 일선 공무원은 움직이지 않으려 할 것이고, 거대 야당이 국회를 지배하는 상황에서 대통령의 운신은 더 힘들어질 것"이라며 "저조한 지지율로는 국가 미래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개혁도 추진하기 어렵다"고 경고했다.
이런 상황이 되자 여권 내에서도 이대로 가면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어렵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12일 국회의원 연구단체 '인구와 기후 그리고 내일'이 의원회관에서 개최한 정기포럼 기조 강연자로 참석해 "요즘 하는 것을 보니까 내년 초 되면 식물정부가 되겠다"며 "탄핵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물러나야 할 정부로 국민들에게 낙인이 찍힌다"고 우려를 표했다.
중앙일보도 지난 10월 28일 사설을 통해 "지지율 하락을 막을 특단의 조치가 없다면 박 대통령이 당했던 위기가 반복되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고 경고했다.
중앙일보는 지난 3일 사설에서도 "특단의 조치를 서두르지 않는다면 사과문 발표 다음주 지지율이 5%까지 추락한 끝에 탄핵의 나락에 떨어진 박근혜 전 대통령의 전철을 밟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고 했다.
윤 대통령의 퇴진이나 하야를 요구하는 대학 교수들의 시국선언도 이어지고 있다.
민주평등사회를 위한 전국교수연구자협의회(아래 민교협)는 13일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정부에서 벌어진 민주주의 퇴행과 국정 농단, 민생 파탄, 안보 위기 등이 임계점을 넘었다고 판단했다"라며 "이에 윤 대통령의 즉각적인 퇴진과 체제 전환 논의를 요구하는 시국선언을 발표한다"라고 목소리를 냈다.
이들은 "우리 교수·연구자들은 윤석열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대통령의 자진 사퇴와 정권 이양 준비뿐임을 다시 한번 밝힌다"라며 "이를 위해 정치권과 시민사회는 탄핵 추진과 임기 단축 개헌 등을 포함한 모든 수단을 함께 즉각적으로 강구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야권을 중심으로 윤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집회도 주말마다 열리고 있다. 집회마다 10만명 이상이 운집하면서 어느덧 윤 대통령의 중도 퇴진을 요구하는 여론도 60%를 넘어섰다.
조원씨앤아이가 스트레이트뉴스 의뢰로 9~11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의 임기 수행에 대한 여러 논의 가운데 어떤 것을 선호하는지 조사한 결과 '임기 완주' 30.4%, '탄핵' 29.0%, '자진 하야' 26.0%, '개헌을 통한 임기단축' 12.5%로 윤 대통령의 중도퇴진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비율이 67.5%로 나타났다.
노무현·이명박, 10%대 지지율 돌파 성공.. 국정농단 박근혜는 결국 탄핵
전임 대통령들 가운데 김영삼,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이 취임 중 10%대 지지율을 기록한 바 있다.
이 중 노 전 대통령과 이 전 대통령은 지지율 반등에 성공한 사례로 거론된다. 노 전 대통령은 임기 4년차인 2006년 3분기에 지지율이 16%로 처음 10%대로 떨어진 뒤 4분기 12%까지 추락했다. 서울 아파트값 폭등을 비롯한 부동산 정책 실패가 발목을 잡은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은 이듬해인 2007년 1월 대국민 특별담화를 열어 대통령 4년 연임제 개헌을 제안해 국면 전환을 시도했고, 같은 해 4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타결하면서 지지율 20%대를 회복했다.
이 전 대통령은 임기 4년차 말기인 2012년 초부터 지지율이 20%에 머물렀다. 그러다 임기 5년차 중간인 2012년 7월에 처음 10%대로 추락한 데 이어 8월 1주차 17%까지 주저앉았다.
차기 대선 주자로 박근혜 전 대통령이 부상한 데 이어 친형인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이 저축은행 등에서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것이 영향을 미쳤다.
이에 이 전 대통령은 7월 이 전 부의장이 구속된 지 2주 만에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어 8월 10일 현직 대통령으로선 처음으로 독도를 방문하며 8월 5주차 지지율 28%를 회복했다.
지지율 반등에 실패한 사례도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임기 마지막 해인 1997년 3월 중순 지지율이 10%대로 떨어지자 고건 국무총리를 내정하고 7개 부처 장관을 교체하는 내용의 전면 개각을 단행했다. 하지만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김 전 대통령은 지지율 6%로 임기를 마쳤다.
박 전 대통령은 2016년 10월 4주차 조사에서 지지율 17%를 기록했다. 최순실 씨의 비선 실세 의혹을 사실상 인정하며 대국민 사과를 한 시기다. 그럼에도 최씨의 국정농단 사례가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지지율은 1주일 만에 5%로 급락했다. 이후 11월 4주차에 4%로 떨어진 뒤 탄핵 소추당했다.
MB, 광우병 촛불시위로 지지율 급락.. 중도실용 정책으로 지지율 회복
야권 인사 영입.. 박근혜와 독대로 계파 갈등 해결
여권에서는 여러 악재로 지지율이 하락할 때마다 반등에 성공한 MB 정부를 벤치마킹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 전 대통령은 취임 석달 만에 광우병 파동으로 갤럽 기준 지지율이 21%까지 추락했다.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8% 지지율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자 이 전 대통령은 친서민 중도실용 정책 전환과 탕평 인사를 통해 지지율 회복에 나섰다. 지지율이 최저치를 찍은 2008년 6월 법인세와 소득세 감세안을 발표했고, 청와대 인적 개편과 야권 인사로 분류됐던 정운찬 총리를 영입해 임명하기도 했다.
이 전 대통령은 임기 2년차인 2009년 8·15 경축사에서 "서민을 따뜻하게, 중산층을 두텁게"라는 표현으로 정부의 국정기조를 설명했다. 이후 신용이 낮은 서민을 위한 무보증·무담보 대출인 미소금융이 생겼고 보금자리주택과 저금리 장학금 대출 등의 정책도 마련했다. 골목상권 보호를 위한 대형마트 영업 규제도 MB 정부 때 생겼다.
현 박형준 부산시장이 당시 MB 정부에서 정무수석과 홍보기획관, 사회특보 등을 지내며 중도실용과 친서민정책의 근간을 짜는데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MB정부는 임기 2년 차인 2009년 11월부터 47%와 3년 차인 2010년 5월 49% 등 지지율이 다시 상승했다.
당시 이명박 정부의 실세였던 이재오 전 의원은 언론 인터뷰에서 "10%대 지지율을 50%대까지 올리는 데 1년이나 걸렸다"면서 "그 비결은 중도 실용노선+친서민 행보+통합 내각이었다"
적대시했던 비주류의 수장 박근혜 전 대표에게도 손을 내밀었다. MB 정부는 2010년 6월 지방선거에서 패배 후 정권 재창출을 위해선 박근혜 당시 의원과 힘을 합쳐야 한다는 공감대가 생겼다. 그해 배석자 없이 이 전 대통령과 박 전 의원은 현 정부의 성공과 정권 재창출을 위한 협력을 약속했다.
이듬해인 2011년 6월에도 단둘이 만났다. 박 전 의원은 독대 직후 "친이, 친박 그런 말이 나오면 안 된다"며 이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힘을 실었다. 이후 계파 갈등이 눈에 띄게 줄어들면서 여당은 2012년 총선 과반 승리에 이어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를 당선시켰다.
결국 MB 정부는 초단기 레임덕에 빠졌다는 우려가 쏟아졌지만 위기를 극복해 레이스를 완주했고, 박근혜 정부로의 정권 재창출까지 성공해냈다.
이 전 대통령은 지난달 고(故)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 빈소를 찾은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성태윤 정책실장에게 "대통령의 임기 반환점은 임기 중 가장 많은 일을 가장 왕성하게 해야 하는 시점"이라면서 "집권 여당은 하나 된 힘으로 대통령을 도와 정부의 성공을 돕는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尹, 양극화 타개 국정기조 전환 시도.. 친윤도 "인적쇄신이 먼저"
한편, 윤 대통령도 지난 7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진행한 대국민담화 및 기자회견에서 "변화와 쇄신, 더 유능한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드리겠다"고 말했다.
이후 대통령실은 '김건희 여사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기자회견 다음 날 김 여사의 활동을 보좌할 '제2부속실'을 공식 출범시켰고, 또 대통령실은 이달 중순 예정된 다자 외교 순방에 김 여사가 동행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임기 후반기 국정 운영의 새로운 화두로 '양극화 타개'를 제시한 것도 MB 정부를 벤치마킹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14일 대통령실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내년 초 '양극화 타개'를 위한 노동, 교육, 주택, 자산 분야와 관련된 종합정책을 직접 발표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는 집권 4년차를 맞아 국민들이 변화를 체감할 수 있는 구체적 지원책을 제시하겠다는 의지를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근본적 인적쇄신이 없이는 지지율 반등은 어렵다는 지적이 친윤계에서도 나오고 있다.
친윤계로 꼽히는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11일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서 "현 정부는 국면전환용 인적 쇄신을 하지 않겠다고 하지만 대통령제라는 특수성 때문에 인적 쇄신이 필요한 것"이라며 "단임제 국가의 대통령이기 때문에 인적 쇄신을 통해 국정의 면모를 바꿔야 한다"고 했다.
김 최고위원은 최근 한국관광공사 사장직 지원을 자진 철회한 강훈 전 비서관이나 음주운전으로 징계를 받았던 강모 선임행정관에 대해 "대통령에게 부담을 주는 이들은 보좌하는 기능을 상실한 것"이라고 지적하며 "스스로 거취를 판단하는 게 좋다"면서 개각이나 인적 쇄신의 속도가 빨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실 비서관 출신인 강명구 국민의힘 의원도 11일 BBS 라디오 '함인경의 아침저널'에 출연해 "인적쇄신 등 대통령께서 (대국민담화 및 기자회견에서) 약속하신 부분들의 후속조치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여론이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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