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 게임 콘텐츠를 다루는 유튜브 채널 편집자들이 운영자를 상대로 근로자성을 인정하고 밀린 임금을 지급하라고 제기한 소송에서 승소했다. 이들은 일반 회사와 달리 자율적인 시간, 환경에서 일하기 때문에 법에서 명시된 ‘노동권’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했다고 호소해 왔다.
14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하 민변) 노동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7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한 유튜브 채널의 스태프들이 채널 운영자를 상대로 제기한 최저임금 지급 청구 소송에서 영상 제작 등 업무를 담당한 스태프들의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을 인정하고 원고들의 청구를 전부 인용하는 판결을 내렸다.
앞서 콘텐츠 기획자, 영상 편집자, 촬영자 등 스태프 15명은 지난 2022년 6월 유튜브 운영자 A씨를 상대로 “프리랜서가 아닌 근로자로 인정하고 밀린 임금을 지급하라”며 소송을 냈다.
이들은 A씨가 이들을 지휘·감독하는 사용자의 지위에 있음에도 근로계약서 작성을 거부한 데 이어 임금 지급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예컨대 한 사람은 2018년부터 4년간 3850시간이 넘게 일했음에도 임금으로 총 556만원을 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시급으로 계산하면 단 1400원이다.
당시 A씨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스태프들의 노동 환경에 대한 점도 깊게 반성하고 있다”며 “과도한 억측과 비난, 신상털기와 채널의 비하인드 영상 불법 다운로드 등과 같은 사항에 대해서는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모든 잘못을 책임지고 오늘부로 저는 은퇴하겠다”며 “지난날의 과오를 반성하며 평생 뉘우치며 살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1심 선고는 이들이 소송을 낸 지 2년 5개월 만에 나왔다. 재판부는 “A씨가 스태프 15명에게 1인당 600만~3300만원 상당의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유튜브 채널 노동자들의 근로자성을 인정한 판결은 이번이 처음이다.
재판부는 원고들이 컨텐츠 선정부터 제작, 방송 및 방송 이후의 서비스까지 일련의 과정에서 임금을 목적으로 피고로부터 상당한 지휘·감독을 받으며 종속적인 관계에서 피고에게 근로를 제공해 온 근로기준법 상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특히 유튜브 채널에서의 노동자성 인정을 구체적으로 파고들었는데, 스태프들이 일하는 근로시간 산정 판단이 대표적이다.
재판부는 원고들이 주로 온라인에서 원격으로 모여서 업무 회의를 하고 피고로부터 지시를 받고 업무 내용을 보고한 점에 대해 채팅방에 접속한 시간 동안 피고의 지휘·감독을 받고 있는 상태였다고 인정했으며, 채팅방에 접속한 시간을 기준으로 산정한 근로시간은 적정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와 더불어 업무 준비에 소요되는 시간, 각 컨텐츠의 재생 시간, 컨텐츠의 모든 요소를 원고들이 직접 만든 점, 방송 시간에 대기한 점, 방송 후 영상 제작 기초작업까지 수행한 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위 업무 시간이 과다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민변은 “이번 판결은 계약 문구나 당사자의 표현된 의사보다 실제 양 당사자 사이에 존재했던 사실관계에 주목해 사용종속관계의 유무를 판단하도록 하는 ‘사실 우선의 원칙’에 충실한 판결”이라며 “사용자가 근로기준법상 의무를 회피하기 위해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더라도 제공된 근로의 실질에 비춰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를 인정했다”고 평가했다.
이어 “법원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 판단에서 근로계약서가 작성됐는지 여부, 기본급이 정해졌는지 여부, 겸직 여부는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없다는 점을 다시 한번 재확인했다”며 “특히 방송 컨텐츠의 실질을 면밀히 검토해 피고가 방송의 필요에 의해 일부 원고들에게 일임한 부분이 있다 하더라도 그 또한 피고가 정한 방송 틀의 일부임을 전제로 사용종속관계를 인정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주로 온라인 회의를 통해 업무를 수행하는 원고들의 근무 형태, 야간·새벽에 이뤄지는 근무 시간, 이 사건 방송 제작에 소요될 것으로 통상적으로 예상되는 시간 등 여러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최소한의 근로 시간’을 인정했다”며 “향후 근로시간 책정이 어려운 유튜브 방송 근로자들의 근로시간을 산정하는 데 있어 하나의 기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더 나아가 근로시간과 무관하게 실적을 기준으로 보수가 책정되는 도급 근로자라 하더라도 동종 업계의 시간평균임금, 노임단가, 원고들의 근무시간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비(非)도급 근로자’에 준하는 적정 최저임금을 인정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는 판결이라는 게 민변 측 입장이다.
현장에서도 이번 판결이 의미가 있음을 공감하면서도 사용자 측에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를 드러냈다.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오민규 연구실장은 본보와의 통화에서 “노동위원회 수준에서 판정은 좀 있었으나 법원 판결은 처음이라 의미가 있다”며 “구독자가 100만명이 넘는 유튜버라면 하나의 기업과 같기 때문에 업계 내 체계가 단단히 잡혀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다만 이번 판결로 인해 사용자들이 법원이 왜 근로자성을 인정했는지 근거를 보고 ‘앞으로 이런 걸 안 하면 되는구나’와 같이 악용될 가능성에 대해 주의해야 한다”며 “미국, 유럽 국가와 같이 법원은 이제 노무를 제공받으면 근로자로 추정해 주고 그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사용자가 입증하도록 책임을 전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비도급 근로자에 준하는 적정 최저임금을 인정한 점에 대해서는 “일과 노동이 다양화되고 변화됨에 따라 유튜브 스태프, 배달노동자 등과 같은 노동자들이 증가하고 있는데, 이 같은 노동자들은 아직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지 못하고 있다”며 “이번 판결이 법 해석을 보다 넓히는 출발점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이어 “더 나아가 법정 최저임금보다 높은 수준에서 유튜브 스태프들에 대해서 숙련도, 근속 및 경력 등에 따른 단가표를 제작하고 고용노동부가 실태조사도 진행하는 등 유튜브 스태프와 같은 노동자들을 위한 임금체계를 공식화시키는 과정이 시작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Copyright ⓒ 투데이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
지금 쿠팡 방문하고
2시간동안 광고 제거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