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북한군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투 투입을 공식화하면서 단계적 대응을 공언했던 한국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할지에 관심이 모아지는 가운데, 정부는 아직 어떠한 대응을 할지 결정된 바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14일 전하규 국방부 대변인은 국방부 정례브리핑에서 북한군 개입을 확인했다면 정부의 단계적 대응 조치도 이에 상응해 올라갈 수 있냐는 질문에 "단계적 대응을 해나갈 것이라고 여러 번 말씀드렸는데 그 대응과 관련돼서 어떤 것이 결정된 것은 아직 없다"고 답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8일 공개된 미 주간지 <뉴스위크>와 인터뷰에서 "북한군 참전으로 우크라이나 전장이 격화된다면 우크라이나 방어에 도움이 되는 조치도 우선으로 검토할 수 있다"고 했는데, 정부 기조가 변화 또는 강화된 것이냐는 질문에 전 대변인은 "그 부분을 정부 차원에서 아마 검토할 것으로 생각한다"며 "그런 게 결정되면 국방부가 할 수 있는 후속 조치를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기자들과 만난 통일부 당국자 역시 "러북 협력 진전 추이에 따라 침착하고 절제된 원칙에 입각해 실효적이고 단계적인 대응 조치를 취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정부가 구체적 방안 마련을 위해 미국과 조율에 착수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오는 14일(현지시각) 페루에서 열리는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외교통상 합동각료회의에 참석하는데, 이 자리에서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과 회동을 가질 예정이다.
앞서 13일(현지시각) 벨기에 브뤼셀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 본부에서 기자들과 만난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북한군이 전투에 투입됐다며 "단호한 대응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의 국가정보원도 북한군의 전장 투입이 사실이라고 밝혔다.
블링컨 장관은 "2025년 효과적으로 전투에 임하거나 혹은 유리한 상황에서 평화협상을 할 수 있도록 필요한 자금과 탄약을 보장하는 것이 이번 방문의 목적"이라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는 내년 1월 20일 전까지 우크라이나에 "모든 가용 자원"이 도달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하지만 블링컨 장관은 당장 미국이 어떤 조치를 취할지 언급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는 그동안 미국과 영국 등에 미사일 사거리 제한을 해제해달라고 요청했는데, 블링컨 장관은 이에 대해 "전쟁 초부터 우리는 우크라이나 전선 변화와 수요, 러시아 행동 변화 등에 맞춰 조정해왔다"는 답을 내놨다.
한국 정부와 블링컨 장관 모두 북한군 전장 투입에 대해 대응책을 내야 하는 상황인데, 실제 어떤 방안이 도출될지는 예상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미국 대선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조기 종식을 강조하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됐기 때문에, 한미 정부 모두 특정 조치를 시행하는 데 있어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다.
미국의 현 행정부 임기는 약 두 달밖에 남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우크라이나가 원하는 미사일 사거리 해제 등의 조치를 할 경우 자칫 다음 행정부가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더 신속하게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종료시킬 가능성도 있다.
실제 트럼프 당선인의 장남인 트럼프 주니어는 10일(현지시각)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인스타그램 본인 계정에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사진과 함께 "용돈 잃기까지 38일 남았다"며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철회할 수 있다는 뜻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한국 정부 역시 난처한 상황이다. 지난 12일 기자들과 만난 외교부 고위당국자는 트럼프 당선인의 선거 때 발언과 실제 정책 간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전망했으나, 트럼프 2기 정부에 기용된 외교‧안보 인사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조기 종식을 주장하면서 '고립주의'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는 인물들이 포진해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한국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기로 결정한다면 트럼프 정부와 처음부터 엇박자를 낼 수 있다는 점에서 섣불리 결정을 내리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이를 반영하듯 한국 정부는 미 대선 결과를 전후로 북한군의 파병에 대해 다소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 10월 18일 국정원은 미국보다도 앞서서 10페이지 정도 분량의 보도자료를 통해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을 자세히 다뤘다. 미국은 초기에는 국정원 자료에 대해 사실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내놓았다가 약 일주일이 지난 시점에서야 해당 사실을 확인했다.
그런데 미 대선 이후 한국 정부는 미국보다 앞서나가지 않고 있다. 북한군 참전이 본격화됐다는 블링컨 장관의 발언이 나온 이후에 국정원은 해당 사실을 확인했다. 10월 중순 우크라이나와 함께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던 것과는 다소 온도차가 있는 대목이다.
Copyright ⓒ 프레시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
지금 쿠팡 방문하고
2시간동안 광고 제거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