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왕의 보양식으로 전해지는 타락죽, 그 배경과 역사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고 있다. 타락죽은 단순한 음식이 아닌, 특별한 의미를 가진 고급 보양식으로, 조선시대 임금이 병중에 특별히 먹었던 음식이었다. 기록에 따르면, 조선 후기의 <동국세시기>에는 임금이 병에 걸렸을 때 내의원 약국에서 타락죽을 조제해 올렸다고 전해진다.
또한 매년 10월부터 이듬해 정월까지 내의원에서 타락죽을 만들어 원로 신하들에게 하사한 기록도 남아 있다. 이는 타락죽이 단순한 음식이 아닌 귀한 보너스처럼 여겨졌음을 알 수 있다.
타락죽은 임금의 보양식으로서도 상징적이었다. 쉽게 맛볼 수 없는 음식이었으며, 조선시대 고위 관리들도 일상에서 접하기 어려운 특별한 음식이었다. 당시 중국 자금성에서 황제를 알현하기 위해 대기하던 조선 사신 김창업이 타락차를 마신 일화가 이를 잘 보여준다.
다른 사신들이 낯선 타락차를 마시려 하지 않았으나 김창업은 이미 타락차의 맛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두 잔을 연거푸 마셨다는 것이다. 이는 타락죽이 조선의 고위 관리들조차 쉽게 접할 수 없는 음식이었음을 방증한다.
그렇다면 타락죽은 정확히 어떤 음식이었을까? 현재의 기준으로 타락죽은 간단히 말해 ‘우유죽’이다. ‘타락’이라는 용어는 우유를 의미하는데, 이는 중국에서 유래한 한자 음역으로 보이며, ‘타락’이라는 말 자체는 우유를 뜻하는 돌궐어 '토락(Torak)'에서 전래되었다는 설도 있다.
고려시대 원나라의 영향을 받아 돌궐족이 한국에 들어와 목축을 담당했으며, 이로 인해 우유를 타락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곧, 우유에 찹쌀을 넣고 끓인 죽이 타락죽인 셈이다.
서양에서도 타락죽과 유사한 우유죽이 존재한다는 점은 흥미롭다. 스페인에는 ‘아로스 콘 레체(Arroz con leche)’라는 쌀과 우유로 만든 디저트가 있고, 이탈리아의 ‘부디노 디 리조(Pudino di Riso)’와 아랍과 인도의 ‘피르니(Firni)’, 중앙아시아의 우유죽 ‘시르(Sheer)’ 역시 타락죽과 유사하다.
각 나라에서 사용하는 재료와 조리 방식은 다소 차이가 있지만, 우유와 쌀을 주요 재료로 하는 이 음식들은 타락죽과 유사한 반액체 상태로 끓여낸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쌀 요리가 동아시아만의 전유물이 아닌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다. 특히 고대 페르시아에서 쌀을 기름에 볶아 먹는 볶음밥 문화가 발달했으며, 이 문화는 아랍의 필라프, 스페인의 파에야, 이탈리아의 리소토로 각각 전해져 발전해왔다.
또한, 페르시아의 쌀죽이 아랍과 중앙아시아로 전해지면서 피르니와 같은 형태로 변형되었고, 동양에서는 중국을 거쳐 조선의 타락죽으로 발전했다고 볼 수 있다.
조선시대 임금님의 보양식 타락죽이 이처럼 서역에서 기원한 음식이라는 설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당시 서역의 귀한 음식 문화가 실크로드를 통해 전해지면서 타락죽이 귀한 보양식으로 자리 잡게 되었고, 특히 임금과 고위 관리들의 식단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원본 기사 보기: 내외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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