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한 주식 공급에 짓눌린 韓 증시[김학균의 투자레슨]

과도한 주식 공급에 짓눌린 韓 증시[김학균의 투자레슨]

이데일리 2024-11-14 05:00: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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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한국 증시 투자자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트럼프 당선 이후 한국 증시가 보여주고 있는 부진은 상대적 소외감 정도가 아니라 절대적 박탈감을 투자자들에게 안겨주고 있다. 트럼프 당선 이후 코스피 등락률 -3.1%(11월 6~12일)는 블룸버그에서 집계하는 전 세계 주요지수 92개 중 수익률 순위 89위로 거의 꼴찌 수준이다. 내수의 구조적 침체 속에서 수출에만 의존하고 있는 불균형, 수출마저도 트럼프 당선 이후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불안, 삼성전자로 대표되는 대표기업들의 경쟁력 추락 등이 한국 증시의 부진을 설명할 수 있는 요인이다.



한국 증시에 대한 위와 같은 걱정거리들은 큰 논란 없이 수용 가능한 이슈들이지만 한편으론 ‘다른 나라들은 우리보다 사정이 훨씬 나아서 주가가 상승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다. 길게 보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을 제외하면 많은 나라들이 이런저런 걱정들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G2 반열에 오른 중국은 성장률의 둔화 속에 내수의 부진으로 신음하고 있고 유로존의 절대 강자 독일 역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지정학적 부담과 국가의 대표 브랜드 자동차 산업의 구조적 경쟁력 열위로 고민이 깊다. 독일의 국내총생산(GDP)은 작년에 이어 올해도 역성장이 예상되고 있다. 일본도 일본은행(BOJ)의 파격적인 정책으로 주식을 비롯한 자산시장은 꿈틀거리고 있지만 전반적인 경제 성장세를 볼 때 ‘잃어버린 30년’에서 빠져 나왔다는 증거는 찾기 어렵다.

왜 유독 한국증시만 부진할까. 실은 단기적 문제가 아닌 오래된 걱정거리다. 트럼프 당선 이후 한국 증시의 수익률이 글로벌 최하위권이라고 언급했는데 기간을 2024년 연초 이후로 넓혀봐도 순위는 똑같이 89위다. 2014년 11월 이후 10년간의 수익률(+26.1)로는 67위, 2019년 11월 이후 5년간의 성과(+15.9%)도 67위다.

한 가지 단일 요인으로 한국 증시의 부진을 설명하는 것은 온당치 않겠지만 증시에 공급되는 물량이 과도하게 많은 게 아닌가 하는 고민은 해봄직하다. 코스피는 지난 10년간 26.1% 올랐지만 같은 기간 동안의 시가총액은 72.7%나 증가했다. 최근 5년을 살펴보더라도 코스피 상승률 15.9%는 시가총액 증가율 41.9%와 괴리가 크다. 코스닥 시장은 더 심하다. 최근 10년 동안의 코스닥지수 상승률은 30.2%, 시가총액 증가율은 149.7%, 최근 5년 코스닥지수가 6.8% 오르는 동안 시가총액은 49.6%나 늘어났다.

한국 증시의 주가지수 산정은 시가총액 가중 방식으로 이뤄진다. 주가지수는 시가총액의 증감을 반영해 결정되는 셈인데 왜 이렇게 양자 간의 괴리가 클까. 새로운 주식들이 시장에 많이 공급됐기 때문이다. 신규상장(IPO), 기존 기업들의 주식을 통한 자금조달(유상증자) 등은 모두 물리적인 주식 수 증가로 귀결된다. 한국 증시의 시가총액 증가는 주가 상승의 결과가 아니라 신규 주식의 과도한 공급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신규 주식의 공급 증가는 오히려 기존에 상장돼 있는 종목들의 주가를 억누르는 역할을 하고 있다.

다른 나라들의 사정은 어떨까. 먼저 미국. 최근 10년 동안 뉴욕증권거래소 주가지수(NYA)가 82% 상승하는 동안 시가총액은 59% 증가하는 데 그쳤다. 자발적 상장폐지 등이 고려되지 않은 수치라 다소의 조정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주식의 공급이라는 측면에서는 한국과 전혀 다른 상황이라는 결론을 도출하는 데는 부족함이 없다. 무엇보다도 자사주 매입·소각이 활발하게 이뤄진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애플의 경우 2014년의 발행주식 총수는 234억6000만 주, 현재 발행주식 수는 151억 1000만 주로 물리적으로 시장에서 거래될 수 있는 주식 수가 35.5%나 감소했다. 발행주식 수가 줄어들면서 자기자본도 최근 10년 동안 1115억 달러에서 569억 달러로 줄어들었다. 자기자본 규모가 줄어드니 자본효율성이 높아졌다. 주주들이 부담하는 자본효율성을 측정하는 대표적 지표인 자기자본이익률(ROE)은 당기순이익을 자기자본으로 나눈 값이다. 분모인 자기자본 감소는 ROE를 높이는 효과가 있는데 이 영향으로 애플의 ROE는 157%라는 엽기적인 수치로 나오고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다른 해외시장도 뉴욕증권거래소와 비슷하다. 미국 나스닥 시장은 최근 10년 동안 나스닥지수 상승률 312.4%, 시가총액 증가율 337.9%이다. 주식공급이 조금 늘었지만 시장에 부담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일본 도쿄증권거래소의 토픽스 지수(TOPIX)는 최근 10년 동안 99.0% 상승했고 같은 기간 동안의 시가총액 증가율은 94.1%였다. 뉴욕증시와 비슷하게 일본도 자사주 매입·소각이 활성화하고 있다고 유추할 수 있다.

한국 증시와 비슷한 시장이 중국이다. 상하이종합지수는 최근 10년 동안 37.1% 상승했지만 시가총액은 무려 183.8%나 늘었다. 최근 5년으로 기간을 좁혀봐도 양 수치는 17.3%와 62.4%로 괴리가 크다. 중국 정부의 공격적인 경기 부양책으로 단기적으론 중국 증시가 많이 상승했지만 장기 성과는 초라한 이유도 과도한 공급물량에서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한국 코스닥 시장의 장기 성과 부진과 관련해서도 공급 측면에서의 성찰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IPO 등을 통해 상장되는 기업 수가 너무 많다. 코스닥 시장 상장 기업 수는 1765개에 달하고 있는데 이는 코스피 상장 종목 수 839개의 두 배가 넘는다. 최근 일본 증시 상장 제도 변경으로 없어지기는 했지만 코스닥과 비슷한 성격의 자스닥 상장 종목 수가 700여 개였고 영국 대안투자시장(AIM) 상장 종목 수도 700개 남짓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코스닥은 종목 수가 너무 많다.

물리적인 공급 부담이 큰 것도 문제지만 상장 종목이 너무 많다 보니 코스닥 시장에서는 ‘묻지마 투자’가 횡행할 개연성이 높다. 제도권 증권사에서 분석하는 코스닥 종목 수는 100개도 되지 않으니 개인투자가 입장에서는 물어보려야 물어볼 곳도 없다. 극심한 정보 비대칭성은 불공정거래가 발생할 개연성을 높였고 이는 시장의 평판도 저하로 귀결돼 왔다. 주식 공급 측면에서의 관리 방안은 한국 증시의 장기 정체 탈피를 위해 고민해 볼 만한 이슈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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