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자구 회장은 이 일이 있은 뒤 대북사업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왕자헌 회장의 한 측근은 “이 때부터 왕회장은 사실상 장자인 둘째 왕자구 회장에게서 마음도 떠났다”고 설명했다. 대신 왕자헌 회장과 간신치 회장의 휸다이그룹 내 위상이 급부상했다. 따라서 왕자헌 회장은 대북사업을 거머쥐는 동시에 휸다이그룹 공동회장으로 승진해 취임했다. 후계자가 사실상 장자인 왕자구 회장에서 다섯째인 왕자헌 회장으로 바뀐 셈이다. 형과의 치열한 경영권 분쟁 끝에 왕자헌 회장이 아예 단독회장으로 취임하게 된다. 하지만 왕자헌 회장은 형인 왕자구 회장과 감정적 갈등도 함께 짊어져야 하는 비운을 맞게 된다.
이에 앞서 왕회장은 원래 대선 출마를 계기로 동생인 왕제영 회장을 휸다이그룹 총수로 앉혔었다. 그러다가 1996년에 사실상 장자인 둘째 왕자구 회장을 휸다이그룹 단독회장으로 임명했었다. 왕제영 회장은 휸다이자동차 회장으로만 남게 됐었다.
그런데 왕제영 회장은 휸다이자동차에 미련이 있었다. 이 때 왕제영 회장은 ‘내가 오너냐 전문 경영인이냐’ 를 수없이 되뇌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그는 배짱과 뚝심으로 밀어붙이는 큰형 (왕회장)과 달리 조용하고 합리적인 성품으로 휸다이자동차를 일궜다.
1976년 포니에서 시작해 엑셀, 쏘나타, 그랜저에 이르기까지 휸다이의 모든 차는 그의 손을 거쳤다. 그러나 왕회장은 1999년 3월 동생인 왕제영 회장을 불렀다. 그리고는 한마디로 말을 끝냈다.
“그렇게 하도록 해”라는 말이었다.
왕제영 회장은 큰형인 왕회장의 이 말 한마디에 32년 동안 몸담았던 휸다이자동차를 큰 조카인 왕자구 회장에게 물려줘야 했다. 그는 자신의 아들인 왕영규 회장과 함께 그룹에서 분리된 휸다이산업개발로 옮겨야 했다.
이즈음 휸다이그룹 내부에서는 심상치 않은 움직임이 있었다.
왕자헌 회장 측 말이다.
“왕자헌 회장과 왕자구 회장의 본격적인 분쟁은 작은아버지인 왕제영 회장이 그룹에서 분리돼 나간 뒤로 보는 게 타당하다. 왕자구 회장이 휸다이그룹 단독회장이 된 이후다. 이 때 왕당파라고 불리던 많은 왕회장 측근들이 왕자구 회장을 그룹의 후계자로 인정하지 않기 시작했다. 그래서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왕당파들은 다섯째인 왕자헌 회장을 더 선호했다. '국제신사'라는 별명을 가진 왕자헌 회장이 더 똑똑하고 더 인간적이었기 때문이다. 당사자인 왕자헌 회장과 왕자구 회장 간 신경전도 잦을 수밖에 없었다. 이렇다보니 서로 쓸데없는 오해도 많았다. 두 형제는 1996년쯤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형제간에 서로 술을 마시면서 친한 모습을 이례적으로 보여줬다. 이날 왕자구 회장은 자신의 측근에게 ‘나는 동생인 왕자헌 회장을 많이 아낀다’ 고 말했다. 그런데 이후 '자동차 쇼' 행사장에 함께 나타났을 때는 서로 서먹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
이와 관련 왕자헌 회장은 기자와 인터뷰에서 ‘나이가 열 살이나 차이가 나다 보니 평소에도 서로 서먹해서 그런 것’ 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속된 말로 두 사람은 배다른 어머니에서 나온 형제이기도 하다.
간신치 회장이 기자에게 한 말도 있다.
“왕회장은 다섯째인 왕자헌 회장을 똑똑한 아들이라고 항상 말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휸다이그룹에서 모든 임직원들은 거의 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다면 왕자헌 회장이 그룹 총수가 되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누가 봐도 그게 순리였다.”
간신치 회장은 당시 자신만이 왕자헌 회장을 옹립한 게 아니라 그룹 내 다른 전문경영인들도 마찬가지였다고 강변했다. 한마디로 ‘묵계된 합의’ 였다는 설명이다. 이렇다보니 두 형제 회장 간 갈등은 불가피 했다.
왕자헌 회장 측 말이다.
“휸다이그룹 후계자 문제, 대북사업 주도권 문제, 휸다이자동차 분가 문제, 휸다이증권 경영권 확보 문제 등 두 형제 회장은 사사건건 부닥 칠 수밖에 없었다. 1998년에는 인터넷과 벤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디지털 경영이 재계의 최대화두가 됐었다. 왕자헌 회장이 휸다이전자를 경영하면서 디지털 경영을 주도했다. 그러나 왕자구 회장은 반발심리였는지 휸다이그룹의 디지털 경영과 인터넷사업, 벤처사업을 매우 부정적으로 쳐다봤다.”
[다큐소설 왕자의난33]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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