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 복구할 틈도 없어…서태평양서 태풍 4개 동시 활동, 7년 만에 처음
(하노이=연합뉴스) 박진형 특파원 = 기후변화로 태풍 발생이 더 잦아지고 강도도 세지면서 필리핀에 한 달도 안 되는 기간에 태풍이 다섯 차례나 덮쳐 피해 규모가 급격히 커지고 복구 작업마저 장벽에 부딪혔다.
13일(현지시간) AFP 통신과 미국 CNN 방송에 따르면 지난달 하순부터 태풍 '짜미'를 시작으로 '콩레이', '인싱', '도라지' 등 4개의 태풍이 잇따라 필리핀을 타격한 데 이어 태풍 '우사기'가 곧 필리핀 상륙을 앞두고 있다.
게다가 현재 괌 근처에 있는 태풍 만이도 다음 주 초 필리핀 북동부를 위협할 가능성이 크다고 필리핀 기상 당국이 전망했다.
현재 필리핀을 포함한 서태평양에서 활동 중인 태풍은 인싱, 도라지, 우사기, 만이 등 4개에 이른다.
이 지역에서 태풍 4개가 동시에 활동한 것은 7년 만에 처음이며, 11월 기준으로는 1951년 통계 작성 이후 최초라고 일본 기상청이 CNN에 밝혔다.
지난달 하순 태풍 짜미와 콩레이가 수일 간격으로 필리핀을 잇따라 강타, 홍수와 산사태 등으로 158명이 숨지고 63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이후 지난 7일 인싱이 필리핀 북부 루손섬 북단에 상륙, 강풍과 폭우로 주민들이 대피하는 등 4만 명 이상 주민이 피해를 입었다.
또 하루 뒤인 지난 8일에는 도라지가 루손섬 동해안을 강타해 주민 3만2천여명이 대피했다.
도라지로 인해 필리핀 최대 강인 루손섬 카가얀강의 수위가 평소보다 약 4m 상승, 대피 주민 5천여명의 발이 묶였고 29개 지역은 현재까지 정전 상태다.
이어 우사기가 오는 14일 루손섬 북동부 카가얀주에 상륙할 가능성이 크다고 필리핀 기상 당국이 예보했다.
이에 따라 홍수 취약 지역에 사는 주민 최대 4만여 명을 필요시 강제적으로 대피시킬 것이라고 카가얀주 민방위 책임자인 루엘리 랩싱이 AFP에 밝혔다.
이처럼 태풍으로 입은 피해를 채 복구하기도 전에 다음 태풍이 몰아치면서 피해 지역은 기진맥진하고 있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의 필리핀 주재 조정관 구스타보 곤살레스는 지역사회가 태풍의 충격에서 회복하려고 하자마자 다음 태풍이 다시 강타하고 있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대응 역량이 소진되고 예산이 고갈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OCHA는 최근 잇따른 태풍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약 21만명에 대해 향후 석 달 동안 결정적인 생명 구조·보호 활동 지원이 필요하다고 평가했다.
필리핀에서는 통상 연간 20개가량의 태풍이 지나가곤 하지만, 이번처럼 짧은 기간에 여러 차례의 태풍 피해를 입는 것은 기후 변화의 영향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동남아가 세계에서 가장 기후 변화에 취약한 지역 중 하나로서 태풍·폭염 같은 극한 기후 현상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최근 세계기상기구(WMO)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9월 지구 평균 표면 온도는 산업화 이전 시기인 1850∼1900년 평균을 섭씨 1.54도 웃돌아 역사상 가장 더운 해로 분석됐다.
그 결과 올해 해수면 온도가 이례적으로 높게 치솟으면서 태풍이 더 많이 생겨나고 위력도 강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미 로언대학 조교수 안드라 가너 박사는 "우리는 이 행성을 데우고 있으며, 해수면 온도 역시 높이고 있다"면서 "따뜻하게 데워진 바닷물은 허리케인의 핵심 에너지 공급원"이라고 지적했다.
jh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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