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제47대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승리하면서 이 결과가 어떤 변화를 불러올지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우리나라도 외교, 안보, 경제 등에서 그 여파를 직접적으로 맞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투데이신문> 은 트럼프 2기 정부 출범을 앞두고 세계 정세와 우리나라에 미칠 영향을 다각도로 정리해 봤다.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박고은 기자】 윤석열 정부의 ‘가치 외교’가 트럼프 재집권으로 중대한 시험대에 올랐다. 자유민주주의 동맹 강화에 초점을 맞춰왔던 외교 정책이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트럼프 당선인과의 협력에서 난항을 겪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와 함께 주한미군 감축을 압박으로 한 방위비 분담금 재협상 요구와 보호무역 강화는 한미 동맹과 한국 경제에 큰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 ‘가치 외교’ 시험대
현재 우리 정부는 바이든 행정부와 발맞춰 자유민주주의 중심의 동맹체제를 위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유럽연합(EU) 등 주요 국제기구와의 협력을 강화해 왔다. 이 과정에서 한미일 3국 협력의 기틀을 다지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타이완, 남중국해 문제에 대해 미국과 공조하며 한목소리를 내왔다. 그러나 이러한 가치 중심의 외교안보 정책이 차기 트럼프 행정부와도 계속해서 조화를 이룰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트럼프 1기 행정부는 동맹국에 대해 ‘거래’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접근을 취하며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표방, 한국을 포함한 동맹국들과의 관계를 실리적 기준으로 재편하려 했던 전례가 있다.
실제로 트럼프 1기 행정부는 한국을 비롯한 동맹국들에게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강력히 요구했고, 주한미군 감축·철수나 한미 FTA 재협상까지 언급하는 등 동맹관계를 상당히 경직되게 만들었다.
이런 ‘거래적 접근’이 이번에도 재현된다면 윤석열 정부 역시 동맹의 근본적인 틀을 유지하기 위해 다양한 갈등을 해결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할 수 있다.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에도 다자주의보다는 양자주의적 접근을 선호하며, 국제 질서 속에서 미국의 우위를 강조했다. 이러한 접근법은 한국이 강조하는 규범과 가치 중심의 외교 방향과 상충될 가능성이 있다.
이에 대해 4성 장군 출신으로 국방·안보 분야 전문가인 더불어민주당 김병주 최고위원은 “윤석열 대통령이 일단 외교 기조부터 바꿔야 한다”며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은 사업가적인 감각을 가진 실용주의자라 안보 등에서도 그런 면을 보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트럼프, 방위비 협상 뒤 엎을까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은 방위비 분담금 문제다.
최근 바이든 정부와의 방위비 협상이 마무리된 상황에서, 주한미군 감축이나 철수를 압박 카드로 사용하며 분담금 인상을 요구하는 트럼프식 ‘거래 압박’이 재발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트럼프 당선인은 1기 재임 시절뿐만 아니라 퇴임 이후에도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을 대폭 인상해야 한다는 주장을 이어왔다.
트럼프 당선인은 최근 대선 유세 기간 한미 간 체결된 12차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을 언급하며 “내가 대통령이었다면 한국이 연간 100억달러를 지불했을 것”이라고 말하며, 지금의 방위비 분담금(약 1조5192억원)의 10배에 달하는 비현실적 금액을 예고했다. 이는 트럼프의 재임 2기에서 방위비 협상이 다시 한번 대두될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이에 대해 세종연구소 홍현익 수석연구위원은 “취임 직전에 협정을 맺었기에 괘씸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며 “미국이 재협상하자고 나올 가능성이 커 보인다”고 예상했다.
트럼프 당선인이 연간 100억달러를 언급한 것과 관련해 “한미가 합의한 액수의 9배에 달하는 금액”이라며 “이보다는 아마 2배 가까이 올려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내다봤다.
주한미군 철수 지렛대로 방위비 인상하나
트럼프 당선인의 방위비 분담금 인상 요구는 단순히 경제적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방위비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주한미군의 철수나 감축 카드를 활용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첫 임기 당시에도 방위비 인상을 주장하며 주한미군 철수를 거론한 트럼프 당선인이 주한미군 가족 소개령까지 검토했다는 사실도 밝혀진 바 있다.
2017년 11월부터 육군장관을 지내다 2019년 7월부터 2020년 11월까지 국방장관을 지낸 마크 에스퍼 전 미국 국방부 장관은 2022년에 발간한 회고록 ‘성스러운 맹세’(A Sacred Oath)와 워싱턴포스트(WP)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당선인이 주한미군을 모두 철수시키라고 반복적으로 위협했다고 주장했다.
다만 한미연합사령부 부사령관 출신인 김 최고위원은 주한미군 철수는 현실화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김 최고위원은 “3개월 전에 미국에 갔을 때 트럼프 캠프 관계자들을 만났는데, 그들은 철수 가능성이 없다고 말했다”며 “주한미군은 북한의 도발에 대응할 뿐만 아니라, 미국 입장에서는 중국을 견제하는 전략적 역할도 하고 있어 철수하기 쉽지 않다”고 밝혔다.
또한 방위비 인상이 불가피하더라도, 트럼프 당선인의 전략에 휘둘리지 않고 지나친 요구에 적절한 대응을 해야한다고 조언했다.
김 최고위원은 “트럼프 당선인은 1개를 원할 때 10개를 요구하는 식의 전략을 쓴다”며 “달라는 대로 그대로 주면 안 되고, 의중을 파악해서 설득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경제에 미칠 파장...관세강화·보조금축소 ‘촉각’
국내 산업계도 비상에 걸렸다. 트럼프 당선인의 보호무역 강화와 친환경 정책 축소는 한국 경제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산업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7년 전보다(지난해 기준) 대미 수출 의존도가 약 50% 증가한 상황에서 관세 부과 등의 ‘트럼프 리스크’는 한국 경제 성장에 직접적인 하방 압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앞서 트럼프 당선인은 모든 수입품에 대해 10~20%의 보편적 관세를 부과하고, 중국산에는 최대 60% 이상의 징벌적 관세를 적용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이러한 관세 정책이 실현될 경우 미국 시장으로의 수출 물량이 많은 현대자동차와 기아는 막대한 부담을 안게 된다.
또 바이든 대통령의 친환경 정책의 상징인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폐기하겠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한국 자동차 기업들이 미국 시장에서 전기차 투자를 확대할 수 있었던 주요 배경이다. 이에 현대차와 기아는 IRA 혜택을 받기 위해 미국 조지아주에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를 건설하고 있는데, 이 법안이 폐기되거나 지원이 축소될 경우 투자 부담이 가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반도체 업계 역시 보조금 축소 우려가 제기된다. 트럼프 당선인은 반도체법(Chips Act)에 따른 보조금 지급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여러 번 밝힌 바 있다. 그는 “반도체법은 부자 기업들만을 위한 것”이라며 한국과 대만의 반도체 기업을 겨냥해왔다.
다만 법 개정 가능성은 낮지만, 보조금 축소나 추가 투자 요구 등의 강력한 압박이 있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박종훈 지식경제연구소 소장은 “관세 정책밖에 모르던 트럼프 당선인이 바이든 대통령의 영리한 정책을 보고 ‘이 정책을 그대로 유지하자’고 생각할 것”이라면서도 “다만 바이든 행정부보다 업그레이드 된 성과를 보여줘야 하기에 채찍을 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 소장은 “지금 IRA 폐지냐, 반도체법 폐지냐의 문제가 아니라 트럼프 당선인이 채찍으로 우리나라 기업들을 미국으로 이전시키려 할 것”이라며 “바이든 행정부보다 우리나라의 내수 경제가 더 크게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관측했다.
트럼프의 재집권은 우리 경제에 큰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지만, 트럼프 당선인의 의중을 정확히 이해하고 이에 맞는 대응을 한다면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의견도 첨언했다.
박 소장은 “20% 관세를 일률적으로 매기기보다는 미국민들에게 엄청난 성과를 보여주려는 ‘정치 쇼’를 더 원할 것”이라며 “트럼프 당선인의 관심을 끌면서도 우리에게 해가 적은 방안을 찾아내는 창의적 아이디어를 도출하고, 정부 차원에서 유연한 대응 전략을 마련하면 기회 요인이 될 것”이라고 관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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