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김태형 기자] 트럼프 2.0 시대를 맞아 반도체 보조금 정책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국내에서도 반도체 산업에 대한 보조금 지원 등의 근거를 담은 법안이 발의돼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트럼프 2기 정부가 들어서면 반도체 제품에 대한 관세부과와 조 바이든 정부가 칩스법(Chips Act, 반도체 지원법)을 통해 약속한 각종 보조금도 축소‧철회될 가능성이 높다. 또 미국과 일본 등 경쟁국은 막대한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지만 한국은 세제 지원 등 간접적인 지원 뿐이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이철규 위원장(국민의힘 의원)이 ‘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 및 혁신성장 특별법안'(반도체특별법)을 11일 대표 발의했다.
이 법안은 반도체 클러스터 산업기반시설 조성, 반도체 클러스터 입주기관, 반도체 위탁생산 등 공급망 안정화 시책 등에 재정 지원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이 주요 골자다. 구체적인 지원 금액 등은 없지만 그동안 직접적인 보조금 지원에 소극적이었던 당정이 근거 조항을 마련해 업계는 숨통이 트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법안은 오는 28일 본회의에서 처리할 계획이지만 연구개발(R&D) 인력의 주52시간 규제 예외 조항이 포함돼 야당이 반대하고 있어 통과를 장담할 수는 없다. 다만 이번 법안에서 '반도체 R&D 시설·장비 투자 세액공제율 상향' 부분이 제외된 것에 대해 업계는 아쉬움을 표했다. R&D 시설 및 장비 투자는 반도체 업계 주요 투자 분야로 대부분의 비용 지출이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김상훈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민주당도 대부분 찬성하고 있지만, 일부 언론에 따르면 근로시간 유연화 부분에 부정적이라고 한다”고 전한 뒤 “한국 반도체가 인텔처럼 추락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며 반도체특별법 처리를 호소했다.
업계 관계자는 "R&D 시설과 장비 투자는 회사들이 실제로 큰 비용을 투입하는 부분이고 공장 건설 후에도 대규모 장비 투자가 이어지기 때문에 이에 대한 세액공제율이 높아지면 업계에 실질적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우리나라의 대기업 반도체 시설투자 세액공제율은 15%, 연구개발은 30~40%로 경쟁국과 비교하면 낮은 편이다. 반면 미국은 지난 2022년 반도체과학법을 제정해 527억달러(약 73조원) 규모의 반도체기금을 편성했고 이 가운데 390억달러(약 54조원)를 규모와 관계없이 반도체 제조시설 구축을 위한 보조금으로 지급하고 25%의 세액공제도 추가로 지원한다. 중국도 반도체 첨단기술 도입·적용 기업에 최대 10년간 50~100%의 법인세를 면제해 준다.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산업의 대규모 투자에 대한 기업 부담을 완화하고 투자 장려를 위해서는 경쟁국 수준의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전했다.
미국의 칩스법에 따라 삼성전자는 440억달러(약 61조원)를 투자해 텍사스주 테일러시 일대에 반도체 공장 2곳과 첨단 패키징 연구개발(R&D) 센터를 구축하는 대가로 미국 정부로부터 최대 64억달러(약 9조원) 규모의 반도체 보조금을 받기로 했다. SK하이닉스도 미국에 첨단 패키징 공장 등을 짓는데 38억7000만달러(5조40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으며 4억5000만달러(약 6200억원)의 보조금과 세제 혜택을 지원받는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반도체전문연구원은 “'반도체특별법'이 통과된다면 이는 환영할 만한 일이다”면서 “국내 반도체 업계도 정부 보조금과 세제 혜택을 받는다면 글로벌 시장 경쟁력도 높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반도체 분야에서 위기를 맞고 있는 삼성전자와 HBM 초격차를 유지해야 하는 SK하이닉스도 반도체특별법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올해 R&D에 30조원을 투입한다. 지난 2020년 20조원(21조1100억원)을 넘어선 지 4년 만에 R&D 투자를 50%나 늘린 셈이다. SK하이닉스도 R&D 투자액을 2020년 3조4820억원에서 올해 5조원 안팎으로 확대할 것으로 알려졌다.
또 삼성전자는 최근 부진한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의 경쟁력 회복에 우선 순위를 두고 파운드리 투자를 축소하고 인력 재비치 등 사업 조정에 나선 상태다. 이제 파운드리는 저렴하게 판매할 수 있는 양산 경쟁력에서 시장에서 요구하는 제품과 수요를 파악하는 기획·서비스 경쟁력으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도 지난달 파운드리에 대해서 “사업을 키우려는 열망이 크다. 분사에는 관심이 없다”며 파운드리에 대한 강한 의지를 표명했다. 전문가들도 삼성이 TSMC만 쫓을게 아니라 삼성만의 파운드리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인텔도 파운드리 분야 적자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첨단 패키징 강화’ 전략을 세웠다. 당장 눈앞의 실적보다 장기적인 전략의 ‘기술 경영’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업계 전문가는 “앞으로 범용 메모리 반도체보다는 AI‧하이브리드 용으로 다양화될 것이기 때문에 삼성의 기존 메모리 사업 전략에도 변화가 필요하다”면서 “새로운 메모리 반도체 수요에 대한 전략적 변신으로 시장을 창출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업계는 글로벌 반도체 산업 패권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이와 같은 반도체특별법이 추진되면 국내 반도체 산업 경쟁력 강화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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