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트럼프 2기가 도래함에 따라 여권을 중심으로 자체 핵무장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과거 한국의 핵무장에 우호적인 발언을 한 적이 있는 데다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할 가능성이 있는 만큼 우리도 이번 기회에 핵무장을 시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국민 여론도 과거보다 자체 핵무장을 찬성하는 비율이 많아지는 추세이다. 하지만, 실제 핵무장에 나설 경우 동북아의 핵 도미노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크고, 국제사회의 제재로 인한 경제적 피해 우려가 큰 만큼 핵무장 주장은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문정인 "트럼프, 북핵 용인시 한국내 핵무장론 늘 것"
새로운 백악관의 주인이 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오래 전부터 한국의 핵무장에 긍정적인 발언을 해왔다.
지난 2016년 4월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 중 트럼프는 "북한 핵이 큰 문제로, 한국·일본이 핵을 갖고 스스로 방어에 나선다면 상황이 더 나아질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번 대선 기간에는 한국의 핵무장 가능성에 대한 구체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으나 측근인 엘브리지 콜비 전 국방부 부차관보는 지난 5월 한 인터뷰에서 "한미가 북핵을 억제하기 위해 모든 선택지를 고려할 필요가 있고, 한국의 핵무장을 배제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특히, 트럼프가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다시 북핵 협상에 나설 경우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할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럴 경우에는 우리도 핵을 가져야 힘의 균형을 맞출 수 있다는 논리다.
문정인 연세대 명예교수는 11일 한겨레에 "트럼프 행정부 2기 동안 북한의 핵 보유를 용인한 대북 협상이 이뤄지거나 대북 확장억제가 차질을 빚게 되면 한국의 독자 핵무장 의지는 더욱 강해질 것이고 트럼프 백악관은 이를 용인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미국 워싱턴DC의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빅터 차 한국 석좌도 지난 8일(현지시간) 뉴욕에서 코리아소사이어티 주최로 열린 대담에서 "카멀라 해리스 행정부라면 한국의 핵무장에 매우 강한 반대가 있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면서도 "트럼프 행정부 하에선 모르겠다"라며 핵무장 용인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했다.
다만 두 전문가 모두 한국의 핵무장은 득보다 실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 교수는 "한국의 핵무장을 넘어 동북아의 핵 도미노 현상을 가속하고 이 지역의 전략적 안정을 크게 해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차 석좌도 "핵무장 결정은 한미동맹에도 영향을 미치겠지만 한국의 안보 상황도 바꾸게 된다"며 "한국이 핵을 가지게 되면 중국과 러시아도 한국에 대한 핵 공격 계획을 가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핵무장론은 이를 통해 안보 불안을 줄이자는 데 있지만, 실제로는 안보 위협을 늘려 더욱 불안정한 환경에 놓이게 만들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한동훈 "핵 잠재력 획득해야.. 트럼프 시대, 우리에게 기회"
김기현 "독자적인 핵무장만이 한반도 정세 변화에 대처 가능"
이런 가운데 여권에서는 이번 기회에 핵무장을 위해 적극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2기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을 과도하게 요구할 경우 역으로 핵무장이나 전술핵 재배치를 요구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11일 '미국 신행정부의 한반도 핵 정책 전망과 한미동맹의 새로운 과제' 무궁화포럼 토론회에서 "핵 잠재력 획득 문제는 세계질서가 변화하는 과정에서 구체적이고 체계적으로 준비할 필요가 있다"면서 "트럼프 행정부는 유럽 문제는 유럽에 맡기고 아시아에 집중하겠다고 한다. 우리에게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핵 잠재력 획득은 원자력협정 개정이 필요하지만, 핵무기를 직접 보유하지 않더라도 언제든지 그 단계로 나갈 수 있는 농축재처리 기술 확보 문제를 세계질서 변화 과정에서 구체적이고 체계적으로 준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행사를 주최한 유용원 의원은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과 북한의 핵 위협 현실화로 인해 한국 내 독자적 핵무장 요구가 커지고 있는 현 상황을 언급하며, 국제적 제재와 경제적 타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독자적 핵무장이 아닌 핵무장 잠재력부터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한미원자력협정의 조기 개정을 통해 농축우라늄·재처리 기술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며, 이를 통해 일본과 유사한 수준의 핵무장 잠재력을 갖추는 것이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설명했다.
한기호 의원도 이 자리에서 "또 한 번 도약할 기회가 왔다. 핵무기에 대해서는 우리도 핵무장을 해야 한다는 마지막 목표를 정해놓고 가야 한다"며 "어떻게 가느냐가 문제지 최종적으로는 가야 한다. 이를 트럼프 정부와도 거래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기현 의원은 지난 10일 북한의 제7차 핵실험에 대비해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 유지와 국민의 안전보장을 위한 자위권적 핵무장 촉구결의안'을 발의한다고 밝혔다.
이번 결의안은 북한이 또다시 제7차 핵실험 또는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등의 위협적 핵 무력도발을 감행할 경우, 대한민국 정부가 한반도의 평화 정착과 대한민국 국민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자위권적 차원의 독자적 핵무장을 대외에 선언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이 담겼다.
김 의원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도발이 대한민국뿐 아니라 주변 아시아 국가는 물론 미국 본토까지 위협하는 상황"이라며 "굳건한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핵무장만이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한국의 자체 핵무장이 어려운 이유로는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 정면 위반에 따른 국제사회의 제재 가능성과 북한에 비핵화를 요구할 명분을 잃는다는 점 등이 꼽혔다.
그러나 NPT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을 감안하면 한국의 핵보유에 대한 NPT 체제에 따른 제재는 들어오기 어렵고, 한국의 핵무장도 북한이 핵을 폐기하면 함께 폐기하겠다는 제한적 형태가 된다면 성사 가능성이 전혀 없지는 않다는 의견이 최근 힘을 얻고 있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윤상현 의원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집권이 대한민국이 '제한적 자체 핵무장'에 나설 기회라고 강조했다.
윤 의원은 "'공포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우리도 자체 핵무장을 하자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북한이 핵을 폐기하면 우리도 폐기하겠다'는 카드로서의 제한적 무장"이라며 "트럼프가 북한과의 '빅딜'로 주한미군을 철수시킬 때 제한적 핵무장 카드를 꺼내면 받아들여질 수 있다. 미국이 한국의 핵 보유를 승인하면 NPT(핵확산금지조약) 체제에 따른 국제사회의 제재는 들어오기 어렵다"고 말했다.
정부 "현재 최적의 대안은 확장억제 강화"
핵무장 찬성 66%.. 핵무장에 따른 제재로 소득 감소시 반대 증가
다만 바이든 행정부에서 이뤄진 한미의 '워싱턴 선언' 이후 확장억제 공약이 한미 핵협의그룹(NCG) 등을 통해 제도화된 만큼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더라도 현재 확장억제의 판 자체를 뒤엎진 못할 것이란 관측에도 무게가 실린다.
한국의 핵무장을 용인할 경우 다른 나라들도 핵무장을 추진하는 '핵 도미노' 현상이 벌어져 글로벌 안보상황이 더 위태로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정부도 핵무장에는 선을 긋고 있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7일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지금 가장 현실적이고 최적의 대안은 확장억제를 계속 강화해서 실행력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우리 국민 다수는 자체 핵무장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통일연구원이 지난 6월 공개한 통일의식조사 결과 보고에 따르면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 경우 우리도 핵무기를 보유해야 한다는 주장에 66.0%가 찬성했다.
또, 국제사회의 경제 제재로 북한 비핵화를 달성할 수 있다는 여론은 15.4%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64.3%는 경제 제재 강화가 북한의 핵포기를 견인하지 못할 것이라고 비관했다.
우리 국방을 위해 주한미군 주둔과 핵무기 보유 중 양자택일해야 한다면 핵무기를 선택하겠다는 비율이 44.6%로 주한미군 선호비율 40.6%보다 높게 나왔다. 과거 조사에서는 모두 주한미군 주둔 응답이 더 높았지만 올해 조사에서 핵무장 응답이 처음으로 역전했다.
다만 제재에 따른 소득 감소 가능성이 함께 제시되면 핵무장 지지율이 30%대로 떨어진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지난 10월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이 주최한 '숫자에 가려진 핵무장 여론의 실체' 학술회의에서 공개된 여론조사 연구 결과에 따르면 자체 핵무장 지지율은 '경제적 타격'과 '한미동맹 약화' 우려에 대폭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체 핵무장에 따른 국제사회의 경제 제재로 개인이 6개월간 25% 소득이 감소하는 '비용'을 감수해야 한다면 핵무장 지지율은 57.8%로 조사됐다. 그러나 감소한 소득 회복에 6년이 걸린다고 가정하면 지지율은 47.7%로 떨어졌고, 원상회복이 어려워질 경우 37.0%까지 추락했다.
연구진은 이번 조사에서 핵무장으로 인한 경제 타격의 체감도를 주기 위해 인도, 파키스탄, 북한, 이란 등의 경제 제재 사례를 참고해 연 소득이 25% 하락하는 것으로 가정했다.
핵무장의 또 다른 비용으로 주로 거론되는 한미동맹 약화에 관한 질문에서는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이 유지될 때의 핵무장 지지율은 59.4%이지만 핵무장의 여파로 한미동맹이 파기되고 주한미군이 완전히 철수하는 상황이 초래된다면 38.2%만 핵무장에 찬성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미동맹이 유지된다고 해도 주한미군이 완전히 철수하는 상황이 벌어질 경우 핵무장 지지율은 절반에 못 미치는 47.1%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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