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자동차 브랜드의 모터스포츠 참가는 고객을 팬으로
전환할 수 있는 가장 성의 있는 노력이다.
따라서 제네시스가 모터스포츠 참가를 결정한 것은
이제 막 시작하는 하이엔드 퍼포먼스 브랜드로서
더 많은 팬을 확보하고 그들과 교감할
거의 유일한 방식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생각해보면 힌트는 있었다. 지난 7월 공개한 ‘제네시스 × 그란 베를리네타 비전 GT 콘셉트’의 보디워크는 영락없는 프로토타입 스포츠카였다. 거기에 최근 발표한 고성능 브랜드 ‘마그마’의 강렬한 오렌지 컬러를 뒤집어썼으니 이쯤 되면 거의 모든 정보를 준거나 다름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마 했다. 그만큼 제네시스가 모터스포츠에 참가할 거라는 예상은 누구도 쉽게 할 수 없었을 거다. 하지만 60일가량 지나 WEC(World Endurance Championship)는 공식 성명을 통해 제네시스의 2026년 합류 소식을 알렸고, 그렇게 제네시스는 그간 뿌린 모든 떡밥을 회수했다. 물론 하이엔드 브랜드의 모터스포츠 진출은 낯선 일이 아니다. 심지어 벤틀리조차 그들의 역사에서 모터스포츠 헤리티지를 절대 빼놓지 않으니 말이다. 130년 자동차 역사 속, 거의 모든 럭셔리 브랜드가 모터스포츠 아카이브를 갖고 있으니 이쯤 되면 공식이라도 해도 좋다. 그러니까 제네시스는 고성능 브랜드의 본격적 출범을 앞두고 오랜 공식을 따르기로 결정한 것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사실 자동차 브랜드의 모터스포츠 참가는 고객을 팬으로 전환할 수 있는 가장 성의 있는 노력이다. 단적으로 고객은 실패한 제품과 브랜드를 용서하지 않지만, 팀이 최선의 노력을 보여주기만 한다면 팬은 실수를 용서하고 뜨거운 응원을 보낸다. 따라서 제네시스가 모터스포츠 참가를 결정한 것은 이제 막 시작한 하이엔드 퍼포먼스 브랜드로서 더 많은 팬을 확보하고 그들과 교감할 거의 유일한 방식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특히 제네시스가 선택한 내구레이스는 팬들과 교감하기에 더없이 좋은 무대다. 이곳 팬들은 사고로 차가 망가져도 실망은커녕 몇 시간에 걸친 수리 끝에 트랙으로 되돌려 보내는 팀의 노고에 박수를 보내고, 우승보다 완주 그 자체에 환호한다. 또 쉼 없는 도전에 열광하고, 압도적 퍼포먼스보다 곤란에 빠진 경쟁 팀을 배려하는 자세에 감동한다. 그만큼 제네시스가 도전하기로 결정한 내구레이스는 뜨거운 열정과 감정이 매 순간 교차하는 무대다. 이곳에서 제네시스는 LMDH(Le Mans Daytona Hybrid) 클래스로서 BMW, 페라리, 포르쉐, 람보르기니, 캐딜락, 알핀, 아큐라와 만난다. 치열한 경쟁이야 피할 수 없지만, 이렇게 경쟁 팀이 다양할 때 참가를 결정한 것도 탁월했다. 모터스포츠의 흥행은 참가 브랜드 수에 비례하며, 그만큼 제네시스 로고를 더 많은 팬에게 보망여줄 수 있으니 말이다(LMH보다 참가 비용이나 예산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LMDH를 선택한 것도 괜찮은 결정이라 할 수 있다). 또 전기차가 케즘(chasm)에 빠져 있고, 하이브리드에 대한 관심이 다시금 부상하는 이 시점에 하이브리드 테크놀로지가 기본이 되는 LMDH는 제네시스에 더없이 좋은 선택일 수밖에 없다.
물론 당장 제네시스의 우승을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 엄청난 역사와 경험을 지닌 페라리와 포르쉐가 기다리는 데다 다른 브랜드 역시 이제 막 시작하는 제네시스보다는 더 많은 경험과 노하우를 갖췄으니까. 지금 제네시스에 필요한 건 바로 인내심이다. 특히 내구레이스에 경험이 많은 레이스 파트너와 완벽한 호흡을 이룰 때까지 참고 기다보려야 한다. 분명한 사실은 그 기다림이 결코 헛되지 않을 거라는 점이다. 쉼 없는 도전에 더 크게 열광하는 내구레이스 팬들이 있는 한 우승하지 못해도 잃는 것보다는 얻는 게 훨씬 많다. 그럼에도 이들의 우승 가능성을 기대하게 하는 건 제네시스를 아우르는 현대자동차가 WRC(World Rally Championship), WTCR(World Touring Car Cup)에서 쌓은 경험 때문이다. 그들은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인내하는 습관을 길렀고, 팬들과 교감하는 방식을 터득했으며, 이기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깨달았다. 스스로 각인한 DNA가 제네시스로 이어진다면 세상을 놀라게 할 결과를 얻기까지 어쩌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박종제
모터스포츠 칼럼니스트. 편집장을 지냈다. <레드불 코리아>, <모터트렌드>, 한국 타이어 매거진 <뮤(MiU)> 등 온·오프라인 채널에 F1, 24h 르망 등 다양한 글로벌 모터스포츠 이야기를 전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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