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러, 북한군 파병에 상호 조약 근거로 '집단 자위권' 주장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자체가 국제법 위반…북한군 파병도 마찬가지
한국 등 주요국들, 북한군 파병은 "명백한 유엔 대북 결의 위반"
(서울=연합뉴스) 심재훈 기자 =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북한군이 파병되자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미국 등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미국, 유럽연합(EU) 등 대부분 국가가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을 국제법 위반이라고 강력히 비난하고 있지만 러시아와 북한은 적법하다며 항변하고 있다.
최근에는 북한군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장에 실제 투입된 것으로 확인되면서 국제전으로 비화할 우려도 커지고 있다.
그렇다면 북한군이 러시아에 파병된 게 국제법상 문제가 없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러시아가 명분을 떠나서 유엔 헌장을 어기고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 자체가 국제법 위반이다. 따라서 러시아 편을 들어 파병한 북한도 양국 간 상호 조약을 떠나 국제법 위반이며, 러시아에 북한군 파병은 유엔의 대북 제재 결의까지 위반해 국제법을 준수하지 않은 게 맞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을 '특별군사작전'으로 불러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지난 5일(현지시간) 영상 연설에서 북한군 병력이 우크라이나군과 전투를 벌였다고 확인하면서 "북한 병사들과의 첫 전투는 세계 불안정성의 새 장을 열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이처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에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북한군 파병의 국제법 위반 여부를 따져봤다.
북한군 파병의 국제법 위반 여부를 논하려면 우선 전제가 되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적법한지부터 알아봐야 한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전쟁'으로 부르지 않는다. 러시아계 주민이 다수인 돈바스, 즉 러시아 동부 도네츠크와 루한스크 '해방'을 명분으로 2022년 2월 특별군사작전이라는 부르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공세에 나섰고, 그해 가을 이들 두 지역과 우크라이나 남부 자포리자, 헤르손을 자국의 '새 영토'로 편입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지난 9월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열린 러시아와 걸프협력회의(GCC) 전략대화 이후 기자회견에서 우크라이나 분쟁의 핵심 쟁점은 영토 다툼이 아닌 러시아계 주민 인권 보호라고 주장했다.
라브로프 장관은 "우리는 누군가의 영토를 원한 적이 없다. 단지 러시아 문화와 언어, 역사,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국제법과 소수민족 인권에 관한 많은 협약, 유엔 헌장의 요구대로 인도적 대우를 받길 바랐을 뿐"이라고 말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지난 9월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동방경제포럼(EEF)에서 러시아의 주목표가 돈바스의 해방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러시아가 '특별군사작전'이라는 명분으로 주권 국가인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은 유엔 헌장을 위반한 침략 행위로 보는 게 맞다.
유엔 헌장 2조 4항에는 '모든 회원국은 그 국제관계에 있어 다른 국가의 영토보전이나 정치적 독립에 대해 또는 국제연합의 목적과 양립하지 아니하는 어떠한 기타 방식으로도 위협이나 무력행사를 삼간다'고 규정돼있기 때문이다.
국제형사재판소(ICC)는 지난해 3월에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점령지에서 아동을 '불법적으로 이주시킨' 전쟁범죄 행위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볼만한 합리적 근거가 있다며 체포 영장까지 발부했다.
이런 상황의 러시아에 북한이 탄약 등 대량의 무기를 수출하고 파병을 통해 전쟁까지 돕는다면 침략 행위를 돕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게 대부분 국가의 시각이다.
◇북러, 북한군 파병에 상호 조약 근거로 '집단 자위권' 주장
그렇다면 러시아와 북한은 북한군 파병을 어떤 식으로 적법하다고 주장하고 있을까.
북한은 10월 25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파병했음을 사실상 시인했다.
김정규 북한 외무성 러시아 담당 부상은 이날 조선중앙통신 기자의 질문에 답하는 형식을 빌려 밝힌 입장에서 "최근 국제보도계가 여론화하고 있는 우리 군대의 대러시아 파병설에 유의하였다"며 "그러한 일이 있다면 그것은 국제법적 규범에 부합되는 행동일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김 성 주유엔 북한 대사는 10월 30일(현지시간)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안보리 회의에서 "북한과 러시아는 정치, 경제, 군사 및 문화를 포함한 모든 분야에서 양자 관계를 발전시킬 권리가 있고 이는 북러 조약에 따라 국제법상 규범에 완전히 부합한다"며 "만약 러시아의 주권과 안보 이익이 미국과 서방의 지속적인 위험한 시도에 의해 위협받고 있다면 우리는 그에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푸틴 대통령도 10월 24일(현지시간) 카잔에서 열린 브릭스(BRICS) 정상회의 결산 기자회견에서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을 부인하지 않은 채 "북한과 무엇을 어떻게 할지는 우리가 알아서 할 일"이라고 말했다.
북한과 러시아가 맺은 지난 6월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의 제4조에는 "쌍방 중 어느 일방이 개별적인 국가 또는 여러 국가로부터 무력 침공을 받아 전쟁 상태에 처하는 경우 상대방은 유엔 헌장 제51조와 북한과 러시아 연방의 법에 준해 지체 없이 자기가 보유한 모든 수단으로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고 돼 있다.
유엔 헌장 제51조는 유엔 회원국에 무력 공격이 있을 경우 개별적ㆍ집단 자위권을 가질 수 있다고 규정한 조항이다. 개별 자위권은 자국이 타국의 공격을 받은 경우 자국과 국민을 방어하기 위해 무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리며, 집단 자위권은 동맹국이 군사력을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의미한다.
유엔 헌장 제51조에는 "이 헌장의 어떠한 규정도 유엔 회원국에 대해 무력 공격이 발생한 경우 안전보장이사회가 국제평화와 안전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조처를 할 때까지 개별적 또는 집단적 자위의 고유한 권리를 침해하지 아니한다. 자위권을 행사함에 있어 회원국이 취한 조치는 즉시 안전보장이사회에 보고된다. 또한 이 조치는 안전보장이사회가 국제평화와 안전의 유지 또는 회복을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조치를 언제든지 취한다는 이 헌장에 의한 안전보장이사회의 권한과 책임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러시아 쿠르스크 지역은 우크라이나군이 지난 8월 러시아 본토를 공격해 일부 지역을 점령한 곳이기에 북러 조약의 제4조에 적용된다고 북러 양측은 해석하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북한과 러시아는 이 조약에서 '자위권'에 강조하면서 자신과 동맹국을 지키기 위한 명분을 내세우며 전쟁을 합리화하려고 시도하는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유엔 헌장 51조에 따른 것으로 주장하는 것도 같은 선상이다.
바실리 네벤쟈 주유엔 러시아 대사는 2022년 2월 24일(현지시간) 푸틴 대통령의 군사작전 승인에 대해 돈바스 주민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며 항변하면서 "오늘날 우크라이나 위기의 근원은 여러 해 동안 스스로 이행 의무를 파괴한 우크라이나 자신의 행동에 있다"고 밝혔다.
네벤쟈 대사는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에서 전쟁이 아니라 특별 군사작전을 벌이고 있다"며 "이는 유엔헌장 51조 집단자위권에 따른 작전"이라고 주장했다.
◇한국 등 주요국들, 북한군 파병은 "명백한 유엔 대북 결의 위반"
하지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의 선제공격으로 시작됐고 전선의 일부에 쿠르스크 지역이 포함됐다고 해도 러시아의 집단 자위권 행사에 대한 국제법적 정당성을 부여하기엔 무리가 있다.
한국을 포함한 미국 등 주요국들은 러시아에 북한군 파병이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 결의 위반이기 때문에 국제법을 어기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유럽연합(EU)은 10월 24일(현지시간) 호세프 보렐 외교안보 고위대표 명의 성명에서 북한의 러시아 파병에 대해 "유엔 헌장의 가장 근본 원칙을 포함해 다수의 국제법을 심각하게 위반하는 것"이라며 "북러 간 군사협력과 무기 거래가 심화하고 있는 것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4일 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키르기스스탄·타지키스탄·투르크메니스탄 등 중앙아시아 5개국 대표단을 접견한 자리에서 북한의 러시아 파병에 대해 "북한이 국제법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정면으로 위반하는 러시아와의 불법 군사 협력을 진행하며 군사 무기의 이전을 넘어 특수부대 파병이라는 위험하고 전례 없는 일을 벌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국과 미국, 영국, 프랑스 등 10개국은 6일(현지시간) 외교장관 명의의 공동 성명에서 "잠재적으로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한 전쟁에 투입될 수 있는 북한의 러시아 파병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면서 "이는 러시아가 자국의 손실을 만회하려는 필사적인 노력을 보여주며 유엔 헌장의 기본 원칙을 포함한 국제법 위반 행위"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북러 간 군사협력 강화에 대해서는 "가장 강력한 용어로 규탄한다"면서 "북한군이 탄도미사일이나 무기 사용과 관련된 훈련이나 기타 지원을 받거나 제공하는 것은 유엔 안보리 결의 1718호, 1874호, 2270호를 직접적으로 위반행위"라고 지적했다.
앞서 매슈 밀러 미 국무부 대변인은 10월 29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러시아가 북한 군인들을 훈련시키는 것은 안보리 결의 1718호, 1874호, 2270호를 직접적으로 위반한 행위"라고 밝혔다.
이어 "북한 군인들이 탄도 미사일이나 기타 무기 사용과 관련된 훈련이나 지원을 제공하거나 받는 것은 러시아와 북한이 지속해 유엔의 무기 수출 금지 조치를 위반한 것에 더해 이들 조항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엔 안보리 결의 1718호는 2006년 북한의 1차 핵실험 이후 채택된 것으로 금융·경제 제재와 함께 핵·미사일 등 무기 수출 금지 조치 등이 가해진 것이다.
북한이 2009년 2차 핵실험 강행 이후 채택된 1874호는 더욱 강력한 제재로 무기 및 관련 물자에 대한 수출입 금지, 공급·제조·유지·사용과 관련된 금융 거래, 기술 훈련, 자문 등을 금지했다. 결의 2270호는 2016년 4차 핵실험 및 장거리 로켓 발사에 대응한 제재로, 핵·미사일 개발 교육을 막는 내용이 담겼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한반도전략센터장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기 때문에 침략 국가며 침략국의 편을 들어 북한이 전쟁에 가담하고 있어 당연히 국제법 위반"이라면서 "침략 행위 자체가 자위적 수준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 센터장은 "이는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 위반도 맞다"라면서 "러시아가 북한에서 포탄을 수입하고 있고 지난 6월 북러 조약으로 모든 분야에서 협력하겠다고 하면서 기존의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를 노골적으로 무시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president21@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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