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 '창경궁 팔각칠층석탑' 등 석조물 연구…"장수 빌기 위한 탑" 추정
국립고궁박물관 분관 등 이전 가능성 주목…"관천대, '일영대'로 명칭 바꿔야"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조선시대 궁궐인 창경궁 안에 있는 보물 석탑이 일제강점기 당시 궁궐을 꾸미기 위해 옮겨온 것으로 추정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국가유산청이 올해부터 창경궁 복원·정비 사업을 단계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조선 왕조의 역사성을 고려해 탑을 이전하는 방안까지 검토할지 주목된다.
12일 국가유산청에 따르면 동국대 산학협력단(책임연구원 김민규)은 최근 연구·조사 성과를 정리한 '창경궁 내 석조물 역사성 고증연구 용역 보고서'를 궁능유적본부에 제출했다.
조선시대 석조 미술사를 전공한 김민규 문화유산전문위원을 주축으로 한 연구진은 보물 '창경궁 팔각칠층석탑'을 비롯한 주요 석조물의 조성 경위와 설치 시기를 조사했다.
창경궁 춘당지 옆에 세워진 이 탑은 우리나라에 있는 유일한 중국 석탑이다.
중국 명나라 때 만들어졌던 것을 옮겨와 세웠다거나, 일제강점기 초기에 창경궁 안에 이왕가박물관을 만들면서 만주에서 온 상인으로부터 사들였다는 설이 전한다.
연구진은 1층 몸돌에 새겨진 명문을 근거로 "1470년 명나라 요양(遼陽·랴오양)이라는 도시에서 '정옥암'(珽玉巖)이라는 인물이 생전에 건립한 작품"이라고 판단했다.
연구진은 "'도강'(都綱)이라는 불교계 관직을 지낸 인물이 자신의 장수를 위해 건립한 것"이라며 "랴오닝(遼寧) 지역의 탑과 동일한 형태와 제작 방법이 관찰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1913∼1929년에 창경궁 조경을 위해 이전됐으며 이런 조경 방식은 일본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연구진은 탑 꼭대기에 후대에 더한 듯한 머리 장식이 올려져 있는 것과 관련해서는 "최상단 부재는 (아래) 탑과는 다른 조선시대 작품으로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일본 궁내청이 소장한 창덕궁 사진첩 자료를 근거로 "창덕궁 존덕정 앞 대석(臺石) 위에 놓여 있던 것을 탑을 이전할 때 올려놓은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연구진은 향후 창경궁 팔각칠층석탑을 다른 곳으로 옮기는 방안도 검토했다.
이들은 "한국의 미술품이 아닌 중국의 문화유산이며 조선의 궁궐과 성격이 전혀 다른 불교미술이라는 점, 일본식 정원의 경물로 현재 자리에 배치된 점에서 이전을 고려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전 장소로는 창경궁 대온실, 2029년 건립 예정인 국립고궁박물관 분관 등을 제시했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를 통해 창경궁 관천대와 풍기대의 성격과 제작 시기도 새롭게 밝혀냈다.
이들은 "창경궁 관천대에는 해시계와 별시계의 기능을 함께 갖춰 낮과 밤의 시간을 측정할 수 있도록 한 독창적인 천문 관측기기인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가 설치돼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조선시대에 일성정시의가 설치된 시설은 '일영대'(日影臺)라고 불렸다는 점을 들어 "보물 '창경궁 관천대'의 명칭을 '창경궁 일영대'로 변경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또 조선시대에 바람의 방향과 세기를 관측하기 위해 깃발을 세워 둔 풍기대는 "그동안 제작 시기가 1770년대로 알려졌으나 19세기 후반에 제작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연구를 총괄한 김민규 동국대 불교학술원 문화재연구소 전임연구원은 "궁궐에는 돌로 만든 석조 문화유산이 많이 있으나 그동안 연구된 내용이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김 연구원은 "'동궐도' 등 회화 자료와 현존하는 석조 문화유산을 종합적으로 연구하면 궁궐 복원 계획에 시대성과 다양성을 더할 수 있다"며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번 보고서는 창경궁 복원·정비 계획을 수립할 때 반영될 예정이다.
궁능유적본부 관계자는 창경궁 팔각칠층석탑 이전 여부와 관련해 "보고서에 제시된 여러 안을 토대로 내부적으로 검토한 뒤 결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ye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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