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일본 집권 자민당 총재인 이시바 시게루 총리가 11일 결선투표 끝에 총리로 재선출되며 2차 내각을 출범시켰다. 중의원 결선투표는 30년 만이다.
이시바 총리가 연임에 성공했지만 여소야대 구도에서 야당 도움 없이는 각종 예산안과 법안 처리가 어려워져 식물 총리가 될 가능성이 커졌다. 또, 이시바 총리가 조기에 지지율을 끌어올리지 못하면 내년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자민당 내에서 총재 교체론이 나올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1차 투표, 이시바 221표 vs 노다 151표.. 결선 투표, 이시바 221표 vs 노다 160표
제2야당 일본유신회(38석) 제3야당 국민민주당(28석), 이시바 연임 용인
집권 자민당 소속 이시바 총리는 이날 특별국회 중의원(하원)과 참의원(상원) 본회의에서 열린 총리지명 선거에서 모두 1위를 차지해 다시 총리직에 올랐다. 이로써 지난달 1일 취임 이후 40여일 만에 11일 총리로 재선출됐다.
하지만 그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중의원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자가 없어 1·2위인 이시바 총리와 제1야당 입헌민주당 노다 요시히코 대표가 결선 투표를 치른 것이다. 중의원에서 결선투표는 1994년 이후 30년 만이었다.
이는 어느 정도 예상됐던 바다. 지난달 27일 치러진 일본 중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전체 465석 중 191석에 그치면서 과반을 달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24석을 차지한 공명당과 연립 여당을 구성하더라도 215석으로 과반 의석 확보가 어려워 최악의 경우 정권 교체 가능성도 거론됐다.
이날 1차 투표에서는 전체 465표 중 이시바 총리는 221표, 노다 입헌민주당 대표는 151표를 각각 얻었다. 이후 치러진 결선 투표에서도 이시바 총리는 221표를 얻으며, 160표에 그친 노다 대표를 따돌리고 총리에 재지명 됐다.
캐스팅 보트를 쥔 제2야당 일본유신회(38석)와 제3야당 국민민주당(28석)이 노다 대표에게 표를 던졌다면 정권 교체도 가능했으나 이들은 이시바와 노다 누구에게도 표를 주지 않으면서 사실상 이시바 총리 연임을 용인했다.
이시바, 총리직 지켰지만 여소야대에 '식물내각' 가능성
이시바 총리는 이날 제103대 총리로서 제2차 이시바 내각을 출범시키게 됐다.
2차 내각 각료들 면면에는 큰 변화는 없을 전망이다. 이시바 총리는 중의원 선거에서 낙선한 자민당 소속 법무상, 농림수산상과 기존 각료가 공명당 대표로 취임하면서 공석이 된 국토교통상 등을 교체할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앞으로의 국정 운영에는 난항이 예상된다. 여소야대라는 정치 지형에다 정권 재창출을 사실상 밀어준 제2·3야당에 정치적 빚까지 지게 되면서 '식물 총리'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현재의 구도는 다시 총선을 치르거나 자민당과 공명당의 연립 여당에 다른 정당이 합류하지 않으면 해소하기 힘들다.
야당이 반대하면 예산안과 법안을 통과시킬 수 없는 상황이어서 자민당은 상대적으로 정책 지향이 유사한 국민민주당과 연대를 모색하고 있다. 만일 국민민주당이 변심해 야당과 뭉치면 내각 불신임안 결의 등으로 일본 정치는 언제라도 소용돌이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민민주당은 공명당처럼 연립 정권에 참여하지 않고 정책마다 협력하는 '부분 연합' 형태로 여당에 협조한다는 방침이다.
국민민주당, 근로자 소득세 감면 요구.. 여당 내부 반발
입헌민주당, 예산위원장·법무위원장 차지.. 정부 견제 강화
이런 가운데 국민민주당의 핵심 정책인 '103만엔의 벽' 개선을 놓고 자민당과 공명당 내부에서 반대 목소리가 적지 않아 자민당과 국민민주당의 협력이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국민민주당은 근로소득자 면세 기준인 103만엔을 178만엔(약 1천620만원)으로 올릴 것을 요구하고 있다. 즉, 근로소득자를 위한 감세 정책이다.
문제는 면세 기준을 상향할 경우 세수가 대폭 줄어들고 재정이 악화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에 정부와 여당 내에서는 신중론이 팽배한 상황이다. 공명당에서는 그동안 물가가 15% 정도만 상승했다는 점을 근거로 면세 기준을 10만엔(약 9만원)가량 올리는 방안을 검토하자는 견해가 나오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이시바 총리는 이날 특별국회를 앞두고 다마키 야치이로 국민민주당 대표와 면담한 뒤 총리관저에서 만난 기자들에게 "민생 개선이 중요하다. 생각을 공유할 수 있었다"고 말해 근로자 면세 기준 상향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만큼 자민당 입장에서 국민민주당의 협조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야당의 정부 견제 기능도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은 30년간 여당이 차지해온 예산위원장을 맡게 됐다. 예산위원회는 정부 예산안 심의를 맡는 핵심 상임위로 위원장은 위원회 개최나 표결 결정 등을 통해 내각을 압박할 수 있다.
또, 입헌민주당은 법무위원장 자리도 차지했다. 그동안 자민당 기피로 진척을 보지 못한 '선택적 부부 별성제' 실현을 위한 민법 개정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내년 여름 '총리 교체' 가능성도 거론
한편에서는 이시바 총리가 내년 여름께 교체될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자민당 내에서는 당장 총리를 바꾸더라도 지지율 상승을 꾀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시바 카드를 유지하고 있으나 정치적 상황이 갖춰지면 지난 9월 자민당 총재 선거 때 경쟁한 다카이치 사나에 전 경제안보담당상이나 다카이치를 밀어준 아소 다로 전 총리가 '이시바 끌어내리기'에 앞장 설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출범 한 달이 지난 이시바 내각의 지지율도 30%대에 그치고 있다. 이에 현지 언론은 자민당 내에서 내년 여름 참의원 선거와 도쿄도 의회 선거전에 총리 교체론이 불거져 나올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붕괴된 과반을 회복하기 위함이다.
또 야당의 내각 불신임 결의도 비슷한 시기나 상황에 따라서는 그 전에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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