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선 당선인의 플로리다주 소재 자택이자 화려한 프라이빗 리조트인 ‘마라라고’가 또 한 번 ‘겨울 백악관’으로 떠올랐다. 트럼프가 차기 새 행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가운데 이곳은 백악관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입후보자들이 자주 찾는 곳이 됐다.
내년 1월까지는 조 바이든 현 대통령의 공식 임기이지만, 마라라고는 이미 미국 정치권력 다툼의 중심지가 됐다.
미 연방수사국(FBI)이 급습해 이곳 욕실에 놓여 있던 미국 핵무기 및 스파이 위성에 관한 기밀 문서를 찾아낸 지 불과 2년이 지난 지금, 마라라고 주변은 순찰 로봇개와 선박에서 무장한 경비병 등이 지키고 있으며, 그 안에는 다양한 인물들로 북적거린다.
차기 에너지부장관으로 거론되는 더그 버검 노스다코타 주지사가 선거 당일 밤 이곳을 찾았으며,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국방장관 대행의 비서실장을 지낸 캐시 파텔도 모습을 드러냈다.
아울러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으로 알려진 일론 머스크 CEO도 찾아와 함께 트럼프 일가와 식사하거나 세게 정상들과 통화했다. 머스크는 트럼프 당선인 곁에 있고자 비행기를 타고 왔다 갔다 하면서 저택 내부는 물론 어린 아들과 팜 비치 국제공항 활주로에 있는 모습도 포착됐다.
마라라고에 머무를 수 있는 행운을 누리지 못한 이들은 어떨까. 웨스트 팜비치 인근의 호텔과 레스토랑은 새 행정부에 어떻게든 들어가려는 희망자들과 트럼프의 승리를 축하하는 지지자들로 가득하다.
백신 회의론자이자 미국의 가장 유명한 정치 가문 출신인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는 인공 아이스링크와 크리스마스트리가 손님을 맞이하는 ‘더 벤’ 호텔의 호화로운 수영장 바에서 머물렀다.
더 벤 호텔에는 거대한 황금빛 그레이트데인 개 조각상이 로비는 물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릴 모든 층을 장식하고 있다.
한때 무소속 대통령 후보였던 케네디는 정권인수위원회 일원으로, 현재 보건 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을 지닌 자리를 두고 경쟁 중이다.
민주당에서 공화당으로 전향한 털시 개바드 전 하원의원과 함께 케네디는 선거 전부터 “세상에는 서로 다른 이념을 지닌 사람들이 있고, 우리는 인수위에서 이러한 우리의 비전을 위해 맞서 투쟁해야 한다”고 발언한 바 있다.
또한 최근 바이든 행정부가 노스캐롤라이나의 공화당 우세 지역에 홍수를 일으켰다며 비난한 마조리 테일러 그린 하원의원(조지아주)도 더 벤 호텔에서 목격됐다. 그린 의원은 현재 내각의 한 자리를 잡고자 애쓰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해안가에 자리 잡은 호화로운 이탈리아 르네상스식 호텔인 ‘더 브레이커스’의 상황은 어떨까. 아마도 호텔 직원들의 눈길을 가장 사로잡은 이물은 데이나 화이트 UFC(얼티밋 파이팅 챔피언십) CEO일 것이다.
화이트 CEO는 선거 당일 밤 자신의 친구인 트럼프와 함께 무대에 올랐으나, 개인적으로 정치적 야망은 없다고 말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이곳에 몰린 많은 이들의 생각은 다를 것이다.
BBC가 호텔 복도에서 우연히 마주친 한 공화당 내부 인사는 현재 당내 여러 계파가 서로 권력을 놓고 싸우고 있다며 마치 “난투극”과도 같은 정권 인수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트럼프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가까이 오고자) 서로 밀치고 쟁탈전을 벌이며, 아첨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그는 “주요 자리를 얻지 못할 일부 인사를 중심으로 (차기 행정부 내) 역할을 원치 않는다고 말하기 시작했다”며 약간의 우려를 내비쳤다.
일례로 톰 코튼 상원의원(아칸소주) 차기 행정부에서 일하는 데 자신은 관심 없으며, 차라리 상원 지도직을 선호한다고 밝힌 바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고위직 인사 임명 시 선출직 공무원을 그리 선호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장남인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는 과거 ‘폭스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아버지는 “자신이 트럼프보다도 더 잘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원치 않는다면서, 아버지는 이렇듯 재앙이 될 듯한 사람은 누구든 차단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아울러 트럼프 본인 또한 자신의 1기 행정부 때 가장 큰 실수가 “나쁜 사람들 혹은 불충한 사람들”을 기용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이번에는 다르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2016년 트럼프가 당선됐을 때도 크리스 크리스티 당시 뉴저지 주지사가 퇴임하는 오바마 행정부와 함께 준비했던 정권 교체 계획은 쓰레기통에 버려졌다.
승산이 없어 보였던 대선에서 승리한 트럼프 팀은 파격적인 행보를 선택하며, 크리스티 주지사를 해고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뉴욕의 ‘트럼프 타워’에서는 마치 ‘어프렌티스’(과거 트럼프가 진행한 TV 리얼리티쇼) 같은 퍼레이드가 펼쳤다. 몰려든 취재진 앞으로 당시 26층의 사무실에 있는 트럼프를 보고자 수많은 이들이 이곳을 찾아 황금색 엘리베이터를 타고 줄줄이 올라갔던 것이다.
전 세계가 트럼프가 집권한 미국의 모습을 궁금해하는 동안 월 스트리트, 미디어, 정치계, 연예계의 영향력 있는 인사 모두가 그를 보고자 몰려들었다. 빌 게이츠, 앨 고어, 심지어 카니예 웨스트도 있었다.
그리고 또 한 번 당선된 트럼프는 자신과 처음부터 함께한 사람들을 고르며 충성도를 가장 우선시하는 것 같다.
그리고 전 세계 언론사는 거의 요새 수준의 보안을 자랑하는 마라라고와 근처 호텔 발코니, 공원, 해변에 몰려들고 있다.
인수인계 과정은 여전히 의도적으로 파격적이지만, 2016년보다도 훨씬 더 막후에서 진행되고 있다.
트럼프 새 행정부의 첫 번째 인선으로는 플로리다 정치 컨설턴트인 수지 와일스 공동 선거대책위원장을 백악관 비서실장으로 임명한 것은 이미 잘 구축된 플로리다의 이 보수적인 정치 조지기 백악관에서도 그 성공을 재현할 수 있다는 단서로 보인다.
플로리다 소재 로비 업체 ‘어드보커시 파트너스’의 공동 설립자인 슬레이터 베일리스는 플로리다주에서 선거전을 치르는 동안 때로는 와일스를 위해서, 때로는 와일스에 맞서 로비 활동을 펼쳐온 인물로, 와일스의 편에 서서 일하는 게 더 좋다고 말한다.
“영국인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와일스는 미국 선거 정치의 ‘철의 여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베일리스는 플로리다 전역에서 인재들이 쇄도하고 있다면서, 플로리다가 “미국을 사랑하고, 유권자들의 목소리를 더 잘 반영할 수 있도록 역할을 하고 싶어 하는 똑똑한 보수파들을 위한 저항의 근거지”가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공화당 정치 컨설턴트인 맥스 굿맨은 플로리다의 정치적 파도가 워싱턴에 몰아칠 것으로 예상한다. 인수위가 선거 캠프의 인사 및 플로리다 내에서 트럼프를 일찍 지지한 상하의원 중 차기 행정부를 구성할 인물을 찾아낼 것이라는 설명이다.
“현재 미국에서 플로리다주보다 더 관심을 받는 정치 인재 배출 지역도 없다”는 굿맨은 “대통령도, 비서실장도 플로리다를 집으로 부른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굿맨은 플로리다는 미국에서 2번째로 많은 공화당 의회 대표단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내각 인사 구성에서 “무시당하기로 악명 높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제 와일스가 주도권을 잡게 되고, 플로리다주를 대표하는 연방 상원의원인 릭 스콧과 마르코 루비오 등 플로리다의 주요 인사들이 각각 상원의원장 및 고위 내각직을 놓고 경쟁하는 상황에서 이제는 바뀔 것으로 전망했다.
한편 지금의 정권 인수 기간에 우선 두 손 놓고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지켜보고 있는 인물은 조 그루터스다. 그루터스는 2016년 당시 와일즈와 함께 트럼프의 플로리다 선거 캠페인 공동위원장을 맡았으며, 현재 플로리다주 의회의 상원의원이다.
플로리다주 의회의 의원 중 유일하게 트럼프의 올해 대선 출마를 즉각 지지하며, 마라라고의 대선 출마 발표 현장에도 모습을 비친 인물인 그루터스 의원은 자신을 ‘충성스러운 보병’이라고 칭한다.
그루터스 의원은 와일스가 ‘전투를 통해 검증된’ 이들을 워싱턴으로 데려가 행정부를 채우길 기대한다.
“그들은 누가 참된 신도인지 알고 있다…”는 그루터스 의원은 “아마도 대부분의 직책에 누구를 앉힐 것인지 명확한 그림을 그려놨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팜비치 지역은 지난 1980년대 마러라고를 매입하며 처음 이곳에 자리를 잡았을 때만 해도 이렇게 트럼프를 열렬히 환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곳곳에 트럼프를 지지하는 비키니 혹은 모자 상품이 널린,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지지 지역임을 확실히 느낄 수 있다.
다음 주에는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도 이곳 마라라고에서 트럼프 당선인과 머스크 CEO를 만날 예정이다.
그리고 미국의 대형 보수주의 행사인 ‘보수주의정치행동회의(CPAC)’의 연례 투자자 회의도 이곳에서 열릴 예정으로, 그 입장표 가격은 최대 2만5000달러(약 3400만원)에 달한다.
그리고 트럼프가 공식적으로 취임해 백악관 집무실에 입성한다고 하더라도 이곳 플로리다를 찾는 이들의 발걸음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베일리스는 트럼프 당선인이 이번 임기 동안 가능한 한 플로리다에서 오래 지내고 싶어 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6만2500ft²(약 5800m²)에 달하는 이곳 마라라고를 정치판에서 가장 신성한 부동산으로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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