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자의 고민에 공감하는 여성은 많을 것이다. 최근 ‘개념녀’의 자리를 등치한 ‘남미새’라는 말이 확산된 것이 바로 이런 공감대의 결과다. 남미새란 무엇인가? 단순히 자기 남자친구나 남자 연예인을 깊이 사랑한다고 남미새인 건 아니다. 내 경험으로 이해한 남미새의 정의는 일단 남성에게 관대하고 여성에게는 그렇지 못한 사람이다. 남성 지인이 실언하면 웃어넘기거나 “그래도 싫은 티 내니까 사과해 주더라”라며 고마워하지만 여성의 실수는 바로 뒷담화의 연료로 사용하는 식이다. 한 발 더 나아가 오직 남성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찾고 동성을 배척하거나 예민한 집단 취급하기도 한다(대표 ‘남미새’ 발언은 “난 남자들이 더 편하더라”다).
물론 이런 경향을 젊은 여성들이 만들어낸 건 아니다. 미디어와 사회 전반 분위기로서 존재한다. 남성 혼자 사는 집이 지저분하면 “남자들은 원래 저렇다”며 친근해하고 이불을 반듯하게 개어둔 것만으로도 칭찬하는 따스한 시선이 여성에게는 주어지지 않는다. 주방이 깨끗하면 “요리는 잘 안 하나 보다”부터 시작해 집이 흠잡을 데 없을 경우 “저렇게 살림을 잘하는데 남자가 없다”는 것을 최후의 흠으로 거론하는 것이 우리 사회다. 우리만 그런가? 당장 미국 대선을 보자. 과거 형사 판결 이력이 있는 남성 후보에게는 “인간답고 솔직하다”고 하지만 마이크를 쥔 것이 여성일 경우 문득 스친 표정 하나로 “건방져 보인다”며 인성을 평가받는 것이 현실이 전 지구적으로 목격된다. 그렇다면 이 새로울 것 없는 이중 잣대가 왜 최근 ‘남미새’라는 호칭으로 젊은 여성 사이에서 적발되고 있을까?
약간의 희망을 품어 말하자면 ‘구조적 성차별’이 여성 공통의 현실이라는 이해가 확산됐기 때문이라고 본다. 여성으로서 성평등을 추구하는 것을 ‘팀플’ 개념으로 봤을 때 남미새의 존재는 ‘팀킬’이다. 이 공감대가 생기며 나와 친구들은 서로 검열을 요청하기도 한다. “아, 방금 나 남미새 같았지?” “어, 좀.” 그렇게 주고받으며 “아이고” 같은 느낌으로 짧게 찡그리기도, 마주 보며 웃기도 한다. ‘남미새’가 이런 쓰임을 갖게 된 것은 그 속성이 정확히 여성혐오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남미새적 행동양식을 의심 없이 반복하는 이들은 남성이라는 기득권 집단의 기분과 이해관계를 자신과 동일시한다. 남성이 불편해할 것 같은 논의는 자신도 불편하고, 남성들이 선호할 것 같은 여성의 모습을 재현해 그 역할을 수행하는 식이다. 그러니 페미니스트 혹은 스스로 그렇게 정체화하지 않았더라도 ‘팀플’을 잘해보려는 이들에게 이들은 ‘악성 조원’이 될 수밖에!
‘거대한 남미새의 산실’과도 같은 우리 사회에서 페미니즘을 실천하는 주변인의 존재는 중요하다. 사회가 남미새라는 것은 결코 과장도, 새로운 사실도 아니다. 교육 현장의 많은 이가 증언하듯 여성 집단을 대상화하고 낙인찍는 연령대는 점점 낮아지고 있다. 고분고분하지 않거나 머리가 짧은 여자아이에게 ‘페미냐’며 조롱하는 일이 초등학교 교실에서부터 일어난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부모마저 성평등 교육을 ‘남자애들 기 죽인다’ ‘우리 애는 그럴 리 없다’며 꺼리는 게 현실이다. 집단의식 자체가 남미새의 문법을 따르고 있지만, 그래도 내 주변에 이 문법을 단호하게 거부하는 사람이 있다면? 달라진다. 성평등이 상식임을 계속 환기하는 일. 출판사 봄알람의 다음 책도 그 즐거운 실천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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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 출판사 봄알람 대표. 현실을 다룬 텍스트와 논의가 여성의 삶에 즉각적으로 개입하는 힘을 믿는다.
이두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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