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무역주의 근간 '트럼프노믹스'…수출 충격·환율 불안 등 리스크 확대
전문가들 "금융·자산시장 건전성 제고…수출 의존도 낮추고 내수 시장 키워야"
(세종=연합뉴스) 송정은 박재현 기자 =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재집권으로 보편 관세·중국 견제 강화 등 '미국 우선주의' 정책들의 현실화 가능성이 커지면서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도 짙어지고 있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도 적잖은 충격파가 예상되는 만큼, 정부는 연일 분야별 대책 회의를 열면서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우리 기업들의 대(對)미국 투자실적을 토대로 한국과 미국이 '윈-윈(Win-win)'하는 관계가 될 수 있음을 적극 피력하는 한편, 글로벌 교역량 축소에 대비한 경제 구조 개혁을 도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글로벌 교역 위축·환율 변동성 확대 우려…정부, 연일 대책 회의
10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트럼프노믹스'는 미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보호무역주의에 근간을 두고 있다. 모든 수입품에 10∼20%의 보편적 기본관세를 부과하고, 중국 등에 고율의 보복성 관세를 부과해 무역 수지 적자를 개선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수출 의존도가 높고, 대미·대중 수출 비중이 모두 큰 우리나라로서는 거시 경제 전반에 충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교역이 위축되고 수출이 줄어들면서 경제 성장률이 하락하고 내수·고용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연쇄 충격'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주요 정책과 공약이 대부분 달러 강세(가치상승) 요인으로 작용하면서 환율 역시 고공행진하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 6일 한때 1,400원을 넘어섰다가 소폭 내려온 상태다.
정부는 '트럼프 2기' 출범에 따른 리스크를 관리하는 데 촉각을 세우고 있다.
기획재정부 등 관계부처는 미국 대선 결과가 나온 다음 날인 7일 경제관계장관회의 겸 대외경제장관회의를 열어 미 대선 관련 현안을 점검했다.
이튿날에도 관계기관 합동 거시경제금융회의를 개최해 환율 변동 등 리스크 관리를 위한 메시지를 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중동 상황을 중심으로 운영했던 관계기관 24시간 합동점검체계를 금융·외환시장까지 확대 개편하겠다"며 "정부는 각별한 경각심을 갖겠다"고 밝혔다.
통상당국인 산업부는 지난 6일 정인교 통상교섭본부장 주재로 긴급회의를 열었다. 7일에는 안덕근 산업부 장관이 업계와 경제단체 등과 함께 통상전략회의를 개최하기도 했다.
정부는 앞으로 차기 미 행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 매주 관계부처 장관 간담회를 열고 정부 차원의 대응 방향을 조율할 방침이다. 미국 새 정부의 고위급 교류와 관련한 의제도 협의할 계획이다.
◇ "2기 관료와 신속한 네트워크 구축…기술 격차 벌려 '전략적 동반자' 돼야"
전문가들은 트럼프노믹스 충격파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민·관의 선제적이고 실효적인 대응 시스템의 구축이 최우선이라고 강조했다.
김태환 명지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트럼프 1기에 있던 통상 관료들이 대부분 물러난 만큼, 2기 관료들과 신속히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과의 협상 테이블에서 우리 측이 활용할 수 있는 가장 유용한 카드로는 대미 투자 증가를 꼽았다.
지난 수년간 한국 기업들의 미국 투자가 큰 폭으로 증가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이 기업들의 성장이 미국 고용 창출 및 제조업 활성화라는 트럼프 행정부 정책 목표 달성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적극 어필해야 한다는 것이다.
강구상 KIEP 세계지역연구센터 북미유럽팀장은 "바이든 행정부 시기에 반도체나 배터리 분야의 주요 기업들이 생산기지를 미국으로 옮기면서 대규모 대미 투자가 발생했다"며 "미국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에 적지 않은 기여를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늘어난 대미 투자를 협상 카드로 삼아 우호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고, 한국을 상대로 한 무역 장벽이 높은 수준으로 실현되지 않도록 유도해야 한다"며 "이것이 결국 한미 양국이 '윈-윈'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점을 납득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방적인 무역 적자를 용납하지 않는 트럼프 당선인의 성향을 고려해 대미 무역 흑자 규모를 축소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제언도 있었다.
김태황 명지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미국은 우리나라의 대미 상품무역 흑자가 400억달러를 넘었다는 것을 강력한 협상 카드로 쓸 것"이라며 "셰일가스나 미국 석유 등 자원의 수입을 늘려 무역수지 흑자 폭을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한 "대미 무역 흑자 증가의 배경에는 미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이 부품을 한국에서 조달하는 내부거래가 수출로 잡힌 영향도 크다"며 "이는 대미 투자가 증가하면서 나타난 착시에 가깝다는 점을 잘 설명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국제금융시장의 변동성 급증에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는 주문도 있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자국 이기주의가 확산할 경우 글로벌 금리 및 환율 전쟁으로 이어져 실물경제 및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을 확대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금융 당국은 국내 금융·자산 시장의 자체적인 건전성 제고와 해외 투기 자본 유출입 모니터링 강화에 주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기적 시각에서 공급망 다변화와 수출 구조 개선 등 구조적인 변화를 도모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글로벌 관세 전쟁'이 본격화하면 저성장 기조가 고착화하고, 국내총생산(GDP)에서 무역의 비중도 줄어들 것"이라며 "경제 구조의 개선을 통해 무역 의존도를 낮추고 내수시장을 키우기 위한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관세 장벽'을 이길 수 있는 것은 기술뿐이고, 기술 경쟁력이 있는 국가는 미국에서도 파트너십을 구축하려 할 것"이라며 "연구 개발(R&D) 및 적극적인 투자를 통해 기술 격차를 벌리는 것이 우리나라가 미국의 '전략적 동반자'로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traum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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