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대한민국의 로컬 힙 판도

지금 대한민국의 로컬 힙 판도

코스모폴리탄 2024-11-10 00:00:02 신고

1 강릉커피축제, 2 원주만두축제, 3 대전빵축제, 4 구미라면축제, 5 김천김밥축제, 6 군산북페어, 7 대구치맥페스티벌, 8 광주김치축제.

1 강릉커피축제, 2 원주만두축제, 3 대전빵축제, 4 구미라면축제, 5 김천김밥축제, 6 군산북페어, 7 대구치맥페스티벌, 8 광주김치축제.

재재, 가비, 승헌쓰가 결성한 프로젝트 그룹 재쓰비가 오른 데뷔 무대 ‘괴산팔루자(괴산고추축제)’와 ‘추첼라(추풍령가요제)’, 텍스트 힙의 트렌드를 등에 업고 올해 첫 개최된 ‘군산북페어’, 전국의 빵순이와 빵돌이를 집결하게 만든 ‘대전 빵 축제’의 공통분모는? 모두 지방에서 열린 축제라는 점이다. 이 축제들의 이름을 읽다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면, 아마 기분 탓은 아닐 것이다. 아무도 모르게, 아니 적적한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위해 지자체의 복지 차원에서 열리는 줄 알았던 지방의 각종 축제는 별안간 젠지들 사이에서 대도시보다 더 힙하고 재미있는 놀이터로 변모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대전 빵 축제에 다녀왔다는 후배도 한 수 거들었다. “빵 축제에 가볼 겸 대전을 다녀왔는데, 축제는 구경도 못 했어요. 행사가 시작되기 3시간 전부터 사람들이 오픈런을 하는 바람에 행사가 열리는 대동천 일원이 웨이팅 줄로 가득 찼거든요. 워낙 대전을 좋아해서 종종 다녀오곤 하는데, 그렇게 사람이 많았던 건 처음이었어요.” 노잼 도시에 인산인해라니, 사뭇 어울리지 않는 단어의 조합이다. 하지만 엑스(구 트위터)에 올라온 “지자체가 주최하는 무근본 지역 축제가 점점 흥미롭게 느껴짐. 이런 데 찾아다니는 거 취미 붙여서 반려 인간이랑 주말마다 재미를 추구하면 그것 또한 즐거운 삶일 것만 같음”이라는 글은 4000건이 넘는 리트윗과 1000개 이상의 인용 포스팅이 파생됐는데, 각자 다녀온 지방 축제의 사진과 후기를 나누며 자연스럽게 바이럴을 타기도 했다.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구절은 ‘무근본 지역 축제’. 무근본, 그러니까 지방 축제의 어딘가 촌스럽고 2% 부족해 보이는 미감과 ‘뇌절’에 가까운 축제의 콘셉트(가령 서울에서 유일하게 선사시대를 배경으로 열리는 강동선사문화축제에선 관람객이 원시인 분장을 하고 간석기 만들기, 활쏘기, 움집 짓기, 꼬치에 끼운 고기 구워 먹기 등 신석기인들의 생활을 경험한다)는 오히려 젠지에게 흥미를 유발하는 의외의 셀링 포인트가 된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유의미한 데이터도 있다. 2023년 한국관광공사는 국내 관광의 트렌드를 로컬 관광이라 명명했다. 수도권이나 관광도시로 이미 잘 알려진 도시에 대한 관심은 줄고, 각자의 취향과 호기심을 반영한 새로운 여행지에 대한 관심이 증가했는데, 그것이 로컬 관광의 수요를 촉진했다고 설명한다. 다시 말해 독특하고 희소한 경험을 추구하는 젠지에게 낯설고 새로운, 거기에 조금은 엉성할지 몰라도 특유의 감성으로 가득한 로컬은 그야말로 별천지였을 것. 여행 전문 플랫폼 트리플이 발표한 데이터에 따르면 제주, 강원을 제외한 호남·충청 지역의 숙소 예약이 작년 대비 약 408% 증가했다. 이것 역시 무작정 대세를 따르기보단 자신만의 기준을 가지고 여행지를 선택하는 젠지들의 요즘 여행법을 보여주는 지표다.


우리가 사랑한 로컬 힙, 로컬 축제
지난 6월 역대 최다 관람객을 기록한 서울국제도서전의 열풍을 이어받아 8월엔 군산에서 첫 도서전이 열렸다. 군산북페어를 공동 주최·주관한 소통협력센터 군산은 이 북페어를 국내외 출판사와 서점, 개인 제작자 등 책을 발간하거나 유통하는 100개 팀이 도서를 중심으로 판매 부스를 열고, 독자들과 교류하는 행사라 소개했다. 이와 함께 2030세대의 책 문화를 이끌고 있는 1990년대생 작가 박참새, 서한나, 조예은이 이 시대 책의 의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토크 이벤트부터 ‘문학작품에서 찾은 군산’을 주제로 한 김현·유현아·이소연·전욱진 작가의 낭독회, 진(Zine) 제작 바인딩 워크숍 등 지역과 출판을 연계한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행사 첫날 개막 30분 전부터 예상 인원을 훌쩍 뛰어넘는 관람객이 방문한 군산북페어는 행사가 열린 이틀 동안 약 6600명이 몰렸고 책과 이벤트 굿즈 역시 조기 소진되는 사태까지 빚으며 성공적인 신고식을 치렀다. 군산북페어가 열린 군산회관도 유의미한 지역성을 지닌다. 2013년 폐관했던 군산시민문화회관을 군산회관이라는 이름으로 재단장해 군산북페어를 개최한 것인데, 과거 이곳은 군산시 청소년들의 발표회나 시민 동호회의 음악 공연 등 군산시의 크고 작은 행사가 열렸던 공간이기도 했다. 군산 시민을 위해 열어둔 소소한 공간이 전국의 관광객까지 유입하게 하는 장으로 탈바꿈하는 순간이었다.

한편 애초에 도시 곳곳에 로컬 관광지 조성을 목표로 기획한 로컬 축제도 있다. 올해로 2회를 맞이한 부산골목페스티벌이 그것. “부산골목페스티벌은 도시의 크고 화려한 관광 명소보다 지역 고유의 생활과 문화가 담긴 골목길을 무대로 기획된 페스티벌입니다. 골목은 각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담고 있는 공간으로, 그 안엔 지역 사람들의 이야기가 깃들어 있어요. 이 축제는 그런 골목의 특성을 살려 부산의 다양한 지역이 가진 매력을 부각시키고, 방문객들에게 골목을 하나의 문화 공간으로 인식하게 만들고자 했습니다. 지역 문화를 체험하고 즐길 수 있는 독특한 장소로 말이죠.” 부산관광공사 박혜진 매니저의 설명이다. 부산 진구의 전포공구길, 영도 봉산마을마실길, 수영 망미골목, 다대포 바다누리길에서 열린 부산골목페스티벌은 각 지역과 골목의 특성을 반영한 체험 프로그램으로 구성했다. 공구 상점들이 밀집한 독특한 골목인 전포공구길에선 방문객이 직접 공구를 사용해보는 ‘드릴 마스터 챌린지’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거나, 영도 봉산마을마실길에선 지역 할머니들이 직접 분식점을 운영해 지역 상권과의 상생까지 고려했다. 젠지를 겨냥한 회심의 포인트도 있다. “2030세대를 위해 참여형 콘텐츠를 다채롭게 준비했어요. 단순히 관람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관객들이 직접 참여하고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죠. 그들의 구미를 가장 강력하게 당기는 것은 평소 일상에서 접하기 어려운 것을 직접 경험해볼 수 있느냐에 있기 때문입니다. 영도에서는 부산항 야경을 배경으로 토크쇼를 진행해 관객들이 직접 토크에 참여할 수 있게 했고, 다대포에선 야외 바다 포차를 운영했는데 그 안에 무대를 설치해 직접 노래를 부르며 즐길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했죠. 망미에서는 가죽 공예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했고요. 이 외에도 골목에서 펼쳐진 DJ 공연과 더불어 공연을 보며 생맥주를 즐길 수 있는 자유로운 분위기를 조성해 젊은 세대의 관람객에게 긍정적인 반응을 얻을 수 있었어요. 자발적인 SNS 업로드와 바이럴을 유도하며 자연스럽게 축제 홍보 효과도 극대화됐죠. 앞으로 부산골목페스티벌은 지역 주민과 관람객이 주도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축제로 자리 잡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어요.”

로컬에서 먹고 자고 즐긴다
품절 대란을 일으키며 한동안 F&B업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맥도날드의 ‘진도 대파 크림 크로켓 버거’를 기억하는지? 지난해 ‘한국의 맛’ 프로젝트 일환으로 한정 판매됐던 이 버거는 소비자의 뜨거운 반응에 재출시하며 폭발적인 판매량을 기록한 효자 상품으로 등극했다. 올해는 지역 경제 활성화와 지자체 홍보에 기여한 점을 인정받아 국제 마케팅 시상식인 ‘아시아·태평양 에피 어워즈에서 ‘긍정적인 변화를 통한 사회적 가치 실현: 브랜드 및 서비스’ 분야의 ‘브론즈 에피’를 수상했는데, 여기에도 로컬 힙이 스며들어 있다. 사과나 한우 등과 같은 농수산물 정도로 정의됐던 지역 특산물을 이 세대는 영민하게 브랜딩해 지역의 핫 아이템으로 만드는가 하면, 맥도날드나 스타벅스, 식품 프랜차이즈 브랜드나 편의점과 결합해 각종 PB 상품으로 재탄생시킨다. 새 옷을 입고 완벽하게 환골탈태한 지역 특산물은 지역사회에 경제 활성화라는 이점을 주는 동시에 소비하는 젠지 세대에겐 로컬을 소비하는 놀잇감이 된 셈이다. 시즌 한정 제품을 보면 구매 욕구가 생기는 것처럼 그 지역에 가야만 먹을 수 있는 로컬 음식은 ‘인스타그래머블’하며 ‘있어빌리티’를 충족하는, 힙 그 자체니까. 그것이 지금 로컬 힙 문화에 본격적으로 싹을 틔우게 해준 시발점이 아닐까 예측해본다. 한 번도 시도해본 적 없는 것에 도전한다는 건 실패라는 리스크를 품고 있는 일. 그러니 실패해도 부담 없는 것부터 도전하기 마련인데 1만원 남짓한 금액 안에서 도전할 수 있는 음식은 젠지에겐 꽤 쓸모 있는 시험대였을 거다. 음식으로 시작한 젠지의 로컬 탐험은 조금씩 기지개를 켜며 그 영역을 확장해갔다. 그 대표적인 예가 부산의 발란사, 대구의 이플릭, 분당의 신분당씨티클럽, 제주의 포터블 등 로컬을 기반으로 한 패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다. 로컬 태생의 브랜드는 지역의 색과 문화를 감각적으로 표현하는 하나의 수단이 됐다. 물론 스타일에 죽고 못 사는 젠지의 OOTD도 책임지고 말이다.

특별한 경험을 구매하고 싶어 하는 젠지의 심리는 식탁과 옷장을 넘어 이제 일상 깊숙이 파고들기 시작한다. 언젠가부터 호캉스가 아닌 촌캉스가 인기를 끌고, 귀농·귀촌하는 청년 농부만큼 식당·카페·바 등의 공간에서 로컬 창업에 도전하는 청년 사업가, 즉 로컬 크리에이터가 늘어나는 것을 떠올려보라. 로컬 힙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흐름을 그리며 확장한다. 이 움직임을 놓칠세라 지자체도 각종 복지 차원의 정책을 통해 젠지 세대의 로컬 유입을 촉진한다. 숙박비와 여행 체험비를 지원하는 프로그램부터 영농 체험과 일자리 탐색 등을 통해 귀농·귀촌을 돕는 한 달 살기 프로그램 등 로컬의 매력을 알리고, 지역 경제 활성화까지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지방 도시의 노력은 시의적절하게 젠지들에게 먹히며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가고 있다. 여기에 대기업이 복지 차원으로 진행하는 워케이션 프로그램까지 가세해 지방 도시에 오랜 시간 머무르는 인구를 끊임없이 유인하고 있는 것. 이것은 곧 지방의 고령화, 나아가 지방 소멸을 막는 든든한 대안이 될 것이다. 앞서 언급한 각종 로컬 축제가 통통 튀는 콘셉트(비록 그게 누군가에겐 무리수로 보일지라도!)와 다채로운 콘텐츠로 똘똘 뭉쳐 젠지의 발걸음을 갈망하는 것도 결국 이 큰 그림을 그리고 있어서가 아닐까?

그들의 목표치가 어딜 향하고 있건 지금 로컬 힙 문화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취향도, 가치관도 뚜렷한 존재가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법. 본래의 역사와 문화를 바탕 삼아 대한민국의 로컬 힙 문화는 지금도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COSMO’S PICK I 로컬 축제 ‘찍먹’해보고 싶다면?


구미라면축제

 @gumi_ramyeon

@gumi_ramyeon

국내 유일 도심 속 라면 축제, 구미라면축제에선 농심의 구미 라면 공장에서 생산한 갓 튀긴 라면을 맛볼 수 있다는 사실. 원하는 대로 재료를 조합해 나만의 라면을 만들 수 있는 ‘라면 공작소’, 세상에서 가장 긴 라면 레스토랑까지, 그야말로 라면 천국을 경험할 수 있을 것.
11월 1일부터 3일까지, 구미역 일원.

김천김밥축제

@gc_gimbapcity

@gc_gimbapcity

이런 기발한 생각은 누가 하는 걸까? 김천 하면 ‘김밥천국’을 떠올리는, 조금은 아쉬운 김천시의 인지도에 역으로 아이디어를 얻어 김밥의 도시로 거듭나기로 한 것. 김천 시내 유명 김밥집과 호두, 흑돼지 등 김천의 특산품을 넣은 김밥을 맛볼 수 있는 푸드존부터 김밥 쿠킹 대회 등 다양한 김밥 프로그램이 열릴 예정. 축하 공연 라인업엔 자두가 이름을 올렸다. 추억의 그 노래, ‘김밥’ 떼창은 못 참지!
10월 26일부터 27일까지, 김천 사명대사공원 및 친환경생태공원 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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