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을 통한 교육을 중시하는 저자 강치원 전 강원대 교수는 이중의 의미로 '하버드의 숨겨진 비밀'이라는 제목을 붙인 듯하다. 첫째, 하버드 대학과 같은 명문대에 진학하는 데 논쟁과 토론을 통한 교육이 필수적이라는 것, 둘째, 말, 언어의 힘을 습득한 아이는 하버드를 넘어 세계를 무대로 활약할 열쇠를 쥐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저자는 고려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에서 박사학위 취득 후, 강원대학교에서 서양사, 정치사상사 등을 가르쳤으며, 하이델베르크대학에서 객원교수를 지냈다. 독일에서 생활하는 동안, 한국과 독일의 교육방식을 비교하게 되면서, 한국의 객관식, 주입식 교육에 대해 반성하게 되었다. 수십 년 전 수능과 상업적 논술 시장에 매달리는 고교 학생들을 위해 저자는 '논술토론광장'을 열었고, 이것을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참여하는 '원탁토론 광장'으로 확장함으로써, 한국 토론 교육의 한 획을 긋게 되었다. 이 책은 그동안의 경험이 이론과 접합되어 나온 한 결과물이다.
저자는 1980년대 하버드대 심리학과 하워드 가드너 교수의 주장에 따라 '다중지능이론'을 원용한다. 다중지능이론이란 지능(IQ) 외에도 인간은 여러 가지 지능을 같이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가드너 교수는 9가지로 이를 구분했으나, 저자는 이를 4가지로 구분한다. 지성지능(IQ: 언어, 논리수학), 감성지능(EQ: 음악, 공간·미술, 신체 운동), 인성지능(인간친화, 자연 친화, 자기 성찰), 영성지능(종교적 실존) 등이다.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이 네 가지 지능을 조화롭게 발달시켜 다양한 능력을 활용해야 하는데, 여기에서 저자는 토론만큼 적합한 교육방식이 없다고 한다. 토론에는 논쟁(디베이트), 토의(디스커션: 합의점을 이끌어내는 과정), 토론형 문답 등 세 가지 형태가 있다. 논쟁(디베이트)은 다시 양자간 토론과 다자간 토론 등, 두 가지로 구분된다. 토의는 토의 – 논쟁 - 토의 과정을 거쳐 궁극적 합의를 도출해 내려는 과정이다. 문답형 토론은 질의와 대답으로 이루어진다.
토론은 학교에서만 아니라, 가정과 일상에서도 이루어지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토론을 통해 마음을 나누고, 서로 주파수를 맞추면, 일이 더 잘 풀려 간다. 주파수란 동조 공명 진동을 일으키는 매개이다. 동조는 에너지를 증폭시키고, 공명은 공감을 일으킨다. 이 모든 것이 언어와 토론을 통해 일어난다.
저자는 원탁토론을 중시하고, 그 확장의 한 과정으로 UGP 포럼을 소개한다. 저자에 따르면, 원탁토론은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같음을 지향하는 과정이라 정의한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려면, '인간이 누구나 존엄하고 평등하다'라는 생각이 바탕에 깔려있어야 한다.
UGP 방식의 토론은 원탁토론의 연장선에 놓여 있는 한 과정이다. UGP 포럼은 세 가지 절차로 구성된다. 'U'란 'U폼(형태) 강의 포럼, 'G'란 '그룹 디스커션 포럼(소그룹 토의 포럼), 'P'란 '패널 디스커션 포럼 (대표단 토의 포럼)'을 뜻한다.
'U폼 강의 포럼(U)'에서는, 연사가 있는 연단을 바라보고 청중이 열을 지어 앉는 상태의 일방적 강의로 이루어지는 프론탈 폼(교탁식)과 달리, 서로 둘러앉은 상태에서 참석자 간의 질의응답이 가능하다. 강의가 끝난 후, U폼 강의 포럼에 참가했던 이들이 소집단으로 나뉘어 각기 설정된 주제에 따라 토론하는데, 이것이 '그룹 디스커션 포럼(G)'이다. 그런 다음 각 소집단에서 대표가 1명씩 앞으로 나와 참석자들이 보는 가운데 '패널 디스커션 포럼(P)'에 참가한다. 참여자들이 순차적으로 대표단이 될 수 있도록 그룹 디스커션 포럼과 패널 디스커션 포럼을 반복함으로써, 참석자 전원이 대표단의 일원으로 연수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도 있다.
이런 방법으로 UGP포럼은 크게 3가지 목적을 달성한다. 첫째, 교육적 차원에서 지성, 감성, 인성, 영성 등 4가지 지능을 개발할 수 있다. 둘째, 정치적 차원에서 소통 절차를 통하여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는 최고의 수단이자 방법이다. 셋째, 역사적 차원에서 개인과 조직과 사회의 발전과 진보를 위한 실천적 도구이다.
UGP 포럼은 한국 교육 제도를 전환하고, 사회적 갈등을 조정하며, 정치적 공존을 위한 공론화의 과정을 여는 단초가 될 수 있다. 토론과 소통을 통해, 가능한 한, 이 같은 목적에 부합하는 인간을 양성함으로써 궁극으로 나라의 미래를 위한 초석을 다져나갈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지론이다.
저자는 대화와 토론을 구분한다. 둘 다 쌍방향 소통방식이지만, 대화는 더 편한 분위기에서 이루어지는 반면, 토론은 다소간 공식적 절차에 따라 터놓고 이루어진다. 토론은 일정한 순서와 정해진 발언 시간에 이루어지는데, 그리스의 '심포지엄'도 그 한 형태다. 심포지엄이란 원래 '잔치', '향연'이란 뜻이며, 잔치를 하다가 말이 오가고 논쟁이 벌어지게 된 상황을 포괄한다. 오늘날은 전문가 학술 연구발표회를 심포지엄이라 부른다.
한편, 포럼 형식의 토론은 라틴어의 '광장'이라는 뜻이고, 그리스어로는 '아고라'라고 한다. '로마의 포럼'은 사람들이 모여 거래하고 토론하는 곳이었으나, '토론'이라는 의미도 함께 갖는다. 그런데 이 저서에서 저자가 원활한 토론을 위해 강조하고 중시하는 것은 사회자의 역할이다. 순서와 시간의 관리가 모두 사회자의 몫이라 보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의 '세다(교차조사토론협회, Ceda: Cross Examination Debate Association)' 토론 방식은 절차와 규칙이 까다롭다. 발언은 정해진 순서와 시간을 준수해야 한다. 전체 시간 관리는 사회자가 하며, 종료시간 3-5분 전에 종료 예정 시간을 미리 알려주는 역할도 사회자의 몫이다.
저자에 따르면, 사회자 없이 진행되는 토론은 선장 없는 배와 같아 표류하기 쉽다. 저자는 사회자 없이 진행한 토론이 성공하지 못한 예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검찰과의 대화를 거론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토론의 달인으로 유명한데, 이 경우 사회자를 두지 않음으로써, 검찰과의 대화는 원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고 검찰개혁의 기회를 놓쳤다고 저자는 보았다.
또 저자는 '이름 기억하기' 절차와 악수를 중시한다. 토론 참여자가 서로의 이름을 기억하기 위한 것이다. 이름을 기억하고 불러주는 것이 상대방에 대한 관심을 표현하는 첫걸음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름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친근감을 더하고, 상호간에 특별하고 소중한 사람이라는 믿음을 주게 된다는 것이다. 또 악수는 서로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확인할 수 있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고 본다.
저자가 피력하고 있듯이, 대화와 토론은 서로 다른 이해를 조율하고 포용하는 사회를 구현하는 한 방편이 될 수 있다. 정치, 경제적 이해관계, 이념의 차이에 기인한 사회적 갈등을 토론만으로 다 해소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갈등의 정도를 완화할 수는 있겠다. 특히 논쟁형 토론은 의견을 달리하는 상대를 설득하는 것이라기보다, 제3자인 중도 부동층(浮動層)의 지지와 동의를 이끌어내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하겠다. 그런 점에서 현재 우리 사회가 당면한 질곡에 즈음하여 대화와 토론의 역할을 부각시킨 이 책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여전히 봉건적 권위주의 잔재가 척결되지 않은 한국 사회에서 토론을 통한 교육은 능동적, 창조적 인성이 상호 소통과 배려의 기초 위에서 이루어지도록 하는 데 주효한 처방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토론을 통해 교육받은 이들 가운데서는, 훗날에, "돌을 던져도 맞고 가겠다"고 하는 독선의 대통령은 나오지 않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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