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달리다 늙으면 굶어죽는 경주퇴역마…“경찰기마대도 학대 당해”[댕냥구조대]

평생 달리다 늙으면 굶어죽는 경주퇴역마…“경찰기마대도 학대 당해”[댕냥구조대]

이데일리 2024-11-09 09:00:01 신고

[이데일리 박지애 기자] 경마장에서 평생을 달리던 말들은 늙고 병들면 어디를 가게 될까요?

갈비뼈가 드러난 채 사체로 발견 된 방치된 말의 모습. (사진=비글구조네트워크)


◇갈비뼈 드러나고 오물 뒤집어 쓴 말 사체들…옆에는 전기쇠톱

지난달 동물단체들은 충남 공주에 위치한 무허가 불법 축사에 방치된 말 23마리를 발견하고, 또 그 중 8마리가 방치된 채사망하게 만든 사건을 보고 해당 농장주를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고발했습니다.

이번에 말 8마리가 사망한 이 충남 공주 불법 축사에는 말 사체가 오물에 뒤덮인 채 발견됐으며, 근처에는 죽은 말 뼈와 꼬리, 전기쇠톱 등이 산재하는 등 참혹한 모습이었습니다. 살아남은 15마리 말 역시 갈비뼈가 드러날 정도로 마르고 몸 여기저기 부상을 입는 등 적절한 관리를 받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 말농장의 마주는 지난 2022년에도 충남 부여에서도 폐축사에 말 4마리를 방치해 그 중 2마리를 폐사시키기도 했습니다. 또 지난해에는 말 불법 도살로 벌금형을 선고받는 등 오랜 기간 말을 학대해왔습니다.

그럼에도 왜 또 이 마주는 23마리의 말들을 기르고 있던 걸까요?

갈비뼈가 드러난 상태로 방치되다 도축장에서 도살된 말의 모습(사진=비글구조네트워크)


◇경찰기마대도 은퇴하면 학대 농장으로…갈 곳 없는 퇴역마들

이처럼 부적절한 시설에서 말을 사육하고 학대하는 사건이 반복해 적발됐음에도 우리나라에는 퇴역마를 ‘처리(?)’할 기관이나 시스템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학대범으로 처벌을 받은 이력이 있음에도 해당 마주에게 계속 퇴역마 처리 의뢰가 이어지고, 심지어 서울경찰기마대 퇴역마까지 이곳에 매각되는 등 쓰임을 다한 말들이 갈 곳은 바로 학대와 방치가 예정된 이 농장밖에 없었습니다.

동물단체들은 관리 체계화를 위한 가장 기본적인 단계인 ‘말 이력제’조차 아직 의무화하지 못하고 있어 조속한 법제화가 요구된다고 주정하고 있습니다.

갈비뼈가 드러난 상태로 방치된 말의 모습(사진=비글구조네트워크)


국내에는 매년 2000여 마리 말이 경주용으로 태어나고, 서울과 부산 경마공원에서는 한 해 1400여 마리 경주마가 은퇴합니다.

이 중 40-50%는 도축당하고, 살아남아 승용, 번식용, 말이용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용당하는 말은 어디서 어떻게 지내는지 정확한 실태도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부실한 법제 아래 경주 퇴역마 뿐 아니라 국내에 있는 모든 말들이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실정입니다.

◇평생 착취당하다 고통 속 죽은 ‘까미 사건’에도 변화 無

경주마에 대한 학대 논란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지난 2021년 한국방송공사(KBS) 드라마 ‘태종 이방원’ 촬영 중 와이어 줄에 묶여 제작진에 의해 쓰러짐 당하고 있는 모습의 퇴역마 까미의 모습(사진=동물권행동 카라)


지난 2021년 11월 7일인 3년 전 이맘때쯤 퇴역 경주마 까미는 한국방송공사(KBS) 드라마 ‘태종 이방원’ 촬영 중 와이어 줄에 묶여 제작진에 의해 쓰러짐 당하고 끝내 죽음에 이르렀습니다. 동물자유연대는 “경주마로 이용되고 은퇴 후에도 영상 촬영의 소모품으로 이용되며 잔혹한 죽음을 맞았고, 이에 시민사회단체들은 퇴역 경주마 복지를 위한 법과 제도가 마련되길 요구했지만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큰 변화는 없다”고 토로했습니다.

이에 지난 7일 16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말 복지 수립 범국민대책위원회’(이하 범대위)는 퇴역 경주마 까미(마리아주) 사망 3주기를 맞아 까미를 추모하며 최근 발생한 공주시 퇴역마 학대 방치 사건에 대해 마사회의 책임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습니다.

경마장, 승마장 등에서 이용되다 다치고 나이 들어 갈 곳 없는 말들을 굶기며 방치하는 곳들은 전국에 수 곳이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이에 대한 통계 조차 전무한 실정입니다.

동물자유연대는 “지난 한 해 평균 1300여 마리 경주마가 은퇴하는 한편으로 정책적 지원 속에 경주용으로 끊임없이 말들이 태어나고 있다”며 “경주마의 과잉생산과 육성 정책으로는 지금과 같은 생명 폐기 처분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고 제2, 제3의 까미는 계속해서 나올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경주마로 천문학적 이득 최소한의 책무는 다해야”
(사진=동물자유연대)


동물단체들의 연대인 범대위는 마사회와 경주마를 이용해 천문학적인 액수의 수입을 벌어들이는 만큼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유지우 동물권행동 카라 활동가는 “마사회에서 연간 마권 판매로 벌어들이는 천문학적 액수의 수입에 비해 말들의 보호나 복지 비용에는 터무니 없는 예산을 사용하고 있다”며 “농림축산식품부 2024년 ‘말산업육성지원’에 경주퇴역마 활용지원 사업은 고작 4억3000만원으로, 전체 사업 예산의 2.4%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경마 경주 실황을 수출해 K-콘텐츠로서 한국 경마를 알리고 한국 말산업 확장을 선도하겠다는 포부를 대대적으로 보도하는 마사회는 국내에서 정말 처참하게 죽임당하는 말들을 외면하면서 결코 신뢰할 수 있는 기업으로 성장하지 못할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김란영 제주비건 대표는 “인간은 평생 벌 수도 없는 돈을 벌어들였던 퇴역 경주마들은 경마가 끝난 지 72시간도 안돼 도축되어 말고기 시장에서 450g당 2만 원에 팔린다”며 “자그마치 45% 경주마들이 죽음으로 퇴역하고 있고, 나머지 말들은 어디론가 흘러가 까미처럼 방송용 소품이 되는 등 비참한 삶을 마감한다”며 퇴역 경주마가 처한 실태를 적나라하게 알렸다.

◇마사회와 면담한 동물단체들…“이번엔 변화되길”

올해부터 추진되는 마사회 ‘생애주기 말 복지 지원 사업’을 언급한 비글구조네트워크 김세현 대표는 경주마에서 승용마로 전환된 “‘천지의 빛’ 역시 골절 부상으로 재활지원 프로그램을 지원받았으나, 공주시 말 방치 학대 현장에서 발견되었다”며 “동물 학대 로부터 살아남은 말들을 보호하는 현장에서 마사회와 농림부의 책임을 통감한다”고 발언했습니다.

장희지 동물해방물결 활동가도 “인간의 이익을 위해 이용당한 퇴역 경주마들에게 주어지는 삶은 착취의 반복이자 죽음이라는 현실에 분노하고 슬퍼하지 않을 수 없다”며 “말뿐이고 보여주기식 정책은 그만 내세우고, 착취 구조 속에서 고통받는 말들을 위한 최소한의 권리 보장과 복지 체계를 시급히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마지막으로 발언한 정진아 동물자유연대 사회변화팀장은 “달리는 말의 다리에 로프를 걸고 잡아당겨 강제로 넘어뜨린다는 야만적인 방식의 촬영이 실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많은 일이 있었지만, 그 뒤에도 세상은 놀라울 정도로 변함이 없다”며 “사각지대에 방치되었던 퇴역마의 현실을 세상 밖으로 끄집어 내주어 대명사가 된 마리아주에게 이번 공주시 폐마 목장 사건이 참회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지”라며 애도와 함께 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기자회견 후 범대위는 한국마사회 말 복지센터와 면담을 진행해 공주시 현장에 남아 있는 피학대 동물인 말들에 대한 보호·관리 방안 마련을 요구했고 사태 해결을 적극 모색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수 많은 생명들이 착취 당한 후 고통 속 죽어가고 있는 만큼 보다 실효성 높은 대책이 조속히 나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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