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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가족 산 채로 묻혀… 6살 아이도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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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11월9일 오후 1시쯤 피해자의 승용차를 자신들의 렌터카로 가로막고 납치했다. 피해자들은 친척 결혼식과 고희연에 가던 일가족으로 차량에는 류모씨(54)와 그의 외손녀 최모양(6), 어머니 김모씨(81), 이모 김모씨(74)가 타 있었다. 차량에 있던 인원 전부를 납치한 범인들은 현금 20만원 등을 빼앗은 후 피해자들을 폭행했다. 이후 피해자들의 손과 발을 구속하고 입에 재갈을 물린 뒤 트렁크에 가뒀다. 이 중 어린 아이는 범인들과 함께 있던 심혜숙이 안은 채 피해자 차량 뒷 자석에 앉아 인근 야산으로 이동했다.
범인들은 피해자 가족을 생매장할 계획을 갖고 전날 민박을 했던 곳에서 두 자루의 삽을 빌렸다. 이들은 싸리봉 인근 산기슭에서 피해자들을 폭행한 후 차례로 낭떠러지로 밀어 떨어뜨렸다. 이 과정에서 오태환은 살려달라고 울부짖던 6세 아이의 애원마저 무시하고 발가벗긴 후 그대로 생매장해 숨지게 했다. 범인 3명은 모두 대마초를 피운 환각 상태에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전해졌다.
범행 후 일당 4명은 피해자의 차를 포함한 차량 2대에 나눠 탄 채로 경기 안양시로 도주해 하루를 머물렀다. 이들은 사창가에 들르거나 나이트 클럽에서 술을 마시는 등 태연히 지내다 지리산으로 도피하기로 결정한 후 대전으로 도주하기에 이르렀다. 범인들은 지리산 도주 계획을 세울 때 심혜숙의 친구 박모씨(21)에게도 함께 놀러 갈 것을 제안했지만 이를 이상하게 여긴 박씨가 경찰에 신고함으로써 사건이 경찰에 접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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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총상 입고도 도망… 주범, 아파트 옥상서 사망한 채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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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씨의 신고를 접수 받은 대전동부경찰서는 곧바로 수사에 돌입했다. 경찰은 사건 하루 뒤인 10일 낮 범인 소재 파악에 성공해 일당이 타고 있던 승용차를 발견했다. 이후 공포탄과 실탄을 사용해 오태환, 심혜숙을 체포했다.
주범 이성준과 윤용필은 경찰이 발사한 실탄에 맞아 부상을 입은 채로 차량을 몰다 5중 추돌사고를 내기도 했다. 이들은 경찰의 총에 차량 타이어가 펑크나자 차를 버리고 도주했다. 가벼운 총상을 입은 채 도주한 윤용필은 다음날인 11일 서울 영등포구 친구 집에서 주민의 제보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체포됐다. 주범 이성준은 가슴에 총을 맞아 중상을 입은 채로 도주하다가 12일 오전 대전 동구 가오동 한 아파트 옥상에서 과다출혈로 사망한 채 발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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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행 잔혹함에 전국민 충격… 범인 2명 사형 집행·1명 출소 후 암으로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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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부검을 한 집도의에 따르면 피해자 전원 질식사한 것으로 드러났다. 호흡기에 흙 등이 가득 차 있던 상태였다. 또 어린 아이가 살려 달라며 애원했지만 그대로 돌덩이를 굴리고 흙을 덮어 생매장했다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드러나자 우리 사회는 엄청난 충격에 빠졌다.
재판은 당시 노태우 정부가 선포한 범죄와의 전쟁 여파로 신속하게 진행됐다. 1990년 12월4일 검거 과정에서 사망한 이성준을 제외한 범인 3명 모두에게 사형이 구형됐고 1991년 11월8일 대법원에서 윤용필, 오태환에 대한 사형이 확정됐다. 사형 확정 약 1년 뒤인 1992년 12월29일 윤용필의 사형이 집행됐고 1994년 10월6일 오태환이 처형됐다. 이들은 모두 장기 기증을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범 이성준의 애인이자 공범이었던 심혜숙은 살인과 생매장에 직접 가담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항소심에서 징역 10년으로 감형됐다. 이후 청주여자교도소에서 8년 복역 후 1998년 가석방 됐다. 하지만 출소 5년만인 2003년 7월 35세의 나이에 위암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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