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날리면' 사태는 윤석열 정부의 성격을 규정하는 핵심 사건이자, 대한민국 언론 자유의 핵심 문제라고 생각한다. 전 국민이 보고 들은 영상과 육성이 존재하는데도 뻔뻔하게 '미국 국회가 아니라 한국 국회'라고, '바이든이 아니라 날리면'이라고 윽박지르며 소송전까지 불사한다. 지록위마(指鹿爲馬)를 뻔뻔하게 구사한다.
대통령 부부가 김영선 공천을 받기 위해 발벗고 뛰었다는 의혹은 김영선, 이준석, 명태균, 강혜경 등등의 녹취와 증언을 짜맞추면 합리적인 스토리로 구성된다. 구체적인데다, 아귀가 딱딱 맞는다. 하지만 대통령은 수많은 증거와 정황, 증언들을 두고 특유의 '두루뭉술 화법'과 '자기 모순' 화법으로 넘어간다. 기자회견을 요약하면 기억은 잘 안나지만 실제 '김영선이 해 줘라'는 말을 했더라도 '의견 제시' 수준이라는 거다.
검사 앞에 선 피의자가 일부러 바보 행세를 하면서 혐의를 부인하는 전형적인 수법이란 지적이 나온다. 검사 출신인 김용남 전 의원은 이를 '더듬수'라 표현했다. 쉽게 말해 '나는 바빠서 그런 일이 있는지 기억을 못하고, 설사 그런 말을 한 사실이 있더라도 그게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며, 의미를 모르기 때문에 설령 그런 행위를 했더라도 공모에 가담했다는 나의 혐의는 성립하지 않아요'라는 장황한 피의자식 화법이란 것이다.
2022년 5월 9일 윤석열 대통령은 명태균 씨에게 "공관위에서 나한테 들고 왔길래 내가 김영선이 경선 때부터 열심히 뛰었으니까 그거는 김영선이를 좀 해줘라 그랬는데 말이 많네 당에서"라고 말했다. 이 발언 자체는 부인하지 않고 있으니 사실로 간주할 수 있겠다. 검사들이 더 주목해야 하는 건 대통령의 발언보다 명태균 씨의 답변이다. "진짜 평생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자, 명태균은 어떤 은혜를 입었을까?
수사의 프로토콜은 '이익을 본 자'를 족치는 데서 시작한다. 그가 어떤 이익(김영선 공천)을 봤는지 확정해야, 그 이익에 대한 대가(무상 여론조사)를 입증할 수 있는 것이다. '더듬수'를 구사하는 용의자를 잡는 방법이다.
앞에서 이 얘기 하고, 뒤에서 저 얘기하는 대통령의 당당한 몰염치에 대해서는 수많은 언론이 이미 사설과 칼럼을 통해 지적하고 있으니, 이 글에서는 몇 가지 간과할 만한 사실들을 추가로 짚어보려 한다.
첫째, '바이든 날리면' 사건을 떠올린 이유는 이렇다. 윤 대통령은 미국의 특별검사 제도를 언급하며 묘하게도 미국 의회를 "미국 국회"라고 표현한다. 대통령은 "과거에 이란콘트라 케이스의 경우에 미국 국회에서 특별검사법이라고 하는 걸 (결의했다)", "(미국) 국회가 특별검사를 (통해) 수사해야 하지 않느냐는 결의를 하게 되면..."이라고 말한다.
"국회에서 이 새끼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은 쪽팔려서 어떡하나"
시간을 거슬 2022년 9월 있었던 '바이든-날리면' 사태 당시 김은혜 홍보수석은 "지금 다시 한번 들어봐 주십시오. '국회에서 승인 안 해 주고 '날리면'이라고 되어 있다"며 "여기에서 미국 (국회) 얘기가 나올리가 없고, '바이든'이라는 말을 할 이유는 더더욱 없다"고 주장했다. 대통령은 지금은 폐기한 '도어스테핑'에서 MBC 보도를 "사실과 다른 보도로 동맹을 훼손"했다고 규정했다. 그리고 외교부는 MBC를 상대로 정정보도 소송을 제기한다.
재밌는 건 법원이 '바이든-날리면'을 판독 불가라고 하면서도, 윤 대통령이 '의회'라고 한 점을 주목했다는 것이다. 바이든 역시 글로벌 펀드 공여를 위해선 미 의회의 승인이 필요하기 때문에 '국회는 미국 의회'이고 '날리면은 바이든'이 될 수 있을 가능성이 성립한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외교부의 손을 들어주면서 "이렇게 보기 위해서는 윤 대통령이 일반적으로 미국 의회를 지칭하는 '의회' 대신 착오로 대한민국 국회를 지칭하는 '국회'를 사용하였다는 점이 인정되어야 하는데, 미국 의회를 '국회'로 잘못 지칭하였다고 볼 만한 합리적인 사정이 확인되지 않는다"고 논파한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평소에도 일반적으로 지칭하는 '미국 의회' 대신 '미국 국회'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공식 기자회견에서 두 번이나. '미국은 의회라고 하지 국회라고 하지 않는다'라는 반박이 힘을 잃은 순간이었다. 윤 대통령이 '미국 국회'를 지칭했다는 가능성이 생겼다면, '날리면'의 자리에 '바이든'이 오는 게 자연스럽지 않은가? 법원이 충분히 참고할만 한 일이다.
여전히 "이 새끼들"은 '미국 국회가 아니고 한국 국회'를 향한 "상욕"이라고 주장한다 해도 그동안 없었던 염치가 생기는 건 아니다.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국회가 대통령을 존중하지 않기 때문에 국회 시정연설에 참석하지 않았다고 했지만, 한국 국회에 '이새끼들'이라고 '상욕'을 하는 대통령의 국회관을 먼저 따져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본인의 국정 실패로 여당이 총선에 참패해 야당 의석 우위의 실상이 합법적이고 유일한 현실인데, 욕설을 하고 거부권을 남발하는 대통령이 국회를 존중한다고 볼 수 있겠나.
유체이탈과 뻔뻔함, 그리고 부인에 대한 사랑만이 나뒹구는 국가 최고통치자의 기자회견을 보면서 또 하나 지적하고 싶은 건 대통령의 화법이었다. 둘째, 이른바 '하여튼 대통령'이다.
"하여튼 저하고 통화하신 분 아마 손 들으라고 그러면 무지하게 많을걸요. 또 텔레그램이나 문자로 서로 주고받은 분들 뭐 엄청나게 많습니다. 근데 저는 이게 리스크도 있지만 장점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렇게 했는데 하여튼 이 부분은 제가 더 하여튼 이런 리스크를 좀 줄여 나가고 국민들이 어찌 됐든 이런 거로 걱정하고 속상해하는 일이 없도록 하여튼 좀 조치를 하겠습니다."
"그래서 하여튼 이런 변화와 또 쇄신과 또 더 유능한 모습 이런 것들을 국민들께 보여드리고 또 영남 일부에서 말씀을 하시니 뭐 또 대구 경북 지역에 계신 분들은 하여튼 좀 하여튼 전체적으로 국민들께서 속상해하지 않으시도록 하여튼 잘 좀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고요."
사적 통화 문제와 10%대 지지율 관련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나온 이 짧은 문장들 틈에 '하여튼'만 8번 나온다. 대통령의 기자회견에서 클로바노트 로 옮겼을 기준으로 '하여튼'이란 말은 총 66번 나왔다. 대통령이 선호한다는 "국어사전 정의"에 따르면 '하여튼(何如튼)'은 "의견이나 일의 성질, 형편, 상태 따위가 어떻게 되어 있든"을 의미하는 부사다. 대통령은 자신과 관련된 의혹 제기에 대해 답하면서도 습관적으로 '하여튼'을 쓴다. 조금 박절하게 말하자면 '아 됐고'의 느낌으로 들린다. 이런 언어 습관은 뭔가 일을 급하게 마무리하려는 심리, 잘못된 걸 지적할 때 변명거리를 생각해내는 심리와 연관돼 있다. 뻔하게 드러난 사실들을 앞에 두고 '하여튼 잘 하겠다'를 남발하는 건 성의없음으로 보여진다.
무의식적 언어 습관까지 지적하는 게 박절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총평하기에 '하여튼'만한 단어가 없다는 점을 "양해" 바란다. '하여튼' 기자회견에 '하여튼' 대통령을 보고 있으니, 이런 수준의 기자회견을 대체 왜 했는지, 참모들은 왜 말리지 않았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용산 김건희 라인' 쇄신도 없고, 국정 기조 전환도 없이 '하여튼 사과'했다는 것인가? 당황스럽도록 장황한 변명의 향연이 끝나고 남은 건 대통령의 부인 사랑과, 김건희 영부인의 국정 개입 공식화다. 이번 기자회견은 두 번의 검찰 수사 면죄부에 이은 대통령의 마지막 '김건희 프로젝트'였던 것이다. 하여튼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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