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박상주 기자] 2024년 국정감사는 정책보다 정쟁이 앞섰다. 정치 의제를 주로 다루게 되는 운영위원회(운영위),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 행정안전위원회(행안위) 등이 올해 국감을 이끌었다.
이들 상임위는 여야간 첨예한 대립을 보이며 ‘정권 심판론’을 국감 의제에 올려, ‘국정조사’처럼 국감을 운영했다. 특히 이들 세 상임위는 ‘전투력’ 높은 민주당 의원이 위원장을 맡아 국감을 주도했다. 민주당의 국감 전략이 이들 상임위에서 빛을 발했다. 그만큼 여당 의원에게 세 상임위 국감은 답답하고, 화나는 일이었다.
교육위원회(교육위)와 외교통일위원회(외통위)에서는 여당 의원도 당색이 무색하게 정부 인사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모습도 보였다. 민주당이 용산발 계엄론을 경계하는 시국에 열린 국방위원회(국방위)에서는 여당 의원이 대통령실 안보실장에게 북 도발을 사주하는 것으로 보이는 문자메시지를 보내 계엄론 논란을 부추기기도 했다.
상임위별 주요 의제와 발언을 살펴봤다.
[운영위원회] 김 여사 동행명령장 2번 발부
운영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다. 제1당이자 거대 야당의 원내 사령탑이 운영위원장을 맡을 때부터 올해 국감의 최대 진원지가 될리라 예상이 파다했다. 운영위는 대통령실을 감사하기 때문이다. 예상은 적중했다. 박 위원장은 대통령실 국감일인 11월 1일 바로 전날, 윤석열 대통령과 명태균 씨가 나눈 녹취 파일을 전격 공개했다. 원내대표로 육성파일을 공개하고, 다음날 운영위원장으로 정진석 대통령비서실장을 감사장에 올렸다. 박 위원장의 ‘원톱 드리블’이라 할 수 있다.
국감장에서 대통령의 녹취 파일을 두고 논란이 일었다. 여당에서 ‘편집론’을 제기했다. 그러자 노종면 민주당 의원은 “(여당이) 녹취록을 조작이라고 짜깁기라고 얘기를 하는데 방송에 안 나온 것을 (오늘 국정감사장에서) 틀게 합의해달라”고 말했고 야당 의원들은 모두 ‘동의’했다. 그러자 여당 의원들은 전원 입을 닫아 버렸다.
증인이 국감에서 출석하지 않아도 별다른 처벌이 없었다. 이 때문에 출석을 미적미적거리다 이슈가 잦아들면서 불출석에 대한 논란이 사그라드는 일이 흔했다. 운영위원회는 국감 사이에 소위원회를 열어 불출석하는 증인을 처벌할 수 있는 입법안을 의결했다. 본회의에서 통과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국정감사 출석을 가볍게 생각할 수 없도록 하는 입법 근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운영위는 이번 국감에서 김건희 여사에 대한 동행명령장을 2번이나 발부했다. 영부인을 증인으로 신청한 것도 유래없었고, 출석하지 않아 동행명령장을 발부한 것도 전례 없었다. 그것도 2번이나 발부했다.
권영진 국민의힘 의원은 “정치가 지켜야 할 도리가 있다"며 “뻔히 나오지 않을 것 알면서 증인 채택하고 다시 동행명령장을 발부하는 쇼까지 한다”고 비판했다. 박찬대 위원장은 “충분한 토론을 하신 것이라고 판단이 된다”며 발부를 강행, 여야간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법제사법위원회] 검찰 특활비 용처 공개 안하면 예산 삭감
법사위 역시 정청래 법사위원장의 ‘원톱 드리블’이 돋보였다. 법사위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관련, 김건희 여사와 여사의 모친 최은순 씨에 대한 동행명령장을 발부했다. 민주당 장경태·이건태·이성윤 의원은 김 여사에 대한 동행명령장 집행을 위해 대통령 관저 인근을 찾았다가 경찰과 충돌했다.
검찰의 특수활동비가 법사위 국감 도마에 올랐다. 검찰은 법사위에 용처를 먹으로 가린 영수증을 제출했고, 정 위원장이 이에 격하게 지적하며 이어지는 예결위에서 관련 예산 삭감 추진을 예고했다.
정 위원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다음주 법사위에서 검찰 특활비 예산심사가 있다. 이미 예산결산소위에 영수증 첨부가 되지 않은, 입증되지 않은 특활비는 전액 삭감하라고 특별 지시해놨다. 법사위에서 위원회 의결로 삭감한 경우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설령 증액되더라도 법사위에서 동의하지 않으면 증액될 수 없다. 제가 동의해주지 않으면 된다”고 강조했다.
대검찰청 국감에서는 검찰총장의 질의를 이유있게 회피한 사례도 나왔다. 장동혁 국민의힘 의원은 “검찰의 기소가 부당하다는 것은 법정에서 밝혀야 할 문제지만, 대검찰청은 앞으로 공소 유지를 지휘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오늘 국감장에서 검찰총장을 향해 질의하는 것은 이해충돌의 소지가 있어 스스로 회피하겠다”고 말했다.
검찰이 권력에 대한 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날선 비판도 있었다. 서영교 민주당 의원은 “전날 중앙지검은 김 여사 주가조작과 관련해 무혐의로 정리하면서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는데 다 기각됐다’고 말했다. 제가 알기로 2020년과 2021년 코바나컨텐츠에 대한 협찬 관련 영장 말고는 제대로 영장을 청구하지 않았다고 알고 있다. 이것은 대국민 사기극이고 엄청난 문제라고 생각한다. 여사에 대한 휴대전화나 컴퓨터에 대한 압수수색이 있었는지, 그리고 (윤석열 대통령 장모) 최은순씨에 대해 휴대전화나 자택을 압수수색 했는지 자료를 요구한다”고 말했다.
[행정안전위원회] 마약수사 외압·김여사 교통통제 등 정권 겨냥
행안위도 신정훈 행안위원장의 ‘국감 드라이브’가 빛났다. 신 위원장은 대통령실 불법증축 관련 인테리어업체 ‘21그램’ 대표에 대해 동행명령장을 발부했다. 그 외에도 김영선 전 의원과 명태균 씨를 공천개입 의혹으로 증인으로 불렀지만, 참석하지 않자 동행명령장을 발부했다.
이상식 의원은 “명 씨는 수사 중이라는 핑계로 증인 출석을 거부하면서 언론과 방송, 신문 인터뷰에는 매일같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언론에는 자기 할 말을 다 하면서 정작 국민의 대표 기관인 국회에는 증인 출석을 거부하고 있다. 이것은 국회를 무시한 처사로, 용납될 수 없다. 위원장께서 동행명령을 내려달라”고 결단을 촉구했다.
행안위는 세관 마약수사 외압 의혹과 김건희 여사의 마포대교 방문 당시 교통통제 등 대통령실을 겨냥한 의제를 국감장에 차례로 올리기도 했다.
정부 위원회 위원장에 대한 정치색 공방도 있었다. 김광동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장은 행안위 국감에서 5·18에 북한이 개입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그 부분의 가능성은 있다”고 답해 논란을 빚었다.
국정감사 기간 전 문재인 대통령의 장녀 문다혜 씨가 음주운전을 저질렀다. 문 씨 이슈가 행안위 국감에 올랐다. 이달희 국민의힘 의원은 “아버지인 문재인 전 대통령은 뇌물수수 혐의로 조사를 앞두고 있고 문 씨도 참고인 조사 일정을 조율 중이다. 일반국민 같으면 근신하면서 지낼 시기에 위험운전치상 수준의 음주운전이 웬 말인가. 민주당 웹사이트에 이재명 대표를 지지하는 강성당원들이 문 전 대통령을 향해 탈당해서 당에 부담을 주지 말라는 글이 쇄도한다고 한다. 이재명 대표도 2004년 음주운전으로 150만원의 벌금형을 받지 않았나”며 직격했다.
[교육위원회] 김 여사 논문대필·용산라인 R&D 카르텔
교육위도 정치쟁점을 주 의제로 올렸다. 두차례 김건희 여사 논문 대필 의혹을 받는 설민신 국립한경대 교수는 병을 이유로 증인석에 나오지 않았다. 야당은 윤석열 정부의 R&D(연구개발) 카르텔 의혹을 제기했다. 무용을 전공한 김형숙 한양대 공과대학 교수가 ‘AI 기반 마음건강서비스 개발’이라는 160억원 규모의 국가 프로젝트 사업을 수주하고, 초대 대통령실 과학기술수석으로 거론됐단 것이다.
박성준 민주당 의원은 이에 대해 “언론에 의해 초대 과기수석으로 거론이 됐다. 윤 정권의 주요 실세들과 상당한 네트워크가 있다고 추정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인하대 예술체육학부 조교수로 재직하다 2021년 한양대 데이터사이언스학부 심리뇌과학전공 교수로 옮겼는데, 이같은 그의 이력을 박 의원이 잡아낸 것이다.
교육감에 대한 국감에는 여야가 없었다. 조정훈 국민의힘 의원은 보수 교육감을 두고 “가해 부모인 장학사가 학교에 개입한 사실이 없다고 했다. 만약 개입 했으면 이해관계 충돌이고 선을 넘은 것이다. 완벽한 이해관계 충돌 일벌백계 징계대상 아닌가. 학폭에서 가해자, 피해자가 발생하면 교육청은 가해자 입장에서 서야 하나? 피해자 입장에서 서야 하나? 교육감 발언이 말랑말랑, 별거 아닌것 처럼 넘어가려고 하고 있다. 책임감 있는 교육감이면 우리 교육청서 발생한 사건에 대해 송구하다로 시작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목소리 높였다.
[외교통일위원회] 北 오물풍선 “누구 책임이냐” 공방
외통위에서는 국감에서 북한의 러시아 파병 규탄 결의안을 법안소위 회부하기도 했다.
부산 엑스포 유치와 관련해, ‘3급 비밀’ 표시가 있는 외교부 공문이 부산세계박람회 유치국 결정을 위한 국제박람회기구(BIE) 투표 직전, BIE 회원국 주재 공관에 보낸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1차 투표에서 경쟁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접전이 예상되고 2차 투표에선 한국이 과반 득표로 유치에 성공할 것이라는 판세 분석 문건을 야당 의원이 공개해 논란이 일었다.
외통위에선 6차례 오물풍선을 날린 북한 도발에 대한 책임 공방이 뜨거웠다. 김영배 민주당 의원은 “접경지역 대북 전단 살포가 무인자유기구 무허가 비행을 금지한 항공안전법을 위반했다”고 지적하며 “통일부가 법률을 준수하지 않고 직무를 유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의환 미국 뉴욕 총영사는 외통위 국감에서 ‘종북좌파 세력들을 분쇄해야 한다’는 등의 발언에 사과할 생각이 없냐는 질문에 “없습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김태호 국민의힘 의원은 “공직에서 발언으로 인해 불편하거나 마음 아파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유 유무를 떠나 유감을 표명하는 게 공직자의 위치”라며 여야의 입장을 넘어 김 총영사를 꾸짖었다.
[국방위원회] 국감장서 북도발 계획 ‘포착’
국방위 국방부 국감에서는 채 해병 순직 사건 당시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의 책임에 대한 질타가 이어졌다.
정부가 계엄령을 유도한다는 설도 국방위 국감의 소재로 등장했다. 국방위 종합국감에서 한기호 국민의힘 의원이 신원식 국가안보실장에게 ‘러시아에 파병된 북한군을 공격하자’고 제안하는 문자가 언론사 카메라에 포착돼 큰 파장을 불렀다.
김병주 민주당 의원은 “안보 위기를 초래한 일차적 원인은 러시아와 북한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는 것이지만 이차적 원인은 윤석열 정부의 외교 정책의 실패다. 윤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가서 러시아를 적대국으로 선언해버리고, 포탄을 우회 지원했다. 윤 정권은 역사적인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황희 민주당 의원이 ‘계엄령’ 논란과 관련, 여인형 국군방첩사령관의 답변 태도를 지적했다. 김용현 국방부 장관은 이에 대해 “군복을 입었다고 할 얘기를 못 하고 가만히 있는 것은 더 ‘병X’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해 논란을 빚었다.
[정보위원회] 국감인가, 北 정보 브리핑장인가
정보위 국감은 국감이라기 보다 북한 정보를 디브리핑하는 장이 됐다. 정보위 여야 간사는 비공개 국감 이후 기자들에게 ‘북한 내부에서는 당국이 파병 사실을 일절 외부에 알리지 않고 있지만 점차 소문이 유포되는 상황’이라는 등 민감한 북 정보를 공개했다. 이에 따라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한국 ‘참관단’이나 ‘심문조’를 보내는 문제가 국감 이후 크게 불거졌다.
박선원 민주당 의원은 “국정원은 1만여 명이 투입될 것이라는 상당히 근거 있는 첩보를 제시했다. 1만여 명 파병은 12월경으로 예상된다는 보고가 있었다. 최정예 11군단 폭풍군단이란 특수전 부대가 주력으로 파견돼 있다. 러시아 내 다수 훈련 시설에 분산돼 현지 적응 중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성권 국민의힘 의원은 “군대 기밀 누설을 이유로 장교 휴대폰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차출 부대에 입단속을 하고 파병군인 가족에게는 훈련 간다고 거짓 설명하는 정황도 포착됐다고 한다. 단속 조치에도 북한 내에 파병 소식이 퍼지면서 '왜 남의 나라를 위해 희생하느냐'라는 주민 동요가 감지되고 있다고 한다”고 말했다.
[여성가족위원회] 장관 공석 국감 “의미있나?” ‘한숨’
여가위 국감은 장관없이 국감을 하는 것이 맞느냐는 논란에 빠졌다. 현재 여가부 장관은 8개월 넘게 공석이다. 그 와중에 양육비이행관리원장 자리에 ‘김건희 라인’이라는 전지현 전 대통령실 행정관 내정 의혹 제기됐다.
김한규 민주당 의원은 “여가부 장관은 8개월째 공석이다. 동네 통장·동장도 이렇게 오래 비워두지는 않는다. 장관 없이 국정감사를 진행하는 것은 우리 위원회가 스스로 권위를 떨어뜨리고, 입법부의 책임을 회피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조은희 국민의힘 의원은 “여야 원내대표가 정부조직법 개정안과 여가부 장관 임명을 패키지로 협상 중이니, 결과를 지켜보자. 장관 임명은 여야 협상으로 해결할 문제”라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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