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렌스키, 우크라 생존 나토가입 또는 핵무기에 달렸다 인식
트럼프 종전구상에 좌절감…핵보유국 지위복원 검토 진지해질듯
(서울=연합뉴스) 이도연 기자 =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재집권으로 러시아 침공을 받는 우크라이나가 핵무기 개발을 검토할 압박에 노출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트럼프 당선인이 우크라이나 군사지원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 가입에 회의적인 까닭에 우크라이나가 핵무기 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인식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핵무기 개발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절박한 입장을 강조하며 스스로 언급했다.
그는 지난달 17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연합(EU) 정상회의에 참석해 나토 가입 초청을 촉구하는 과정에서 "우리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핵무기를 보유하거나 어떤 종류의 동맹 체결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이 발언이 논란이 되자 그는 다시 "우리는 핵무기를 만들고 있지 않다. 오늘 내 말은 나토 가입보다 더 강력한 안전보장 방법이 없다는 뜻"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에 결단을 압박할 위기는 지난 5일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면서 더 선명해졌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트럼프 당선인 측근들이 내놓는 종전 구상 중에는 우크라이나 전선을 그대로 동결하고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보류하는 내용이 있다.
그렇지 않아도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은 장기적으로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우크라이나는 나토에 신규 회원국으로 가입할 때 필요한 첫 번째 절차인 '가입 초청'을 요청했는데 나토의 주축인 미국과 독일이 여기에도 아직 미온적이다.
싱크탱크 휴먼라이츠포럼의 케이시 미첼은 7일 미국 외교전문매체 포린폴리시 기고에서 "우크라이나가 자국의 파괴를 막을 가장 확실한 방안은 나토 가입"이라며 "이 방안을 제외하면 자체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밖에 선택지가 없다"고 말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핵무기 개발을 압박하는 배경에는 우크라이나가 과거에 미국 등 서방의 권고에 따라 핵무기 보유국 지위를 포기했다는 역사적 사실도 자리를 잡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옛 소련 시절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은 핵무기를 보유했고 소련이 해체되면서 여전히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미국·영국으로부터 영토·주권을 보장받는다는 내용의 부다페스트 양해각서에 서명하고 1994년 12월 핵무기를 러시아에 넘겼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 합의의 결과로 우크라이나가 핵 방패를 잃었지만 핵무기를 유지한 다른 강대국은 전면전을 겪지 않았다며 뒤늦게 억울함을 호소한 바 있다.
일각에서는 우크라이나가 핵무기 개발을 결정한다면 역사와 기술이 있기 때문에 북한과 같은 국가보다는 훨씬 더 쉬울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나토가 계속 우크라이나의 접근에 소극적 태도를 취하는 등 상황이 불리하면 우크라이나로서는 핵무장을 점점 진지하게 고민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임기가 두 달 남짓 남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남은 기간 우크라이나를 최대한 지원하겠다고 밝히고 있으나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다.
카린 장-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바이든 대통령의 남은 임기에 우크라이나가 "전장에서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갖출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브리나 싱 국방부 부대변인도 이날 "1월에 행정부 교체가 있을 예정이지만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은 여전히 강력하다"라며 우크라이나 지원이 상·하원에서 초당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싱 부대변인은 바이든 행정부가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이니셔티브(USAI)를 통해 여전히 약 20억 달러(2조7천억원), 대통령 사용 권한(PDA)으로 약 40억달러(5조5천억원)를 지원할 수 있다며 "임기가 끝나기 전 지원 패키지가 더 나올 것"이라고 부연했다.
그러나 이 같은 약속은 2기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고 상·하원까지 공화당이 장악하면 곧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dy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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