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발전을 이끈 혁신적인 발명품 중 하나는 자동차다. 자동차 덕분에 이동 시간은 크게 줄었고 먼 거리도 몇 시간 안에 도달할 수 있게 됐다.
전 세계에는 약 15억 대의 자동차가 운행 중이다. 2023년 말 기준 국내 자동차 등록 대수는 약 2550만 대에 달한다. 대한민국의 총가구 수가 2300만 가구임을 감안할 때 가구당 평균 자동차 보유 대수는 1.11대로 추정된다. 이제는 누구나 손쉽게 전국을 돌아다닐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런데 자동차가 일상에 깊이 자리 잡은 오늘날에도 이 편리함을 누리기 어려운 사람이 있다. 장애인이다. 이동이 자유로워진 세상에서조차 장애인 운전자들은 매일 불편함과 불안감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국내 운전자는 3443만6000명으로 추산되며 그중 장애인 운전자는 264만2000명이다. 그러나 이들을 위한 차량 편의 기능은 턱없이 부족하다.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은 여전히 무분별한 불법 주차로 인해 쉽게 사용할 수 없다. <여성경제신문> 특별취재팀이 연재하는 '장애인장벽' 시리즈를 통해 장애인 운전자들이 겪는 현실을 조사했다. 비장애인 사회에서 '배리어프리', '무장애 환경'이라는 인식이 높아졌지만 장애인이 일상에서 마주하는 장애물은 여전히 산적해 있었다. 여성경제신문>
장애인 운전자의 시각에서 보면 전자식 트렁크 버튼조차 실용적이지 않다. 많은 차량의 트렁크 버튼이 높은 위치에 있어 휠체어에 앉은 운전자가 닿기 어렵다. 키가 작은 지체장애인도 마찬가지다. 전동 트렁크 옵션이 있지만 2000cc 이하 차량에 한정된 세제 혜택은 장애인에게 오히려 제약으로 다가온다. 장애인 운전자는 "장애인은 고급 승용차 타면 안 된다는 것 아니겠냐"고 했다.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은 불법 주차된 차량이나 짐이 쌓여 사용할 수 없는 경우가 태반이다. 불법 주차에 대한 경각심이 부족해 이런 상황이 반복되지만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면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 "어차피 빈자린데 잠시 세워도 괜찮겠지"라는 생각이 결국 장애인 주차구역을 무용지물로 만든다. 짐을 놓아도 되는 공용 공간으로 착각하는 순간 주차구역은 하역장으로 변하기 일쑤다.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을 단순히 규정에 맞춰 설치하는 것과 진정으로 그들을 위해 설계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장애인의 동선을 고려하지 않은 주차장 설계는 편의보다 불편을 초래한다. 휠체어와 목발을 사용하는 장애인 운전자에게 좁은 공간은 진입과 하차를 어렵게 만들며 출입구까지 가는 동안 차들이 빠르게 지나가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지하 주차장에서 건물로 연결된 출입문도 문제다. 외관상 그럴듯하게 설계된 주 출입구와 달리 주차장 출입문은 장애인이 이용하기에 불편한 형태가 많다. 무겁고 두꺼운 문을 간신히 밀고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 반복된다. 문을 겨우 열고 들어서면 고정되지 않은 한쪽 문이 닫혀 다칠 위험마저 감수해야 한다. 손을 자유롭게 쓰지 못하는 장애인은 문이 열리기만을 한없이 기다린다. 그 앞에서 자신이 작아지는 기분을 느낀다고 했다.
장애인 편의시설을 규정하는 법령과 배리어프리 인증 제도가 있음에도 현실은 여전히 답답하다. 공공기관부터 민간 건축물까지, 기자는 무작위로 방문한 여러 곳에서 장애인 이동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장면을 목격했다. 한 민간 기업에 취재차 전화를 걸었을 때 "본사는 장애인이 올 일은 없으니 대리점에 문의하라"는 답변을 들었다. 본사가 장애인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태도에 아쉬움이 남았다. 모범을 보여야 할 위치에서조차 장애인 이동권을 소홀히 여기는 현실이 안타깝다.
개인의 의식이 모이면 집단, 나아가 기관과 기업의 방향성을 결정짓는다. "나 하나쯤 괜찮겠지" 하는 무관심과 "장애인은 오지 않을 거다"라는 편견이 사라질 때 그저 형식상 설치된 장애인 주차구역도 실질적으로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
장애인의 이동권 문제는 대중교통에만 집중돼 왔다. 휠체어가 접근할 수 있는 버스와 지하철의 인프라 확충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장애인이 자유롭게 사회 속에서 활동하기 위해서는 대중교통만으로 부족하다. 이들에게도 차량이 아주 중요한 이동 수단의 하나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그만큼 차량을 직접 개조해 운전하는 장애인도 많아지고 있다. 이제는 장애인 운전자를 위한 차량 지원과 주차 공간, 편의 시설 개선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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