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박상주 기자] 2024년 국정감사는 ‘정쟁’으로 ‘정책’을 뒤덮은 국감으로 기록된다. 지난 10월 7일 시작한 22대 국회 첫 국정감사가 1일 막을 내렸다. 올해 국감은 정쟁으로 시작했다. 국감 도중 막말과 욕설이 난무했다. 정부 정책에 대한 감시, 민생 해법 등은 드물었다. 국감 첫날부터 마지막날까지 거의 모든 상임위원회 국정감사에 걸쳐 ‘김건희 국감’ ‘이재명 방탄’ 등이 주의제였다.
여소야대 정국으로 시작한 국회에서 절대 다수석을 차지한 민주당이 2024년 국감을 주도했다. 민주당은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에 대한 의혹을 집중적으로 캐는 한편, 자당 이재명 대표의 선고를 앞두고 ‘방탄’ 국감을 시전했다.
야당 중에서도 민주당만 보였다. 교섭단체에 도달하지 못한 군소야당은 국감장에서 눈에 띄는 활약상을 보이지 못했다. 민주당이 상임위원장석을 다수 차지하면서 민주당 주도로 국감이 운영됐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제대로된 대응력을 보여주지 못한 채 민주당에 끌려다녔다. 민주당의, 민주당을 위한 국감이라 할 수 있다.
민주당은 국감을 시작하기 전 일찌감치 ‘윤석열 대통령에게 정말 잔인한 기점이 되는 국감’으로 전략을 잡았다. 정진욱 민주당 의원은 9월 29일 <폴리뉴스> 와의 인터뷰에서 “국정감사 수준을 넘어 국정조사 수준으로 의제를 핀셋으로 집어 내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해놓은 국정 파탄의 현장을 정확히 보여주는 것, 그리고 나아가 민주당 국회의원이 가지고 있는 역량과 정책 비전과 대안을 통해 민주당이 수권정당으로서 준비돼 있는, 정책 대안을 보여주겠다는 것, 2가지가 국감 전략”이라고 말했다. 폴리뉴스>
민주당은 이번 국감을 ‘365 국감’이라고 명명했다. 3대 기조(국민 눈높이·민생·끝장 국감)로 윤석열 정권의 6대 의혹을 규명하고, 민생회복지원금 등 민생 회생을 5대 대책으로 잡았다. 증인이 출석에 불응하면 동행명령장을 발부, 이에 응하지 않으면 고발키로 했다. 떠오른 개별 의혹이 생기면 상설특검과 국정조사를 병행할 방침을 잡았다.
국민의힘은 ‘민생 국감’을 전략으로 잡았다. 숨은 뜻은 야당이 올해 국감을 ‘이재명 대표 방탄 국감’으로 만들텐데, 이에 강력히 대응해 논리적으로 비판을 제기하겠다는 것이다. 또 야당의 정치적 공세에 맞서 연금개혁을 비롯해 재정건정성 확보 등의 성과와 시급성을 알리겠다는 전략이었다. 바른 말이지만 순진해 보이는 전략으로 볼 수도 있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국감 전 기자간담회를 통해 “끝장을 봐야 할 것은 민주당의 입법 폭주와 정쟁몰이, 이 대표의 방탄국회와 방탄국감”이라며 “국민의힘은 이번 국감을 민생국감으로 치르고자 한다. 책임 있는 집권 여당으로서 민생에 매진하는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 관련 의혹’과 이재명 대표 관련 사건들을 집요하게 지적할 계획이라고 전략을 밝혔다.
최대규모 국감...증인·참고인 1000명 넘겨
양당은 ‘정쟁’ 국감을 예고하며 국감 규모를 키웠다. 올해 국감은 증인·참고인만 1000명이 넘는다. 증인만 500명을 넘겼다. 피감기관 수는 802개로 역대 국감 중 가장 많았다. 국회 공보에 따르면, 피감기관 3곳 중 1곳(33.2%)은 질문조차 받지 못했다. 630개 피감기관 관계자가 국감장에 출석했지만 209개 피감기관은 한 차례도 질문을 받지 않았다. 피감기관 인사를 줄지어 불러놓고 질문도 하지 않은 채 ‘멀뚱하게’ 대기시켰단 이야기다.
민주당의 드라이브…‘김건희 국감’·’이재명 방탄국감’
2024년 국감은 사실상 ‘김건희 국감’이었다해도 큰 무리가 없었다. 특히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는 국감 종료 전날까지 김건희 여사 관련 의제로 여야간 공방을 지속했다. 야당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연루 의혹, 명태균 씨 의혹과 맞물린 공천개입 의혹 등을 거론해 검찰을 압박했다. 민주당은 ‘김 여사 공천개입 의혹’의 증인으로 명태균 씨와 함께 일했던 강혜경 씨를 국회로 불러 증언으로 대통령실에 공세를 가했다.
민주당은 국회 운영위원회(운영위) 국정감사 전날 윤 대통령과 명태균 씨 사이 전화녹취를 공개하고, 운영위 국감에서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이를 따져 묻는 등 국감 마지막날 최대 수위로 공세를 이어나갔다.
교육위원회에서는 김건희 여사의 석·박사 학위 논문 표절 의혹을 제기했고, 국토교통위원회에서는 서울-양평간 고속도로 종점 변경 의혹을 제기하며 윤 대통령의 장모의 땅 투기를 정부에 캐물었다.
행정안전위원회에서는 공무원이 아닌 김 여사가 ‘세계 자살 예방의 날’을 맞아 마포대교를 방문해 경찰이 교통통제를 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한편, 더불어민주당은 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 방어를 위한 ‘방탄 국감’을 주도했다. 국민의힘은 법사위를 중심으로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를 묻는 질의를 이어갔지만 ‘결정적인 한 방’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결론적으로 민주당은 ‘방탄’에 성공했다.
동행명령장 27건 발부…21대 땐 많아야 8건
올해 국감의 특징 중 하나는 ‘동행명령장 발부’와 ‘고발 조치’다. 국감이 정쟁으로 흐르면서 정무 이슈에 예민한 관계자가 다수 증인에 채택됐다. 이에 따라 불출석하는 증인이 늘었고, 비어있는 국감장 증언대를 보며 상임위원장이 동행명령장을 발부, 증인을 압박하는 일을 잦았다.
야당은 3주간에 동일인물 중복 발부를 포함 27건의 동행명령장을 발부했다. 동행명령장 발부는 지난해 3건, 2022년 8건, 2021년 2건, 2020년 1건 정도 수준이었는데, 22대 국회 들어 폭증한 것이다.
특히 법사위의 10월 21일 대검찰청 국감에서는 현직 대통령 부인에 대해 동행명령장을 발부했다. 물론 야당 단독으로 의결했고, 여당은 “의회 일당 독재의 민낯” “구태 정치쇼”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운영위는 김건희 여사와 여사의 친오빠 김진우씨, 명태균씨, 김영전 전 의원, 강혜경 씨 등을 잇따라 증인으로 불렀다. 운영위는 증인이 출석하지 않자, 불출석한 증인을 처벌할 수 있는 법개정을 소위원회에서 야당 단독으로 통과시키며 공세 수위를 한 껏 끌어올렸다.
막말·욕설… 품위없는 국감 ‘여전’
10월 24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에 대한 국정감사장에서 욕설 논란은 극에 달했다. 김태규 방통위 위원장 직무대행은 국감 정회 중 방송문화진흥회 직원이 쓰러지자 “XX, 사람 죽이네 죽여”라고 말했다. 이를 들은 김우영 민주당 의원은 ‘인마’ ‘법관 출신 주제에’ 등 막말을 쏟아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김우영 의원에게 ‘엄중 경고’했고, 김 의원은 즉시 모든 당직에서 사퇴했다.
같은 날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외통위) 종합국감에서는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가 윤후덕 민주당 의원과 대북전단 위법성 여부를 놓고 설전을 벌이는 과정에서 “이거 뭐 최고인민회의야?”라고 말했다.
10월 10일 문화체육관광위원회(문체위) 국가유산청 국감에서 양문석 민주당 의원은 김건희 여사가 참석한 간담회에서 국악인들이 가야금을 연주한 것을 두고 “기생”이라고 표현해 뭇매를 맞았다.
10월 11일 법사위 헌법재판소 국감에서 장경태 민주당 의원은 “김영철 검사의 아랫도리를 비호하는 것도 참 한심한데, 나쁜 손버릇을 가진 여사를 비호하는 것도 한심하다”고 말해 거센 비난을 받았다.
10월 15일 환경노동위원회(환노위) 국감에선 노동자 사망 사고에 대한 증인으로 참석한 정인섭 한화오션 대외협력실장이 함께 참석한 뉴진스 멤버 하니와 셀카를 찍는 모습을 보여 비판에 휩싸였다.
‘심판’인 위원장, ‘선수’로
위원장이 국감의 ‘심판’을 넘어 ‘선수’로 활동한 국감이었다. 22대 원구성 때 여야가 극하게 대립했던 것이 운영위, 법사위 등에서의 상임위원장 인선이었다. 여당이 관행을 내세우며 저항했지만 결국 야당이 두 상임위원장석을 차지했다. 운영위원장은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법사위원장은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맡았다. 또 과방위원장은 최민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다.
박찬대 위원장은 11월 1일 운영위 국감에서 국감 증인선서와 업무보고에 앞서 “김 여사와 대통령 비서실, 대통령 경호처 소속의 일반 증인이 모두 출석하지 않았다. 증인을 오후 2시까지 국정감사장으로 출석하도록 조치해달라”며 “정당한 이유 없이 불출석하면 동행명령장을 발부하고, 고발 조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여당 의원들은 의사진행 발언을 신청하며 집단 반발했으나, 박 위원장은 업무 보고를 진행했다. 여당 임이자 의원이 위원장석으로 다가와 항의하다 손이 박 위원장 몸에 닿았다. 박 위원장은 “어디다 손을 대냐”고 버럭 화를 내며 여당 의원을 물리쳤다. 전날 박 위원장은 윤 대통령의 공천 개입 의혹이 담긴 명태균 씨와의 육성 대화 파일을 공개했다. 이를 두고 강명구 국민의힘 의원이 편집론을 제기하자 박 위원장은 강한 어조로 “나에 대한 국감이냐? 나한테 질문하지 말라. 윤 대통령의 생생한 육성을 전 국민이 들었다”고 반박했다.
정청래 법사위원장과 최민희 과방위원장은 의원들보다 더 많은 발언시간을 가지며 국감에서 ‘원톱 선수’로 활동했다.
정 위원장은 서울고등검찰청 국감에서 1시간 넘게 발언했다. 법사위 의원 평균 질의시간은 15분여다. 10월 17일 대전고법 국감에서 정 위원장은 전체 발언시간의 22%를 혼자 사용했다. 최민희 과방위원장은 10월 7일 방통위 국감에서 총 2시간동안 발언했다. 의원 평균 발언시간 22분보다 5배 이상 긴 시간을 썼다. 최 위원장의 발언시간 비중은 20%에 가깝다.
혼란한 정국 탓에 의원별 아이템보다 정당별 지침 ‘우선’
22대 첫 국감이 정쟁으로 흘러간데는 현 정국에서 기인한다. 국회가 개원부터 격한 정쟁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지방선거와 총선을 거치며 여야간 갈등이 극에 달했고, 대통령실이 김 여사와 관련한 각종 의혹에 휩싸이면서 정치 의제가 무더기로 쏟아졌다. 이재명·조국 등 야당 대표에 대한 사법리스크를 야당이 정치탄압으로 규정해 대여투쟁에 돌입한데다 여당은 윤한갈등으로 친윤계와 친한계로 갈려 당정간 소통이 원활하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이 원 구성 이후 반년간 국회를 휘감아 왔다. 거대한 정치 의제가 연일 정치권을 강타하는 가운데, 국회에서 민생이 사라진 것처럼 국감에서 정책이 실종된 것이다.
지난 총선에서 거대 양당 모두 대규모 물갈이를 겪어 국감 경험이 없는 정치 신인이 크게 늘어난 것도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의원 뿐 아니라 의원실을 구성하는 보좌진도 대폭 물갈이 되면서 과거 국감의 경험이 부족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과거 경험을 살려 의원실별 국감 포인트를 잡아내기 보다 당의 지침과 방향에 따라간 측면이 있다. 국감에 개별 의원들의 목소리가 반영되기 보다 당의 지침을 의원들이 받아내기 급급한 것으로 풀이된다.
경실련 “민생 외면, 막말 국감”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지난달 30일 경실련 강당에서 ‘2024 국감 평가 및 제도개선 토론회’를 열었다. 경실련은 이 자리에서 “이번(국감)에도 여야는 민생을 외면한 채 정쟁에만 몰두하여 막말과 고성이 오가는 장면을 연출,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하상은 경실련 정치개혁위원장(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은 “국정감사는 정부의 국정 운영 현황을 파악해 입법 활동을 지원하고 국민에게 이를 알리는 역할을 한다”면서 “야당 의원들이 대통령이나 행정부, 여당을 대상으로 호통치는 모습이 반복되는 것은 입법부가 행정부를 견제하는 기능을 충분히 수행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정회옥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국정감사 구조적 한계를 지적하고 국정감사와 감사원 감사의 연계,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구분 등을 제안, 정책 감사로의 전환을 위해 피감기관을 축소하고, 국정감사를 예비 감사와 본 감사로 분리해 기초 자료 수집과 자료 확인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성은 건국대 행정대학원 공공정책학과 교수는 국정감사 운영과 관련해 상시 국정감사 도입 등을 제안하면서, 감사 기간 조정, 질의 시간 확보, 불출석 증인에 대한 동행명령장 발부, 실효성 있는 고발 조치 등을 거론했다.
전진영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현행법은 국정감사와 국정조사를 구분하고 있지만, 이를 굳이 구분할 실효성이 크지 않다”며, 국정감사제도를 폐지하고 국정조사권을 활용한 상시 감사 체제로의 전환이 국회의 감독 기능을 강화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김현정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정치 선진국들은 특정 기간에 국정 전반을 감사하지 않고, 의회가 일상적으로 조사와 감사를 수행할 수 있도록 제도를 운영한다”며, “우리도 특정 시기 국정감사에서 일상적 국정감사, 상시 국감 체제로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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