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외일보] 이현수 기자 = 층간소음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위층에서 발생한 소음으로 아랫집이 피해를 보는 경우를 말한다. 아랫집에서 윗집을 향해 의도적으로 소음을 일으키는 경우를 제외하면 아래서 위를 향한 소음은 극히 드물다.
서울 강서구 한 빌라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은 극히 드문 이유로 발생했다. 이 빌라에서 노부모와 함께 살면서 은둔 생활하는 백수 임 모 씨(43)는 아래층에서 더는 참기 어려울 정도의 소음을 유발한다고 여기고 보복을 결심했다.
하지만 정작 임 씨 부모는 아래층 소음을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다고 증언했다. 이 빌라에 거주하는 다른 주민들조차 층간소음 문제로 이웃 간 얼굴을 붉힌 적이 없다.
시작은 지난 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랫집이 새로 이사 온 지 2달이 조금 지났을 무렵. 어느 날 임 씨는 방 침대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아래층으로부터 '쿵'하는 소리를 들었다. 이 소리는 그가 방에서 무언가를 하려고 움직이거나 집에서 나와 현관문을 닫을 때도 계속 따라다녔다.
임 씨는 아래층에서 자신을 향해 악의적으로 소음 공격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참다못해 결국 지난 5월 보복을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옆구리를 흉기로 찔러서 저항하지 못하게 한 다음 손가락을 자르겠다"
그의 계획은 구체적이고도 치밀했다. 우선 아랫집 구성원 중 한 명에게 이같이 보복해야겠다고 다짐하고는 딸 이 모 씨(26)를 표적으로 삼았다. 자신에게 가장 많이 스트레스를 준다는 이유에서다. 범행에 사용하기 위해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전체 25㎝(날 길이 13㎝) 흉기 1개도 구입해뒀다.
지난 5월28일. 아래층에서 또 한 번 쿵 소리를 들은 임 씨는 범행을 이행하기로 마음먹었다. 마침 아래층 사람이 집에서 나와 옥상으로 올라가는 소리를 듣고는 미리 준비한 흉기를 들고 따라 올라갔다.
막상 올라가서 보니 이 씨가 아닌 그녀의 엄마 A 씨(51)였다. 임 씨는 가족한테라도 보복해야겠다 생각하고 공격을 개시했다. A 씨는 발길질하며 저항했지만, 복부 등을 찔렸다. A 씨 비명에 급기야 임 씨 엄마가 옥상으로 올라와 아들을 만류하기에 이르렀다.
"여러 번 찌르긴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회복될 거라 생각했다.
제가 생각했던 정도에는 못 미쳤다.
손가락 정도는 잘라야 제가 생각했던 상흔이라 생각했다.
손가락을 잘라야겠다는 생각에 쫓아갔다"
-임 씨 법정 진술 중에서-
그럼에도 임 씨는 공격을 계속했다. 집으로 도망친 A 씨를 쫓아 현관 안으로 들어갔다. 공격당하고 있는 엄마를 발견한 이 씨는 엄마를 지키기 위해 임 씨와 몸싸움을 벌였고 끝내 흉기를 빼앗았다. 이후 방 안에 있던 A 씨 아들이 나오자 사건은 일단락됐다. 임 씨는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A 씨는 가슴, 팔, 다리, 배 등 전신에 20개 상처를 입고 즉시 병원에 이송됐으나 당일 다발성 예기 손상에 의한 과다출혈로 끝내 사망했다.
임 씨는 범행 직후 112에 신고해 자수했다. 그러면서 법정에서 줄곧 "피해자를 여러 차례 찌르거나 흉기를 휘둘러 상해를 입게 한 사실은 인정한다면서도 살인 고의는 없었다"며 범행 사실을 일체 부인하고 무죄를 주장했다.
아울러 "피해자 옆구리를 찔렀을 때 피해자가 발로 차면서 저항하고 도망가서 손가락을 못 잘랐으나, 손가락을 잘랐다면 상해에 그쳤을 것"이라거나 "부모가 독립 자금을 지원해 주거나 아버지 채무가 없었다면 이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진술하는 등 반성의 기미를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손가락을 자르겠다'고 결의한 이유에 대해 그는 "범죄를 실행해 옮기면 자수하려 했다"며 "그러면 감옥에 갈 것이고 저로서는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남게 될 것인데 피해자에게도 똑같이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주기 위해서 피해자 손가락 하나를 자르려고 한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1부(부장판사 정도성)는 "피고인의 범행 경위와 동기는 전혀 이해할 수 없다"며 "범행 수단과 방법, 범행 과정이 매우 잔혹하고 결과 중대성에 비춰 죄질이 극히 불량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비난 가능성도 현저히 높다"며 "최근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켰던, 이른바 '묻지마 범죄'의 희생자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어머니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한 피해자 이 씨는 평생 치유될 수 없는 극심한 정신적 충격을 입고 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앓고 있다"며 "사건 당시 방 안에 있던 피해자 아들은 어머니를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괴로워하고 있는 등 피해자 유족은 피고인 범행으로 일상이 완전히 파괴된 채 피고인에 대해 엄벌이 내려지길 간절히 탄원하고 있다"고 판시했다.
이 같은 사정을 고려해 재판부는 임 씨의 살인·특수상해 혐의에 대해 검찰 구형량보다 10년 많은 징역 30년을 선고했다. 또 10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을 명하고 압수된 흉기 1개를 몰수했다.
임 씨는 이 같은 1심 판결에 불복하고 지난 4일 항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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