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 =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재집권에 성공하면서 '미국 우선주의'가 더 확대되는 등 향후 국제 경제 질서에 지각 변동이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국내 산업계도 앞으로 있을 정책 변화와 이에 따른 영향 등을 따지느라 분주한 모습입니다. 이에 연합뉴스는 반도체와 배터리, 자동차, 방산, 조선 등 주요 산업 분야에 미칠 영향과 향후 전망 등을 살펴보는 기사 5꼭지를 송고합니다.]
(서울=연합뉴스) 장하나 기자 = 글로벌 경기 침체와 미중 갈등 심화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내 산업계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귀환으로 전반적인 불확실성이 커지며 말 그대로 '시계제로'의 상황에 놓이게 됐다.
향후 대미 사업 전략의 수정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국내 산업계는 트럼프 2기 체제에서 벌어질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분주하게 셈법을 따져보는 모습이다.
반도체의 경우 반도체지원법 축소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대중국 제재 강화에 따른 반사이익을 기대하는 시각도 있다.
7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비롯한 국내 반도체 업계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집권으로 향후 반도체 보조금 정책에 변화가 있을 가능성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현재 2026년 가동을 목표로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에 170억달러(약 23조5천억원)를 투자해 반도체 공장을 짓고 있다. 2030년까지 총 450억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다.
이에 바이든 정부는 삼성전자에 보조금 총 64억달러를 지급하기로 약속한 상태다.
SK하이닉스는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피엣에 AI 메모리용 어드밴스드 패키징 생산기지를 건설하는 데 38억7천만달러(약 5조2천억원)를 투자하기로 했다. 지난 8월에는 미 상무부와 최대 4억5천만달러의 연방 보조금 지급과 관련한 예비거래각서(PMT)도 체결했다.
다만 아직 PMT 단계로 보조금 지급은 이뤄지지 않은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업계에서는 트럼프가 선거 유세 당시 반도체 보조금 축소 가능성을 시사한 점에 주목하고 있다.
트럼프는 반도체지원법에 대해 "그 반도체 거래는 정말 나쁘다"며 해외기업 보조금 지급 규정에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치며 반도체에 대한 관세 부과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은 보고서에서 "기존 보조금 대비 투자 확대 요구와 자국 기업에 유리한 조항의 추가를 통해 해외 생산업체에 불리한 방향으로 수정될 우려가 있다"며 "대출지원·세제혜택 조항은 축소될 가능성도 존재한다"고 내다봤다.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지원법이 트럼프 1기부터 추진된 데다 초당적으로 통과된 법안인 점을 감안하면 트럼프 2기에서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면서 "다만 의회의 권한을 침범하지 않는 범위에서 행정부가 조처를 할 수도 있어 불확실성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반도체의 경우 보조금을 안 줄 수는 없고 관세는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큰 의미가 없어서 별다른 변화가 없을 것"이라며 "우리 기업의 기술 경쟁력을 높이면 피해를 볼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중 반도체 수출 통제 기조는 트럼프 2기 정부에서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앞서 트럼프 1기는 중국 화웨이 등 일부 기업을 '블랙 리스트'에 올리며 수출 통제를 시작했고 이 같은 기조는 바이든 행정부에 들어서며 중국에 대한 전반적인 수출 통제와 투자 제한 등으로 확대됐다.
첨단 반도체 관련 장비의 대중 수출 통제 기조가 강화하면 중국 수출 비중이 높은 한국 기업에는 부정적일 수 있다.
중국 생산설비 운영에도 차질이 우려된다. 한국 기업의 중국 공장 반도체 첨단장비 반입에 대한 수출 통제 유예 조치도 번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 낸드플래시 생산 공장과 쑤저우 반도체 후공정(패키징) 공장을, SK하이닉스는 우시 D램 공장, 충칭 후공정 공장, 인텔로부터 인수한 다롄 낸드 공장을 각각 운영 중이다.
삼성전자의 시안공장은 전체 낸드 생산의 28%, SK하이닉스의 우시·다롄 공장은 각각 전체 D램의 41%, 낸드의 31% 수준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다만 업계 일각에서는 대중 통제가 한층 강화하면 오히려 국내 기업이 메모리 반도체 등의 분야에서 중국 기업의 추격을 따돌리는 시간을 버는 등 반사이익을 얻을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기존의 대중 반도체 제재는 극자외선(EUV) 등 첨단 분야에 집중됐으나 올해 들어 레거시(범용) 반도체 수요, 중국산 비중 등을 알아보기 위한 공급망 조사에 착수하는 등 레거시 분야까지 확대되는 분위기다.
삼정KPMG경제연구원은 "한국은 미국이 메모리 반도체를 수입하는 3대 국가 중 하나로,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전후방 산업 전반에 대한 규제가 심화함에 따라 일부 반사이익을 기대해 볼 수 있다"며 "특히 고성능 반도체 분야에 있어서 핵심 파트너 위치 선점을 위한 움직임이 중요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는 "트럼프의 미국 내 반도체 투자 확대 압박과 보조금 축소 가능성은 국내 기업에 위협요인이지만, 강력한 대중 수출·투자 통제로 중국의 첨단 반도체 성장이 지체됨으로써 얻을 수 있는 반사이익은 기회요인"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고성능 인공지능(AI) 전용 메모리칩 등에서 미국의 핵심 파트너 위치를 견고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송의달 서울시립대 융합전공학부 초빙교수는 "트럼프의 개별 발언에 조바심을 내거나 일희일비하기보다는 '기브 앤 테이크'의 관점에서 한국이 미국 반도체 산업에 꼭 필요한 존재임을 강조하는 큰 틀에서의 접근이 필요하다"며 "개별 기업과 함께 정부가 문제를 잘 풀어나가기 위해 미국 정부와 교감을 형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hanajj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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