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유럽 '안보 무임승차' 제기 가능성…'관세분쟁' 재점화 관측도
'대중 강경책' 협력 공간 여지…프·독 정상간 통화, 국방장관 긴급 회동
(파리·브뤼셀=연합뉴스) 송진원 정빛나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귀환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와 유럽연합(EU)으로선 썩 달갑지 않은 소식이다.
미국과 유럽의 방위비 지출 갈등이 다시 촉발되고 우크라이나 지원 정책이 미국과 어긋나게 될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은 6일(현지시간)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이 유력해지자 즉시 소셜미디어(SNS)에 축하 메시지를 올렸다.
나토 수장의 신속한 축하는 오히려 트럼프의 재집권이 불러올 '후폭풍'에 대한 나토 내부의 '엄중한 기류'를 반증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트럼프 당선인이 취임하자마자 유럽 회원국들의 '안보 무임승차론'을 다시 꺼내 들 가능성이 있어서다.
그는 지난 2월 유세에서 "(나토 회원국) 대통령 중 한 명이 '우리가 돈을 내지 않고 러시아의 공격을 받으면 당신은 우리를 보호해 주겠느냐'고 해 나는 '당신은 돈 내지 않았으니 채무불이행이 아니냐'고 답했다"고 했다는 일화를 전했다.
나토 회원국 중 어느 한 국가가 공격받으면 동맹국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해 무력 사용을 포함한 원조를 제공한다는 집단방위 조약을 정면으로 부정한 셈이다.
그는 첫 임기 때인 2018년 나토 정상회의에서 유럽의 저조한 방위비 지출을 이유로 미국의 나토 탈퇴 가능성까지 경고했다. 당시 나토 회원국들이 2024년까지 국내총생산(GDP)의 4%까지 국방비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뤼터 사무총장이 이날 별도 성명에서 "나토를 통해 미국은 자국 이익을 증진하며 미국의 힘을 배가시키며 미국인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데 도움을 줄 31개국의 우방이자 동맹을 보유하고 있다"고 강조한 것도 이런 경험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나토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한 해인 2014년 GDP 대비 2%를 방위비로 지출하기로 합의했으나 법적 구속력이 없는 당시 합의를 이를 이행한 회원국은 올해 기준 32개국 23개국에 그친다.
이마저도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 이후에야 유럽 각국이 방위비를 증액하면서 늘어난 수치다.
더욱이 트럼프 1기 때와 달리 현재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한창인 데다 북한군 파병 등으로 확전 가능성이 커졌다는 점에서 유럽으로선 나토 안보우산이 흔들릴 수 있다는 두려움이 훨씬 더 클 수밖에 없다.
대서양 동맹의 전폭적인 우크라이나 지원도 최대 후원국 미국의 '이탈'을 걱정해야 할 처지다. 트럼프 당선인은 유세 과정에서 지금과 같은 우크라이나 지원에 회의적이었다.
대부분 EU에 속한 나토의 유럽 회원국들은 우크라이나 지원을 오롯이 감당하게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차기 미국 정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이 '미국 우선주의'를 추구하겠다고 공언해온 만큼 EU와 미국 간 통상 분쟁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그는 재집권할 경우 모든 수입품에 최고 2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약했다.
재임 시절에는 유럽산 철강·알루미늄 수입품에 고율 관세를 부과했고 EU가 맞불을 놓는 등 임기 내내 갈등을 빚었다.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EU와 미국은 철강 분쟁 해소를 위한 협상을 시작했지만 아직 매듭짓지 못했다.
EU는 바이든 행정부와 협상 중이라는 점을 들어 올해 1월 부활할 예정인 대미 보복관세를 일단 추가 유예했다. 유예 조치는 트럼프 당선인이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한 지 두 달만인 내년 3월이면 종료된다.
우려를 반영하듯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이날 성명에서 트럼프 당선인을 향해 "수백만개의 일자리와 수십억(유로)의 통상·투자가 양자 경제관계의 역동성과 안정에 달렸다"고 강조했다.
EU는 러시아산 천연가스 공급이 사실상 중단된 이후 미국산에 의존도를 높인 터라 트럼프 2기의 정책 향배에 따라 에너지 안보가 다시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대(對)중국 정책에선 미국과 공통분모가 생길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중국산 수입품에 대해서는 60%의 관세 부과를 예고했다.
EU도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고율관세를 부과하기로 하는 등 '디리스킹'(위험 제거)을 추구하고 있다.
나토·EU를 이끄는 독일과 프랑스는 발 빠르게 대책 논의에 착수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엑스(X·옛 트위터)에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와 통화했다며 "우리는 이 새로운 환경 속에서 더 통합되고 강하며 자주적인 유럽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미국과 협력하면서 우리의 이익과 가치를 수호하겠다"고 말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유럽이 미국 의존을 줄이고 자체 주권과 국방을 강화하기 위해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는 '자강론'을 누차 주장했다.
양국 국방장관은 이날 오후 파리에서 긴급 회동할 예정이다. 두 장관은 트럼프의 재집권이 우크라이나 전쟁 지원이나 나토 동맹에 미칠 변화를 논의하고 공동 대응 방안을 모색할 것으로 전망된다.
shin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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