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철통일로문학상 수상…"故이호철, 평화에 대한 영감과 용기의 상징"
"한강은 아주 훌륭한 작가…'소년이 온다', 잔혹함·증오 사실적 묘사"
(서울=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 "저는 세상을 바꿀 수는 없으나 아무리 미약한 빛이라도 세상을 비추도록 도울 수는 있습니다. 진실이 제게 다가와 '애나, 지금이야. 해야만 해'라고 말한다면, 도전하고 저 자신을 바꾸면서 그리할 것입니다."
제8회 이호철통일로문학상을 받은 북아일랜드 작가 애나 번스(62)는 6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수상 소감을 밝혔다.
번스는 북아일랜드 벨파스트 출신 소설가로, 대표작으로는 데뷔작인 '노 본스'(No Bones)와 '밀크맨'(Milk Man) 등이 있다. 세 번째 장편소설인 '밀크맨'으로 북아일랜드 출신으로는 처음 영국 맨부커상을 받으며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번스는 "이호철 작가를 기리며 제정된 상을 제가 받게 됐다는 것이 놀랍다"며 "이 작가는 평생 수많은 위험과 고난, 슬픔을 겪은 분이었고, 평화에 대한 영감과 용기의 상징"이라고 했다.
그는 또 "북아일랜드는 분쟁의 시기를 겪었고, 한국 역시 분단의 아픔을 겪었다"며 "두 나라는 서로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번스는 최근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한강 작가에 대해서도 "두 작품을 읽어봤고, 세 번째로 지금 '소년이 온다'(영문 제목 'Human Acts')를 읽고 있다"며 "아주 훌륭한 작가라고 생각한다"고 호평했다. 그는 특히 '소년이 온다'를 두고 "잔혹함과 증오를 매우 사실적이고 현실적으로 잘 묘사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1960∼1990년대 북아일랜드의 유혈 분쟁 시기인 '트러블'(The Troubles)을 경험한 번스는 종교 분쟁과 혐오, 폭력으로 삶이 황폐해지는 모습을 소설에 담아왔다.
이호철통일로문학상 본상 선정위원장인 윤혜준 연세대 영어영문학과 교수는 "'내 편'과 '반대 편', '선'과 '악', 심지어 '남'과 '여'의 이분법에 쉽게 흡수되지 않는 서사와 문장"이라고 호평하며 "이호철 문학의 일상성과 포용성에 능히 조응할 수 있는 성취"라고 선정 배경을 설명했다.
이날 회견에는 이호철통일로문학상 특별상을 받은 소설가 김멜라(41)도 함께했다. 김 작가는 장편 '없는 층의 하이쎈스'와 소설집 '적어도 두 번' 등을 발표했다.
김멜라는 수상 소감에서 "소설을 쓴 시간을 돌이켜보니 인물들을 통해 제 마음의 짐을 덜어내고 싶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없는 사람, 없는 존재로 여겨지는 소수자들, 지난 시절의 뼈아픈 단락을 없던 일로 애써 덮으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보통의 사람들, 저를 포함한 그들에게 미약하게나마 위안의 말을 건네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특별상 선정위원인 윤조원 고려대 영어영문학과 교수는 "김멜라는 첫 장편소설인 '없는 층의 하이쎈스'에서 우리 역사 속에 보이지 않는 점처럼 존재하는 이들의 우울과 분노를 곡진히 표현하면서도 살아남기, 함께 살기를 염원하는 사랑의 서사를 썼다"고 설명했다.
이호철통일로문학상은 서울 은평구에서 50년 동안 작품 활동을 해온 고(故) 이호철(1932∼2016) 작가의 문학 활동과 통일 염원 정신을 기리기 위해 2017년 은평구가 제정했다.
김미경 은평구청장은 "현실에서 아직도 남북이 첨예한 대립을 겪고 있다"며 "한강 작가도 인간의 폭력성에 대한 고찰을 소설에 담아낸 것처럼, 문학 또한 평화를 담아내는 목소리에 더욱 힘을 실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시상식은 오는 7일 개관하는 이호철북콘서트홀에서 개관식과 함께 열린다.
jae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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