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잭슨, 라이오넬 리치, 레이 찰스, 마일스 데이비스, 프랭크 시나트라... 전설적인 가수들과 함께한 세기의 음악가. 그리고 그 자신이 훌륭한 트럼펫 연주자이자, 마이클 잭슨을 세기의 팝스타로 만든 천재 프로듀서. 음악 뒤에 숨어있던 ‘프로듀서’를 세상 밖으로 알린 사람이자, 불행과 불안으로 가득한 유년을 겪고도 끝까지 ‘사랑’을 노래한 사람. 퀸시 존스가 지난 3일(현지시간) 91세로 사망했다.
인간이 시간을 감지하는 순간은 제법 잔인하다. 작가 아니 에르노의 말처럼, 달력의 페이지가 넘어갈 때가 아니라, ‘늙고 죽어가는 사람들’로부터 흘러가는 시간을 선명하게 감각하게 되니까. 가까운 가족만의 얘기가 아니다. 소위 ‘살아있는 전설’들이 눈을 감을 때도 그렇다. 후자의 경우, 많은 사람의 시곗바늘이 한꺼번에 움직이며 우리는 기어코 한 시대가 저물었음을 서늘하게 느낀다. 28번이나 그래미상을 품에 안고, 수많은 명곡으로 지구를 채운 퀸시 존스 역시 마찬가지다. 그나마 우리를 위로하는 건, 그는 예술가라는 것. 작품을 통해 다시 만나볼 수 있다는 것.
음악이 그의 숨결을 그대로 느끼는 것이라면, 그 호흡의 ‘궤적’을 돌아볼 작품도 있다. 퀸시 존스가 아흔에 쓴 자서전이자, 창작의 비밀을 담은 책. 『삶과 창의성에 대하여』 얘기다.
갱스터를 꿈꾸던 소년
“어머니는 지금 상태가 좋지 않단다.” 이 문장은 나의 유년기 내내 반복해서 떠올랐고 나를 계속해서 괴롭혔다. 이 문장은 이후 몇 년 동안 내가 일을 처리하는 방식에 영향을 끼쳤다. 치매 유발과 어머니처럼 미쳐버리는 것에 대한 엄습하는 공포는 나의 머릿속 구석구석에 자리를 잡으며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 어머니도 그렇게 됐다면, 나도 그렇게 될 수 있는 게 아닌가?” <27쪽>
재즈, 팝, R&B 장르의 벽을 의식하지 않는 뭉근하고, 화려한 사랑 노래들. 때문에 우리는 그가 음악과 활기로 가득한 삶을 살았을 것이라고 예상하지만, 그의 유년을 채운 건 불안과 폭력의 소음에 가깝다. 실제로 그의 어머니는 조현병으로 병원에서 지냈고, 아버지는 악명 높은 갱단의 목수로 일하며 (애정과는 다르게) 아들들의 옆자리를 지킬 수 없었다.
“잭 나이프”가 손에 박히고, 시체를 보는 것이 일상인 그 시절의 흑인 소년의 꿈은 그래서 음악가가 아닌, 갱스터였다. 안전하지 못한 가족의 울타리를 지켜주는 건 오히려 갱단으로 기대됐으므로. 그는 갱단에 들어가는 것이 자신의 예정된 수순이라고 느꼈을 정도였다.
그러나 우연히 만지게 된 작은 피아노 한 대가 그의 삶을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디저트를 훔치러 들어간 건물의 한 사무실에서 발견한 피아노를 치러, 그는 계속해서 불법 침입을 감행한다. 이 불법은 금방 탄로(?) 났지만, 연주는 계속된다. 건물 관리인은 퀸시 존스를 위해 몰래 문을 열어뒀기 때문. 이후 거리의 트럼펫 연주자와 학교 선생님 등 다양한 이들과 소통하며 존스는 무섭게 변화하기 시작한다. (심지어 베이비시터로 들어간 집에서 음악 관련 책을 게걸스럽게 읽기도 했다고!) 그래서 그는 말한다. 자신은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어머니는 부재”했지만 그래서 “음악을 나의 어머니로” 삼을 수 있었다고. 그리고 여러 사람들에게 노출되며 변화해올 수 있었다고. 그렇게 그는 자신의 인생을 ‘행운’이었다고 돌아본다. “고통에 목소리가 있으며, 음악이 나의 탈출구라는 걸 알게 됐다. 사실 그건 행운이었다”라고.
퀸시 존스, 불행의 항로를 바꾼 음악가
‘자서전’은 자기 인생에 대한 책이다. 하지만 이 거장은 책에서 ‘자신’을 쏟아내려고 하지 않는다. 자신의 치열한 삶을 자랑하기보다, 삶을 통해 얻은 깨달음과 창작의 비밀을 마치 악기 연주를 하듯 편안한 문체로 후대에 전한다. 실제로 책은 창작의 비밀을 알려주는 12개의 챕터로 구성되는데, 이는 음악의 12 음계와 창작의 조언을 짝 지은 것이다. 앨범의 콘셉트를 구상하는 프로듀서처럼, 책도 확실한 콘셉트가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 책은 음악가만을 위한 게 아니다. 그는 예술가만이 아니라 “자신들이 진정으로 원하지 않았던 직업 또는 삶의 방식을 안고 사랑가는 모든 사람”을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말한다. 그의 말을 빌려 정리하자면, 우리가 ‘Let it be’나 ‘We are the world’같은 곡을 만드는 창작자는 아니지만, “우리는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표현”하면서 자기 삶을 창조하며 살기 때문에. 말하자면, 이 책은 고통과 분노로 향하는 에너지를 아름다운 음악으로 바꿔내는 퀸시 존스가 자기 삶을 창조해나가는 모든 이들을 위해 헌사한 것이다.
그의 스승인 나디아 불랑제는 한때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음악에는 단지 12음이 있을 뿐이라고. 신이 13번째 음표를 주기 전까지는, 다른 사람들이 만든 이 음계를 살펴봐야 한다고. 그리고 이 음으로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보라고. 어쩌면 이 책은 언젠가의 죽음을 염두에 두던 거장이 방황하는 이들을 위해 준비한 선물이자 삶을 조금은 새롭게 살게 할 도구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제 당신도 각자의 주어진 ‘음계’를 가지고 잘 살아보라고. 그게 노래든, 춤이든, 단순한 눈맞춤이든, 그 무엇이 될지라도. 불협화음 같은 지구에서의 삶을 아름다운 음악으로 바꿔낸 그가 편안하기를.
[독서신문 유청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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